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피노키오’ 될 뻔한 정용진 부회장?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은 하마터면 ‘거짓말쟁이’가 될 뻔했다. 지난해 8월 스타필드 고양점 개점 기념행사에 참석한 정 부회장은 SK플래닛 오픈마켓 11번가 인수에 대한 의견을 전하면서 현장에 모인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올해 안으로 신세계의 이커머스 사업과 관련해 모두가 깜짝 놀랄만한 소식을 전하겠다.”

이는 그동안 롯데와 국내 오프라인 유통의 최강 자리를 두고 경쟁하던 신세계가 이커머스로 먼저 치고 나오겠다는 ‘선전포고’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17년이 다 지나가도록 정 부회장은 아무 말이 없었고 신세계그룹 홍보팀은 12월 31일까지 계속된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대응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렇게 새해가 되고 한 달이 거의 다 지나가는 시점에서 정 부회장은 약속을 지켰다. 

▲ 지난해 8월 스타필드 고양 개점 기념행사에 참석한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 출처= 신세계그룹

신세계그룹은 올해 1월 26일 외국계 투자운용사 2곳과 이커머스 사업 확장을 위해 약 1조원의 투자를 유치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그 이틀 뒤인 28일 이를 외부에 공표했다.

11번가 인수 포기한 신세계, ‘신세계’로 나가나

신세계그룹은 공식 발표에서 “사업 확장을 위해 신세계백화점·이마트로 나뉘어 있는 그룹의 온라인 사업부를 하나로 통합하고, 이커머스 사업 전담 법인을 새롭게 설립해 이커머스를 그룹의 핵심 유통채널로 육성한다”고 밝혔다.

정리하자면 이커머스를 전담하는 조직(혹은 회사)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조직은 신세계에서 과연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신세계가 앞으로 할 일을 살펴보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신세계는 이커머스를 이미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신세계의 각 유통 계열사 온라인 몰을 하나로 통합한 플랫폼 ’SSG.com’을 선보였을 때부터 신세계의 이커머스 사업은 시작했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 의견이다.

그럼에도 오프라인 채널에서 판매하는 상품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는 제품 구성으로는 국내에서 10년 이상 온라인 마켓을 운영해 온 전문업체들과 격차를 좁히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신세계는 기존 이커머스 업체를 인수하거나 손을 잡는 방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지난해 신세계가 SK플래닛의 오픈마켓 11번가의 인수를 실제로 검토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시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은 모두 연간 1000억원에서 최대 5000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하고 있었다. 신세계는 고민했고, 결국 인수를 포기했다.

온라인 유통업계의 전략기획 담당이었던 전문가는 “2015년 소프트뱅크가 쿠팡에 10억달러(약 1조원)를 투자할 때 평가한 기업 가치는 약 4조~5조원이었고 이후 이커머스 업체들의 기업 가치는 온라인 쇼핑 규모의 확대에 따라 계속 올랐기 때문에 11번가의 기업 가치는 최소 5조원 이상으로 보는 것이 업계의 평가였다”면서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 중 영업이익을 기록하는 업체는 이베이코리아밖에 없었고 아무리 이커머스가 필요한 신세계라도 수조원을 들여 매년 수천억원의 적자를 내는 업체를 인수할 정도로 모험을 할 이유는 없었다”고 말했다. 

▲ 현재 신세계 이커머스의 핵심. SSG.com 출처= SSG.com

‘1조원’으로 할 수 있는 일?

신세계의 온라인 성장세는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만큼 확실하다. 지난 1월 이마트는 이마트 온라인 몰의 지난해 연간 총 매출이 1조504억원으로 사상 최초로 1조원을 넘겼다고 자신 있게 밝혔다.

이마트 온라인 몰의 분기별 매출도 2016년 같은 기간의 매출액을 크게 넘어섰다. 1분기 온라인 몰 매출이 2438억원으로 2016년 1분기(1948억원)를 크게 웃돈 것을 비롯, 2분기 2512억원(2016년 2분기 2002억원), 3분기 2778억원(2016년 3분기 2121억원) 그리고 지난해 4분기에는 2776억원(2016년 4분기2315억원)을 기록하면서 2016년 분기 실적에 비해 크게 성장했음을 보여줬다. 

같은 기간 전체 매출액에서 온라인 몰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늘었다. 2016년 이마트 온라인 몰 매출 비중은 연간 총 매출 13조5642억원의 약 6.18%(8386억원)에 그쳤다. 지난해에는 총 매출 14조4705억원의 약 7.25%(1조504억원)를 차지해 약 1%포인트 상승했다. 이런 추세를 감안하면 신세계의 이커머스 확대는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신세계가 지난 1월 이커머스 확대를 위해 ‘1조원’을 유치하기로 한 데는 이런 셈법이 작용했다. 1조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지만 정 부회장이 말한 것처럼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정도의 변화를 추구하기에 충분한 돈도 아니다.

2015~2016년의 국내 이커머스 업계 ‘출혈 경쟁’은 각 업체들에게는 뼈를 깎는 고통이었지만 역으로 가격이나 배송 등 서비스는 상향 평준화됐다. 그렇기에 신세계가 1조원을 기존 SSG.com의 재단장에만 쓴다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그렇다면 신세계가 1조원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신세계 관계자는 “우리도 아직 모른다”는 말로 즉답을 피하고 있다. 유통업계는 신세계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대략 3가지로 예상하고 있다. 첫 번째는 온라인 몰을 지원하는 물류의 강화, 두 번째는 스타트업 인수, 그리고 세 번째는 최근 글로벌 이슈가 되고 있는 블록체인에 대한 접근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정황을 근거로 한 가설일 뿐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각에서는 “신세계 내부에서도 1조원을 어떤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에 대해 확실하게 정하지 못했다”는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정 부회장은 이미 주사위를 던졌다. 이제는 말을 집어 들고 말을 움직일 차례라는 게 유통업계의 견해다.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정 부회장이 던질 이커머스 승부수가 초미의 관심사가 된 이유다. 과연 신세계가 이커머스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묘수(妙手)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