[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1G에서 4G로 이어지는 통신의 역사는 기술 발전의 역사이자 킬러 콘텐츠 발전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1G는 이동통신의 태동, 2G는 문자메시지와 같은 부가 서비스의 등장, 3G는 인터넷을 기반에 둔 새로운 사용자 경험의 대두 등 각자의 경쟁력이 뚜렷하다. 기술의 발전으로 G의 숫자가 넘어갈수록 ‘킬러 콘텐츠’가 존재했다.

문제는 4G의 주축인 LTE는 킬러 콘텐츠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LTE라는 단어부터 이상하다. ‘Long Term Evolution’이라는 뜻의 LTE는 직역하면 ‘매우 긴 시간의 진화’라는 뜻으로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렵다.

ICT 모바일 인사이트의 강영욱 부소장은 “4G LTE는 3G까지 이어진 통신의 특별한 기술 발전을 찾아내지 못한, 통신사들의 고민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명”이라면서 “통신사와 장비 업체들은 4G에 이르러 문자나 모바일 등 특별한 서비스를 발굴하는 대신 오로지 네트워크 속도로만 승부를 보려고 한다”고 꼬집었다. 유독 LTE 전국 최초 상용화 마케팅을 두고 국내 통신사들의 고소고발이 이어진 것도, 특별한 서비스가 아닌 속도에 매몰된 경쟁이 전부였기 때문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5G, 게임의 룰을 완전히 바꾼다

5G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현재로선 4G LTE 이후 불붙은 속도경쟁 외에는 뚜렷한 요인이 없다. 이런 이유에서 5G 유토피아론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영국 통신규제기관인 오프콤 전 이사인 윌리엄 웹 교수는 2016년 출간한 저서 <5G 신화>에서 5G를 콩코드 여객기에 비유했다. 그는 “음속의 2배로 나는 콩코드 비행기가 개발됐지만 항공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처럼, 5G에 대한 지나친 환상도 결국 신기루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최근 MWC 2018 현장에서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이 “5G로 돈을 벌었다는 기업이 없다”며 5G에 지나친 환상을 가지면 곤란하다는 뉘앙스를 풍긴 대목과 오버랩된다.

그러나 속도의 비약적 가속이라는 규모의 경제가 게임의 법칙을 완전히 바꾼 것이 5G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사물인터넷이 각광을 받은 현재 네트워크의 속도가 비약적으로 늘어나는 것 자체가 엄청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기반 인프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통신업계는 3G를 마지막으로 네트워크의 혁신을 잃고 속도에 매몰됐으나, 그 속도가 방대한 데이터의 이동을 보장하면서 지금까지 도달하지 못한 새로운 기술의 구현을 돕는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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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5G의 엄청난 속도가 이른바 4차 산업혁명 플랫폼과 만나는 점과 탈 네트워크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ICT 플랫폼 생태계에 진출해 고속도로 관리인에서 휴게소 업주가 되려는 통신사의 노력이다. 전자는 5G의 순수한 미래에 방점이 찍혔고, 후자는 네트워크 사업자의 본질과 플랫폼 사업, 망 중립성과 제로레이팅 전략에도 영향을 미친다.

5G의 엄청난 속도가 4차 산업혁명 플랫폼과 만난 것은 최근 폐막한 MWC 2018에서 적나라하게 확인됐다. 그리고 네트워크 사업자의 변신과 ICT 플랫폼 사업 진출은 통신사들의 인공지능 스피커 출시, 스마트홈 전략에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구글과 아마존 같은 ICT 플랫폼 사업자들이 제조사는 물론 통신사들과 연합해 광범위한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구상하는 대목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구글의 구글 어시스턴트, 아마존의 알렉사가 제조사의 TV와 가전제품의 두뇌로 들어가고 통신사와 연합해 공동으로 ICT 플랫폼을 구축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5G가 보여줄 미래는 흔히 5개의 미래로 압축된다. 

