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삼성전자가 23일 수원본사에서 이사회를 열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재계는 삼성전자가 이번 이사회를 통해 이사회 중심의 경영에 시동을 걸었다는 해석을 하고 있다.

이런 해석이 나오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사내이사에 변화가 생겼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임원인사를 통해 엔지니어 출신 50대 전문 경영인인 김기남, 김현석, 고동진 사장을 전면에 내세운 후 이번 이사회를 통해 세 사장을 등기이사로 내정했다. 김기남 사장은 1981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후 삼성 종합기술원장과 메모리 사업부장, 시스템 LSI 사업부장,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DS부문 반도체 총괄 사장을 두루 역임한 반도체 분야 최고 권위자다. 김현석 사장은 1992년 입사해 디스플레이 개발팀에서 일을 시작했으며 최근까지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을 맡아 왔다. 고동진 사장은 갤럭시 신화를 진두지휘한 인물이라 대중적 인지도가 높다.

2012년부터 경영지원실장(CFO)을 맡아온 이상훈 사장이 사퇴와 동시에 이사회 의장으로 추천된 점이 중요하다. 1966년생인 그는 경영일선에서 용퇴를 결심한 권오현-윤부근-신종균 체제와 비슷한 연배이지만 이사회 의장 자격으로 든든한 후방 지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 사장은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 실장이 부임하기 전까지 그룹 미래전략실에서 전략1팀장을 맡는 등 콘트롤 타워를 경험한 인물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핵심 측근 중 하나로 분류되기도 한다. 1990년대 말 이재용 부회장을 직접 보좌했으며 이후로도 사실상 '오른팔'로 활동해왔다.

사외이사의 변화는 이사회 중심 경영의 본격 전개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2016년 10월 사내이사로 선임된 후 삼성전자는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발표하며 삼성전자를 이사회 중심의 투명한 경영으로 끌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부회장도 등기이사로 선임된 후 "이사회 중심의 경영환경을 구축하겠다"는 뜻을 여러 번 피력한 바 있다.

외국인, 여성 사외이사 선임이 있었다. 내달 사외이사 임기가 끝나는 김한중 전 연세대 총장과 이병기 서울대 교수 후임으로 김종훈 키스위모바일 회장, 김선욱 이화여대 교수, 박병국 서울대 교수가 추천됐다. 김종훈 회장은 외국인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초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였으나 이중국적 논란으로 낙마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김선욱 전 총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여성 최초로 법제처장을 지냈으며 박병국 교수는 반도체 분야의 권위자 중 하나다.

글로벌 경영 감각을 가진 외국인과 여성을 사외이사로 추천한 것은 이사회 중심의 투명한 경영활동 강화를 의미한다. 폐쇄적인 경영 결단이 정치적 리스크를 걸러내지 못했다는 반성과 더불어 경영 능력 자체를 증진시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특히 김종훈 회장은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 등 ICT 소프트웨어 기술에 특화되었기 때문에 삼성전자의 글로벌 사업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 이사회는 50대 엔지니어 출신의 전문 사장단을 사내이사로 내정하고 이상훈 사장을 의장으로 삼은 후 외국인, 여성 사외이사 선임을 통해 다양한 이해 관계자의 요구를 반영하는 계기를 구축했다는 평가다. 삼성전자 이사회 멤버는 기존 사내이사 4명, 사외이사 5명에서 사내이사 5명, 사외이사 6명으로 늘어났다. 의사 결정의 핵심을 이사회에 두고 그 범위를 외국과 여성까지 넓혀 투명한 경영 환경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 삼성전자 화성 캠퍼스 EUV 공정이 시작됐다. 출처=삼성전자

한편 삼성전자는 이사회가 열린 날 경기도 화성 캠퍼스에서 EUV 라인 기공식을 열었다. 2020년 본격 가동을 목표로 60억달러의 자금이 투자되는 대역사다. 삼성전자는 화성 EUV라인을 통해 향후 고성능과 저전력이 요구되는 첨단 반도체 시장 수요에 적기 대응하고, 7나노 이하 파운드리 미세공정 시장을 주도해 나갈 계획이다.

삼성전자 DS부문장 김기남 사장은 기념사를 통해 "이번 화성 EUV 신규라인 구축을 통해 화성캠퍼스는 기흥, 화성, 평택으로 이어지는 반도체 클러스터의 중심이 될 것"이며, "삼성전자는 산학연 및 관련 업계와의 다양한 상생협력을 통해 국가경제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이사회 중심의 투명한 경영을 선언한 날 반도체 미세공정 기술 장악력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투자도 단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