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인턴>의 스틸컷. 이 영화는 은퇴한 70대 노인인 벤이 인터넷 쇼핑몰 회사인 어바웃 더 핏(ATF)에 재취업해 업무를 수행해 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사진=영화진흥위원회(KOFIC)

[이코노믹리뷰=김동우 기자]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고령화가 가속화하면서 노년층의 재취업 문제도 국가적인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노년층도 건강한 노년을 위해 은퇴 후 삶을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이 사회에서 재활용되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제는 노년층을 복지나 봉양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생산 및 소비 주체로 인정해야 할 시기다.

한국보다 앞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일본과 유럽 등의 노년층들은 정년퇴직이 은퇴로 이어진다는 등식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 재취업을 통해 경제적인 안정을 취하고 삶의 보람을 찾음으로써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도 건강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일본은 세계에서 고령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된 국가다. 이미 지난 2005년에 65세 이상 인구(고령화율)가 전체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일본의 지난 1월 기준 고령화율은 27.8%다. 오는 2035년에는 고령화율이 33.4%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평생 현역시대, 일본의 ‘연금겸업형 노동자들’

최근 일본 채용시장에는 노년층 취업자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들은 연금을 수령할 나이에도 취업 최일선에서 젊은이들과 적극적으로 경쟁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들을 연금겸업형 노동자라고 부른다. 연금겸업형 노동자들은 연금이라는 기본자금이 있기 때문에 재취업 시에도 저임금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다. 임금경쟁력을 갖춘 셈이다.

또 이들은 재취업에서 소득보다 삶의 보람을 우선시한다. 이 때문에 일을 배우려는 자세도 젊은이들 못지않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건강도 갖췄다. 체면에 얽매이지 않고 저임금과 단순노동에서도 일의 보람을 찾으려는 노년층의 대응이 일본의 평생 현역시대를 앞당기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노년층의 해외유학 열기도 뜨겁다. 주로 퇴직 후 여유가 생긴 60대 이상 노년층들이 해외 유학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도심 학원가에서도 노년층들이 젊은 학생들의 빈자리를 메워주고 있다.

임금경쟁력과 노동의 질, 체력을 겸비한 이들은 기업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서고 있다. 일본 편의점 업체인 세븐일레븐은 지난 2013년부터 전국 점포에 60세 이상의 시니어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다. 세븐일레븐의 시니어 직원들은 상품을 진열하고 청소와 계산 업무를 맡는 등 젊은 직원들과 같은 매장 업무를 수행한다.

지적 호기심도 뒤지지 않아

미국에서는 지역사회의 은퇴자 커뮤니티들이 대학교의 평생교육을 활용해 노년층의 지적 욕구를 채워주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대학 연계형 은퇴자 커뮤니티(UBRC, University Based Retirement Community)다. UBRC는 대학과 연계해 운영되는 시니어 주거단지의 한 형태로 대학의 인프라를 활용해 배움의 기회를 얻으려는 은퇴자들을 학생으로 받고 있다.

미국 고령화 사회에서 소비의 강력한 주체로 성장한 베이비부머는 이전 세대보다 평생교육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가 높다.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많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한 노년층들이 자신들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대학교의 문을 다시 한 번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는 지난 1979년 노인대학이 설립됐다. 노인대학의 학생의 수는 최근 20년간 100% 넘게 증가했고 학생의 3분의 2는 여성이며 연령별로는 55세부터 65세까지가 가장 많다.

프랑크푸르트 노인대학의 학생들은 연구자가 되어 연구하며, 강사가 되어 강의를 담당하기도 한다. 지식을 수용하는 소극적 학습자가 아니라 노년층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융합시키면서 학문이 발전하는 데 기여하는 능동적인 학습자가 되는 것이다.

‘일하는 노인’ 늘리는 국가들

일본 정부는 지난 2월 ‘고령사회대책’ 개정안을 확정했다. 개정안에는 “65세 이상을 일률적으로 고령자로 보는 일반적인 경향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내용을 새로 넣었다. 고령화 시대에 맞춰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보던 사회적 인식을 깨고 나선 것이다. 일본의 고령화 대책은 통상 60세인 정년퇴직 후에도 일하는 사람들을 늘리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공적연금 수급 개시 연령인 65세의 연기 가능 시점을 70세에서 그 이후로 조정했다. 이는 고령자 가운데서도 능력과 여건이 된다면 계속 직장에 남는 걸 장려하기 위함이다. 65세까지 정년을 연장하거나 계속 고용하는 기업에는 자금도 지원된다. 일본은 지난 2016년 기준 63.6%였던 60~64세 취업자 비율을 오는 2020년까지 67%로 올린다는 계획이다.

미국은 이미 1976년부터 고령 근로자에 대한 차별 금지법(Age Discrimination in Employment Act)을 제정하고 40세 이상 근로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했다. 진급과 임금, 해고 등에서 젊은 직원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채용 공고에도 나이제한을 둘 수 없도록 했다. 이어 1986년 이후 대부분의 직업군에서 정년퇴직제도가 사라졌다.

독일은 노년층이 노동시장에 잔류하는 기간을 늘리기 위해 연금수급연령을 상향조정하고 이에 따라 퇴직연령 또한 상향조정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또 노년층의 재취업의 걸림돌이었던 연령에 따른 노동제한제를 철폐하고, 기업이 비상시에 시니어 직원을 우선순위로 해고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