5G가 보여줄 5개의 미래

네트워크 인프라 자체가 일종의 생태계이기 때문에 5G의 파급력을 세세하게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지만,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며 당장 확인할 수 있는 5G의 미래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우선 자율주행차의 미래다. 최근 폐막한 MWC 2018에서 SK텔레콤은 자율주행차의 미래를 보여줬다. ‘완벽한 5G’를 테마로 꾸려진 SK텔레콤의 미래 전략을 제대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지난 2월 국토교통부와 협력해 시연한 자율주행차를 중심에 두고 초연결 사용자 경험을 보여줬다. SK텔레콤은 별도의 디스플레이를 통해 K 시티 자율주행 영상과 5G를 기반으로 하는 차량과 사물 간 통신 기술 등도 시연했다. 해킹이 불가능한 양자암호통신 등의 신기술을 접목할 가능성도 높다. 2002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양자난수생성기(QRNG)를 개발한 스위스 기업 IDQ의 주식 50% 이상을 취득하기로 결정한 SK텔레콤은 자율주행차의 약점인 보안 인프라 강화에도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KT는 5G 네트워크 기반의 기술력을 강조하는 한편 가상현실 기능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을 택했다.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기기인 기가 드라이브가 눈길을 끈다. 음성 기반 인공지능 콘셉트의 서비스를 제공할 전망이다. KT는 지난해 9월 투자, 전략적 제휴를 진행한 음성 인식 전문 기업인 ‘사운드하운드(Sound Hound)’와 협력해 복합명령어를 지원하는 음성 인공지능 서비스를 커넥티드카에 접목했다. 그 연장선에서 음성과 인공지능의 통합 플랫폼 기능을 탑재한다는 계획이다.

김준근 KT 기가 IoT 사업단장은 “기가 드라이브는 글로벌 차량 제조사들의 실제 요구사항을 반영할 수 있는 유연한 플랫폼으로 고급 차량부터 대중 차량모델까지 적기 개발 및 공급이 가능하다”며, “앞으로 통신을 기반으로 다양한 온라인 콘텐츠를 접목한 새로운 형태의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경험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BMW도 자율주행차를 공개했다. 레벨5 수준의 자율주행을 시연할 수 있는 프로토타입이며 전기차 i3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후문이다. 레벨 5 기반의 자율주행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이를 통한 도시 통합 네트워크 기술력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중국의 화웨이도 메이트10 프로 스마트폰을 활용해 포르쉐 자동차의 자율주행기능을 지원하는 시연을 공개했으며 공동 개발한 음성인식 기반 지능형 인포테인먼트 시스템(MBUX)을 중심으로 벤츠와 엔비디아의 동맹도 등장했다.

UHD를 통한 실감형 미디어도 5G 수혜주다. 예전과 비교할 수 없는 콘텐츠 용량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전송할 수 있는 5G와 실감형 미디어는 찰떡궁합이다. 페이스북을 비롯해 유튜브 등 기본적인 플랫폼 사업자는 물론 통신 기반의 다른 사업자, 방송 사업자도 5G의 미래에 큰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통신사 중 실감형 미디어와 5G의 연결을 강하게 보여주는 곳이 바로 KT다. KT는 GS리테일과 협력해 최근 실감형 미디어 테마파크인 브라이트를 개관했다. 스페셜포스 등 다양한 게임의 가상현실을 지원하며 약 50종의 가상현실 콘텐츠를 제공한다. 이후 직영점과 가맹점 형태로 실감형 미디어 체험공간 사업을 2020년까지 200여 지점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일체형 HMD(Head Mounted Display)를 포함한 개인형 VR극장 서비스도 연내 출시한다. 브라이트와 일체형 HMD 사업을 통해 2020년까지 연 매출액 1000억원을 달성할 계획이다.

국내 실감형 시장의 성장을 위한 청사진도 나왔다. KT는 2020년까지 국내 실감형 미디어 시장 규모를 약 2000억원에서 1조원 규모로 확대한다는 비전을 세우고 중소 가상현실 게임방 사업주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등 상생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실감형 미디어 업계의 발전을 위한 전용 펀드 조성도 나선다.

KT의 행보는 5G 산업의 핵심동력인 가상현실, 증강현실 시장을 공격적으로 장악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오프라인 거점을 가진 GS리테일과의 협력과 KT의 네트워크 인프라가 시너지를 일으키며, 가상현실의 사용자 경험을 생활밀착형으로 풀어내겠다는 뜻이다. 가상현실 자체 기술력보다 가상현실이 가진 특별한 경험을 5G 동력상승으로 끌고 간다는 논리다.

SK텔레콤도 5G와 실감형 미디어의 연결고리를 활용할 계획이다. SK텔레콤은 MWC 2018을 통해 옥수수 소셜VR 서비스를 공개했다. 가상현실 기기를 쓰고 아바타를 활용해 동영상 콘텐츠를 보며 대화할 수 있는 서비스다. 개인화 미디어 플랫폼을 가상현실에서 일종의 극적인 사용자 경험으로 풀어내려는 시도며, 양방향 인터랙션을 넘어 시청자들의 간극을 실감형 미디어로 풀어낸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로봇과 드론 등 5G를 통한 다양한 하드웨어 기기의 발전도 관전 포인트다. 5G의 강력한 네트워크 파워로 로봇과 드론의 세밀한 조종을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최근 폐막한 평창 동계 올림픽 하늘을 장식한 인텔의 드론, 슈팅스타는 단적인 예다. 개막식과 폐막식에서 대미를 장식한 인텔의 슈팅스타 드론은 폐쇄형 프로펠러 쿼드콥터(Quadcopter with Encased Propellers)로 분류된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384㎜, 384㎜, 93㎜에 불과하며 회전지름은 6인치다. 최대 이륙 무게는 330g이며 최대 8분 비행이 가능하다. 최대 속도는 초속 3m다.

