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위스키 업계가 부진의 늪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출처= 픽사베이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물장사는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다. 물이 들어가는 제품은 제조 원가가 낮아 팔기만 하면 많은 수익이 발생한다는 뜻이었다. 지금은 다 옛말이다. 국내 주류(酒類)업계 상황을 보면 더 그렇다.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시장은 ‘위스키’ 업계다. 설명절이지만 위스키를 사려는 소비자들은 갈수록 줄고 있다. 명절만 되면 위스키 업계 경영자들은 위기감으로 밤잠을 설친다.

국내 위스키 업계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2008년부터다. 전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 미국발(發) 금융위기 여파는 우리나라까지 닿았고 그 때부터 시작된 경기 침체는 올해까지 10년째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고급 주류’의 대명사인 위스키 수요도 줄었다. 업계가 추산한 국내 위스키 출고량은 2008년(284만 상자) 이후로 지난해(약 150만 상자, 추정치)까지 단 한 번의 반동 없이 계속 줄었다. 만약 올해까지 출고량이 줄어들면 10년 연속 출고량 감소하는 것이다. 더욱이 140만 상자까지 내려간다면 시장 규모는 정확히 반토막 나는 셈이어서 업계가 느끼는 위기감은 과거 어느 때보다 달리 심각하다.

여기에 2016년 9월부터 시행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위스키 수요를 더 얼어붙게 만들었다.  김영란법은 선물 상한을 5만원으로 정해둬 고가제품이 많은 위스키 업계엔 극약처방이 내려진 것과 다름없었다. 그나마 최근 선물상한선이 10만원으로 완화된 것은 다행이다.

▲ 올해까지 출고량이 줄어들면 국내 위스키 업계 시장규모는 10년 연속으로 감소하는 셈이다. 출처= 업계 추산

다른 주류 제품군과 비교한 업계 내 위스키의 입지도 점점 좁아졌다. 관세청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8월 국내 위스키 수입액은 1억798만달러(약1165억원)을 기록하며 같은 기간 1억2458만달러(약1344억원)를 기록한 와인에게 수입주류 1위 자리를 내주고 3위로 밀려났다. 2위는 1억1594만달러(약1250억원)를 기록한 맥주가 차지했다.

생존위협을 느끼고 있는 위스키 업체들은 40도 이하로 알코올 도수를 낮춘 저도(低度) 제품, 소용량 제품을 선보이며 종전의 ‘프리미엄’ 이미지에서 벗어나 수요를 확장시키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쳤다. 이는 최근 확산되고 있는 '혼술(홀로 술을 즐기는 풍조)' 소비 트렌드와 잘 맞아 떨어지는 대안으로 여겨지며 나름 성과를 거뒀다.

몇몇 업체들은 위스키의 해외 수출을 시도하는 등으로 수요를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약 10년간 계속된 수요 하락세를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업계 의견이다.

위스키 업계의 전문가는 “우리나라와 주류 소비 패턴이 가장 비슷한 일본도 경기 침체가 지속되던 약 20년 동안 위스키 수요가 줄었다”면서 “각 업체들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경제 상황이 특별한 계기로 분위기가 반전되지 않는 한 국내 위스키 업계의 하락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업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위스키 수요 감소의 거의 유일한 대안은 시장 확장 밖에 없지만 생산 단가가 높은 위스키의 특성상 이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다”면서 “어렵지만 다른 대안을 추가로 마련해 두지 않으면,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