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SK텔레콤이 멜론 매각 5년 만에 음원 시장 플랫폼에 재진입한다고 발표했습니다. SM엔터테인먼트와 JYP엔터테인먼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서울 을지로 2가 SK텔레콤 본사에서 음악사업 협약식을 갖고 연내 음악 플랫폼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통신사가 콘텐츠 경쟁력을 확보해 다양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로드맵을 준비한다는 점에서 이번 협력의 의미가 큽니다.

▲ SKT가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새로운 플랫폼을 구축한다. 왼쪽부터 JYP 정욱 대표, 빅히트 방시혁 대표, SK텔레콤 노종원 유니콘랩스장, SM 김영민 총괄사장.출처=SKT

SK텔레콤은 2005년 당시 국내 최대 음반사인 서울음반사를 인수하며 음반 시장에 진입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이후 음반 시장이 음원 스트리밍 시장으로 변하며 서울음반사는 로엔엔터테인먼트(로엔)로 사명이 변경된 상태에서 SK플래닛의 자회사가 됩니다.

로엔의 멜론은 한 때 국내 음원 스트리밍 시장의 절반을 장악할정도로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러나 2013년 SK텔레콤은 로엔 지분 61.4%를 2972억원에 홍콩의 사모펀드인 스타인베스트홀딩스로 넘겼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지분 규제에 걸려 로엔의 지분을 100% 가지거나 모두 팔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SK텔레콤은 고심을 거듭한 후 지분 매각을 선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뼈 아픈 일입니다. 초연결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며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중요한 수단으로 목소리, 즉 음원이 각광을 받으며 다양한 인공지능 스피커가 출시됐기 때문입니다. 카카오가 2016년 로엔의 지분 61.4%를 무려 1조5036억원에 인수하는 등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의 몸값도 천정부지로 뛰었습니다. 2972억원이 3년 만에 1조5036억원이 되는 순간 SK텔레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 카카오미니 체험존이 운영되고 있다. 출처=카카오

더 큰 문제는 인공지능 생태계 구축에 있습니다. 글로벌 무대에서는 아마존의 알렉사, 구글의 구글 어시스턴트가 부상하고 국내에서도 네이버의 웨이브, 카카오의 카카오미니, KT의 기가지니 등이 출시되는 등 인공지능 스피커 시장이 커지면서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은 일종의 '옵션'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웨이브는 네이버뮤직, 카카오는 로엔, KT와 LG유플러스는 지니뮤직이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를 출시한 SK텔레콤은 단독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이 없습니다.

SK텔레콤은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엔터사들과 연합전선을 꾸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일각에서는 기존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인수 가능성도 제기됐으나 SK텔레콤은 새로운 플랫폼 구축을 위해 직접 엔터사들과 손을 잡는 것을 택했습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는 것이 업계의 반응입니다. 엔터사들은 다양한 음원 콘텐츠 창작자들을 관리하고 있으며, 정형화된 플랫폼과 비교해 조합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CES 2017 기간 SK텔레콤은 SM엔터와 함께 인공지능 스피커 위드를 공동으로 제작하는 등 일종의 '합'을 맞춰본 경험도 있습니다.