슈팅스타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고유한 알고리즘을 통해 레퍼런스 이미지의 사용, 라이트 쇼에 필요한 드론 수를 신속히 계산하고 하늘 위에서 이미지를 그려 내기 위한 드론의 위치 파악과 최단 경로의 공식화를 수행함으로써 애니메이션 프로세스를 자동화했다. 개막식에서 1218대의 드론이 동시에 하늘로 올라 최다 무인항공기 공중 동시 비행 부문 기네스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슈팅스타의 드론을 단 한 사람이 책임졌다는 점이다. 인텔은 한 명의 조종사가 완전히 제어하는 수백 대의 인텔 슈팅스타 드론들로 만들어낸 드론 라이트쇼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콘셉트를 창조했다. 슈팅스타 드론은 엔터테인먼트용으로 별도 제작된 경량 구조로, 40억개가 넘는 컬러 조합이 가능하다. 5G가 없다면 슈팅스타의 정밀하고 일사불란한 비행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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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홈 분야에서 5G는 사실상 ‘공기’의 역할을 수행할 전망이다. 구글과 아마존 등 모든 ICT 기업의 스마트홈 전략에 5G가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에 스마트시티가 있다.

스마트홈은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을 연결해 현존하는 모든 기기를 초연결 플랫폼으로 구축하는 생태계다. 365일 24시간 즉각적인 피드백이 있어야 하며 모든 콘텐츠가 하나로 연결되어야 한다. 스마트홈의 허브를 중심으로 각 기기들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면서 다양한 빅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개인화된 큐레이션 서비스로 풀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5G는 스마트홈의 기본인 네트워크 기술부터 스마트홈 외부, 즉 스마트시티로 이어지는 큰 그림을 연결하는 단 하나의 고속도로다. 아마존의 알렉사 에코, 구글의 구글 어시스턴트가 탑재된 구글홈도 모두 5G에서 작동하며 사용자의 명령을 인식하고 수행하는 방식이다. 이후 자율주행차와 커넥티드카의 연결로 초연결 생태계가 아웃도어로 뻗어가는 셈이다. 스마트시티 플랫폼 경쟁이 뜨거운 이유다.

스마트시티의 기반인 플랫폼 전략에서는 기업들이 충돌하고 있다.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 곳은 중국의 화웨이다. 화웨이는 지난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2017 스마트 시티 엑스포 월드 콩그레스(Smart City Expo World Congress 2017)’에서 스마트 시티 신경망(Smart City Nervous System) 전략을 공개했다. 생명체와 비슷한 ‘자가진화’에 방점을 둔 스마트시티 신경망이다.

화웨이는 스마트시티를 하나의 고정 인프라가 아니라 살아 있는 유기체로 정의했다.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 도시 서비스를 강화하는 스마트시티 구현 방안을 강조했다. 국제 파트너들과 함께 도시 행정과 공공 서비스는 물론 산업 경제 부문에 걸쳐 디지털 세계와 물리적 세계를 연결하는 공동 ICT 솔루션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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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 리다 화웨이 엔터프라이즈 사업부 사장은 “스마트 시티는 신경망으로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으며 스마트 시티 신경망은 제어센터인 ‘두뇌’와 네트워크와 센서인 ‘말초 신경’으로 구성됐다”면서 “도시 상태에 대한 실시간 정보를 수집하고 데이터를 전송한다. ‘두뇌’가 분석을 통해 정보를 기반으로 한 결정을 내리도록 지원하고, 피드백 명령을 전달하며 궁극적으로 지능적인 행동을 수행하는 것이 스마트 시티 신경망”이라고 설명했다. 그 내부에는 당연히 5G라는 고속도로가 필요하다.

5G는 현존하는 모든 ICT 기술의 기본이다. 에릭 슈미트 전 알파벳 회장은 지난해 세계지식포럼에서 “인터넷은 사라질 것이며, 모두가 인식하지 못하는 공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초연결 시대가 도래하며 인터넷을 의식하지 못해도 기본적으로 연결된 상태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 인터넷의 속도와 용량을 빠르게 지원하는 것이 5G다. 5G가 없으면, ICT 기술의 발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