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허지은 기자] 새해벽두 예능 트렌드는 ‘글로벌’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글로벌 문화와 언어’다. TV를 켜면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모국어로 자유롭게 대화하며 여행하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국 문화에 익숙한 외국인이 자국의 친구들을 초대해 여행을 나누는가 하면 외국인 관광객에게 연예인의 집을 게스트하우스로 빌려주기도 한다.

반대로 한국 연예인들이 외국에 나가 그 나라 언어와 문화를 익히는 예능도 인기다. ‘투어’, ‘식당’, ‘트립’ 등 다양한 간판의 예능들은 외국을 배경으로 이국적인 무대를 시청자들에게 선사한다. 외국인 패널들이 예능에 나와 서툰 한국어로 대담을 이어가던 몇 년 전 트렌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바뀐 것은 예능 트렌드뿐만이 아니다. 외국어 학습 트렌드도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외국어 공부를 위해 방학마다 학원을 전전해야 했던 학생과 직장인들은 이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모니터 앞에 앉는다. 영상 속 선생님 혹은 드라마를 마주하며 대화를 익히고 그 안에서 실력을 쌓는다. 최근엔 혼자 공부한다는 ‘혼공’도 대세다. 영어가 안 되면 전액 환불을 보장한다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외국어 공부를 차일피일 미뤄온 이라면 최근의 트렌드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와우! 정현’ 테니스에 이은 영어 실력에 또 놀라

2018년 1월. 호주 멜버른 파크를 뜨겁게 만든 대한민국 청년이 있었다.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 대회 4강에 올라 ‘한국 테니스의 희망’으로 떠오른 정현 얘기다. 올해로 22살인 그는 테니스 실력만큼이나 유창한 영어실력으로도 주목 받았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대화와 유머를 겸비한 그의 회화에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 언론까지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지난달 호주 오픈에서 한국인 최초로 세계 메이저 대회 4강에 오른 테니스 선수 정현은 테니스 실력만큼이나 유창한 영어실력으로도 주목 받았다. 출처=대한테니스협회

정현은 지난달 22일 호주오픈 남자 단식 16강전에서 세계 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를 꺾고 마이크 앞에 섰다. 그는 3세트 타이브레이크에서 3-0에서 3-3까지 따라잡혔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는 질문에 “나는 조코비치보다 젊기 때문에 몇 세트를 더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2시간은 더 뛸 준비가 돼있다”는 답변으로 관중으로부터 큰 웃음을 이끌어냈다. 8강전을 마치고는 “4강에서 로저 페더러와 토마시 베르디흐 중 누구와 맞붙고 싶냐”는 질문에 “반반”이라고 답변해, 영국 일간 <가디언>에게 “외교관급 화술”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정현의 인터뷰는 문법적으로 완벽한 것은 아니다. 세세하게 파고 들면 어순의 나열이나 맞지 않는 단어 사용 등 허술함이 눈에 보인다. 그러나 몇 년 전에 비하면 대단한 실력 향상이다. 현지에서 취재하던 한 기자는 “몇 년 전 중국 대회까지만 해도 영어를 거의 못 하지 않았느냐”면서 영어 실력 향상의 비결을 묻기도 했다. 호주 일간 <헤럴드 선>은 그의 인터뷰를 두고 “더듬거리긴 했지만 매우 나아진 영어 실력과 노력을 보여줬다”고 칭찬했다.

정현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비결을 물은 기자의 질문에 “투어를 돌 때마다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 내 친구 데이비드 현도(정현도 교수)와 함께 투어를 돌면서 영어로만 대화를 했다”고 답변했다. 그는 “현도는 매일 내게 숙제를 내줬다. 또 <모던 패밀리> 같은 미국 드라마를 보라고 추천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생활 속에 녹아든 영어가 그의 회화 실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셈이다.

남다른 ‘동기부여’가 ‘실력 향상’을 이끈다

미국 드라마로 영어 실력을 쌓은 스타가 또 한 명 있다.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탑100에 오른 그룹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이다. RM은 미국 진출 이후 굵직한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은 물론 수많은 인터뷰를 영어로 소화하며 뛰어난 영어 실력을 보여줬다. 유창한 영어실력은 물론 위트까지 겸비한 RM의 영어엔 말 그대로 ‘거리낌’이 없었다. 

▲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탑100에 오른 그룹 방탄소년단의 리더 RM 역시 뛰어난 영어 실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그가 방송에서 수차례 밝힌 바에 의하면 RM은 외국 유학이나 현지 생활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순수 ‘국내파’인 그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영어학원만 수십 곳을 다녀봤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그의 실력을 키운 것은 미국 드라마 <프렌즈>였다. 여기에 좋아하는 가수의 팝송을 즐겨 듣고, 그들의 가사를 분석하고,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 RM은 영어 실력을 차분히 쌓아나갔다.

단순히 RM과 정현이 영어를 좋아해서, 혹은 배우고 싶어서 노력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직업과 무대를 보면 언어적인 열망 그 이상의 것이 이들을 이끌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들의 무대는 한국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월드 투어를 돌며 세계 랭킹권 선수들과 마주하는 정현이나, 세계 정상급 팝가수들과 어깨를 견주는 아이돌그룹 리더 RM에게 영어는 ‘플러스 알파’ 그 이상의 효과를 가져다줬을 것이다.

이수현 해커스 강사는 “정현과 RM의 경우 영어를 배우는 데 있어서 남들보다 동기 부분이 강했을 것”이라며 “짧은 시간에 영어 실력을 그만큼 키웠다는 건 세계적인 스포츠 선수나 월드스타로 발돋움하겠다는 동기가 강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초·중·고 12년을 꼬박 배워도 쉽게 늘지 않는 것이 외국어다. 완전한 바이링구얼(Bilingual)이 되지 않은 이상 일정 기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이 잊게 되는 것도 외국어다. 그러나 확실한 동기만 있다면 노력에 비례해 실력이 수직 상승하는 것도 외국어다. 결국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