엔터사들도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콘텐츠 경쟁력이 ICT 플랫폼 생태계에 얼마나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엔이 카카오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LG유플러스가 어떻게 지니뮤직과 협력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SK텔레콤의 자회사인 아이리버가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콘텐츠를 멜론, 지니 등 음악 플랫폼 사업자는 물론 신나라, 핫트랙스 등 음반 도소매업체에 공급하는 대목도 중요합니다. 로엔이나 지니뮤직에 음원을 제공하는 엔터사들도 SK텔레콤과의 협력에 구미가 당길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이 만들어낼 새로운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은 대의명분도 걸었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며 음원 저작권 보호와 거래 기록 투명화 등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창작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블록체인의 분산장부 개념을 활용한다는 주장은 신기술에 대한 전향적 접근과 창작자들을 우대하는 생태계 전략을 강조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 등 다양한 ICT 플랫폼 기능을 더하는 것도 미래 가치 제고를 위해 손색이 없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을 하나 짚어보겠습니다. SK텔레콤은 엔터사와의 협력사실을 공개하며 자신들이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와 같은 차별적인 고객 혜택 패키지 개발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통신, 스마트홈, 영상(Oksusu), 커머스(11번가) 등 다양한 생활 서비스들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 스피커 누구가 T맵의 내비게이션, IPTV와 연동을 통해 사용자 경험을 고도화시키며 다양한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아마존의 방식처럼 보여준다는 논리입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누구 미니를 출시하며 아마존 에코의 파생 플랫폼 전략을 구사하기도 했습니다. KT의 기가지니도 패밀리라는 이름으로 플랫폼 세분화 정책을 보여줬기 때문에 새로울 것은 없지만, 최소한 생활밀착형이라는 키워드와 집 곳곳을 꼼꼼하게 채우는 ICT 사용자 경험을 위한 정지작업인 것은 확실하다는 평가입니다.

재미있는 대목은 SK텔레콤의 전략이 아마존 프라임도 닮았지만, KT의 전략에도 어느정도 교집합이 있는 점입니다. SK텔레콤이 직접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를 거론한 것은 11번가의 이커머스 플랫폼 기능을 중심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아마존이 핵심 플랫폼인 이커머스를 중심에 두고 방대한 생태계를 조성해 아마존 프라임이라는 큰 그림을 그렸듯이, SK텔레콤도 11번가를 핵심에 위치시키고 다양한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인공지능으로 묶는 방향을 공개했습니다.

여기에 금융 플랫폼이 더해지면 어떻게될까요?

KT는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를 출시하며 '카우치 뱅킹'이라는 개념을 꺼냈습니다. 쇼파에 앉아 인공지능 스피커의 사용자 경험을 원스톱으로 편리하게 서비스하는 개념을 말하는데, 이는 핵심적이고 활용 가능성이 풍부한 금융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KT는 기가지니 패밀리를 통한 인공지능 스피커 파편화에는 SK텔레콤 누구보다 다소 늦었으나, 오래전부터 케이뱅크를 인공지능 기가지니와 연결해 사용자 경험을 확장하고 IPTV와 접점을 모색하는 실험을 해 왔습니다.

운명일까요. SK텔레콤은 인터넷 전문은행 컨소시엄에 합류해 경쟁했으나 결국 탈락했으며, 지난해 하나은행과 협력해 핀크라는 플랫폼을 구축했습니다. 일종의 2030 가계부 개념인데 인공지능 큐레이션 기술도 제공합니다. 인터넷전문은행과는 개념이 다르지만 금융 ICT 플랫폼의 역할은 충분히 수행할 수 있습니다. SK텔레콤이 새로운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에 이커머스, 통신 서비스, IPTV, 내비게이션, 금융 플랫폼을 더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 핀크 서비스가 구동되고 있다. 출처=SKT

최근 핀크는 2030 세대를 넘어 장년층을 겨냥한 생활금융 플랫폼을 출시하는 한편 하나핀크 비상금대출이라는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용자의 소비자 패턴을 분석해 금융상품을 추천하는 핀크가 SK텔레콤 전체 생태계에 힘을 더한다면 어느정도의 파급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인공지능 생태계만 보자면 KT는 지니뮤직에 케이뱅크, IPTV와 연동되는 기가지니 패밀리를 전면에 내세웠고 LG유플러스는 네이버와 협력해 지니뮤직에 손을 뻗으며 스마트홈 전략과 연동하는 분위기입니다. SK텔레콤은 T맵과 SK브로드밴드 연결을 끌어냈고 누구 미니 출시로 파편적 사용자 경험도 창출했습니다.

여기에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구축에 나서는 한편 케이뱅크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핀크가 가세한다면 아마존 프라임 이상의 촘촘한 생태계도 꿈은 아니라는 말이 나옵니다. 물론 모든 것이 계획대로 성공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