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견다희 기자] 출시 한 달 만에 40억 판매. 오리온의 ‘오!감자’와 ‘꼬북칩’의 매출기록이다. 이 두 제품의 공통점은  한 사람의 신기한 손재주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바로 오리온연구소의 신남선 책임연구원이 주인공이다. 지난 2000년 '오!감자' 출시 당시 미투(모방)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롯데제과의 ‘감자마자’, 크라운제과의 ‘감자야감자야’, 한국야쿠르트의 ‘포테통’ 등 미투 제품의 출시만 봐도 이 제품이 얼마나 큰 인기몰이를 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국내 매출보다 중국 매출이 더 큰 오리온은 중국에서 '오!감자'를 지난해 2500억원어치 팔았다. 그의 손이 만든 꼬북칩도 지난해 3월 출시한 이후 월평균 30억원어치 팔리면서 지난해 2300만개 판매 기록을 세웠다.  신 연구원은 메가히트 제조기이며 그의 손은 미다스의 손이라고 해도 가히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이런 메가 히트 제품의 탄생 뒤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집념으로 난관을 이기고 히트 상품을 탄생시킨 신남선 책임연구원의 이야기를 이메일과 전화통화로 들어봤다.

▲ 오리온 연구소 신남선 책임연구원. 출처= 오리온

“하기 싫은 일 다 지우니 이거 하나 남더라”

신남선 책임연구원은 경기대학교 식품생물공학과 93학번이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본인이 뭘 잘하는지 어떤 것에 흥미를 느끼지는 잘 몰랐다고 한다. 대학에 진학할 때도 학과 전공을 정하는 과정에서도 고민이 많았다. 그는 “잘하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었지만 그래도 선택은 해야하니 반대로 하기 싫은 것들을 하나씩 지워봤다”면서 “그랬더니 마지막에 식품생물공학과가 남아있더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렇게 그는 식품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인연을 만들었다.
 
그렇게 나름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 고른 전공은 그의 적성에 딱 맞았다. 그는 전공도 살리고 싶었고 매번 새로운 일을 하는 연구소에서 일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졸업 후 오리온 연구소에 들어갔다. ‘왜 오리온이었나’라는 질문에 그는 "오로지 식품에 대한 관심과 열정, 그리고 가능성을 봐준 곳이 오리온이었다"고 답했다. 식품회사 연구원은 자격이 석사이상만 되는 곳도 있다. 반면 오리온에는 그런 기준이 없었다. 그는 “사실 연구원 또는 개발자는 전공 지식이 중요하지만 학부 수준으로도 충분하다”면서 “식품공학을 전공한 사람은 대부분 음식의 생산과 공정의 이해도를 측정하는 식품 기사(한국산업인력공단 주관)를 따기 때문”이라며 식품공학을 공부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소금물 농도 0.8%과 0.82%의 차이”

소금물 농도 0.8%과 0.82%의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데 그걸 구분하는 사람이 있다. 신남선 책임연구원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다. 그가 처음부터 미각이 예민했던 것은 아니다. 오리온은 한 달에 한 번씩 짠맛, 신맛, 매운맛, 신맛의 정도를 감별하는 ‘관능 평가’를 한다. 입사 초기 그는 맛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비염이 심해 모두가 짜다고 할 때 혼자 싱겁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다. 그는 하루종일 과자 맛을 봤다. 혀가 마비돼 맛을 느낄 수 없을 때도 많았다. 나중에는 오른쪽, 왼쪽 번갈아가면서 씹어 먹었다. 녹여먹기도 하고 씹는 횟수도 다르게 먹었다. 그는 과자를 너무 많이 먹어 입안이 까끌해 식사를 거르기 일쑤였다.

그는 “연구원이 된지 올해로 18년”이라면서 “지금도 시간이 나면 맛집을 찾아고, 국내외 과자를 시식하고 분석하는 일이 즐겁다”고 말했다. 

“과자는 소리까지 맛있어야죠”

신남선 책임연구원은 과자에 대한 독특한 철학을 갖고 있다. '과자는 소리까지 맛이 있어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  그가 탄생시킨 ‘오!감자’, ‘꼬북칩’의 공통점은 ‘바삭’한 식감이다. 과자를 만들 때 맛, 모양, 식감 3가지 요소가 중요하다. 그 중 그는 식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지금의 오!감자의 모양이 나온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단순히 감자칩 모양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직사각형 기둥에 가운데 공간을 뚫어 만든 것이다.  씹었을 때 바삭한 식감을 주기 위해 가운데 공간을 비운 것이다. 국내 최초 4겹 과자 꼬북칩도 마찬가지다. 4겹을 겹치면서 중간 중간 공간을 뒀다. 그러나 4겹을 겹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8년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4겹 과자는 그의 ‘이루고 싶은 꿈’이었다. 그는 공정설비를 갖추기 위해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공장을 찾아다녔다. 성과는 없었고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개발에 들어간 지 3년 만인 2011년 회사는 공식으로 4겹 과자 개발을 포기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틈날 때마다 설비를 만드는 협력업체를 찾아다녔다. 그는 설비를 만드는 방식이 업체마다 다르기 때문에 여러 각도로 시도하면 답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원료배합, 숙성시간, 튀기는 시간과 온도, 수분 함량 등을 다르게 하면서 끝없이 시험했다. 2015년, 그의 끝모르는 노력은 결국 결실을 맺었다. 4겹의 과자가 서로 달라붙지 않고 부드럽지만 바삭하게 씹히는 식감을 만드는 기술에 성공했다.

그는 “이번에도 안되면 사표를 내겠다는 각오로 사표를 가슴에 품고 다녔다”면서 “100억의 투자비용이 들어간 만큼 중압감이 하도 커 원형탈모가 생기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신 책임연구원은 “그렇지만 성공만한다면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자신이 있었다”면서 “8년간 테스트만 2000번 이상 거친 제품”이라고 여전한 자신감을 보여줬다.

“소비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과자라면 꼬북칩보다 오래 걸려도 당연히 도전해야죠”

신남선 책임연구원은 “지난 8일 꼬북칩의 세 번째 맛 ‘새우맛’이 출시됐다”면서 “그래서 요즘엔 청주 공장에서 거의 지내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식품연구원은 제품을 출시하는데서 역할이 끝나는 게 아니다. 시중에 내놓은 제품을 꾸준히 관리하는 것도 식품연구원의 역할이다. 과자 맛이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계절에 따라 생산 조건을 다르게 해줘야 한다. 소비자들의 반응에 따라 맛에 변화를 일부로 줄 때도 있다.

그는 “꼬북칩처럼 붐을 일으킨 과자는 사람들이 단시간에 대량으로 먹어 질리기 쉽다”면서 “적절한 시기에 새로운 맛을 출시해야 브랜드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세 번째 맛을 출시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그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맛을 보면 다른말 없이 단번에 “와우!” 라는 감탄사가 나올 수 있는 차별화 된 제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다음에 그가, 그의 손이 내놓을 제품에 대한 기대가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