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자신의 재산을 밝히라는 법원 결정을 따르지 않는 채무자를 최대 2개월까지 구속시키도록 한 현행 감치제도에 대해 인권 침해와 함께 위헌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제도의 실효성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법을 잘 모르는 일용직 노동자나 몸이 불편한 저소득층이 주로 구속되고 있어 형평성 논란도 뒤따른다.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 민주당 제윤경 의원실과 박주민 의원실은 ‘채무자 감치제도의 인권침해와 위헌성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 전문가들과 토론을 벌였다. 

감치는 채권자가 채무자의 재산을 밝히라는 신청(재산명시 신청)에 대해 법원이 채무자에게 법원에 나와 선서를 하고 재산을 밝히라는 결정(재산명시 결정)을 내리는 절차를 거친다.

채무자가 법원 결정을 따르지 않을 경우 법원은 최대 2개월 범위에서 채무자의 인신을 구속할 수 있는 감치명령을 내리고 경찰이 구속을 집행한다. 제도의 도입 취지는 채권자가 돈을 빌려주고도 채무자가 재산을 숨겨 못 받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감치는 구속이 아니다”라는 주장도 있지만, 채무자가 유치장에 수감되고 수용자 규정을 준수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구속이다.

가난이 구속사유라고?

법원행정처 통계에 따르면 한 해 평균 2만 명 이상이 법원으로부터 감치명령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치명령을 받은 사람중 몇 명이 구속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감치명령을 받은 이들은 잠재적 구속 대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감치되는 채무자들 대부분이 주소가 일정치 않은 금융소외계층이거나 주소지가 있더라도 일 때문에 낮에 집에 있지 않은 노동자 등 저소득층이라는 점이다. 채권자의 채무독촉이 두려워 다른 곳에 주소지를 옮겨놔야 하는 영세채무자가 연행 대상이 된다.

이들은 법원의 문서를 받더라도 어려운 법률용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법적 대응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방치하다가 감치명령을 받는 상황이 많다. `가난이 구속사유가 되는` 셈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성남금융복지상담센터 김미선 센터장은 2000년대초 출산과 동시에 감치됐다가 풀려난 여성의 사례를 들며 “이 여성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도 엄청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 센터장은 이어 “금융복지상담센터를 찾는 방문자들의 60%가 무직자이거나 단순노무자이고, 70%가 차상위 계층”이라며 “법원의 재산명시 서류의 어려운 용어를 도움 없이 해독하고 이해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남편 빚으로  이혼 후 어린 딸을 기르다 감치명령문 받고 동분서주했던 김모씨는 이날 토론에서 딸과 동반자살을 시도할 만큼 생활고가 심했다며 사연을 털어놨다. 심장 수술을 받고 살림살이에 압류딱지가 붙는 상황에서 김씨는 법원의 감치명령을 받게 됐다. 김씨는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고 겨우 구속을 모면했다.

▲ 23일 국회에서 의원회관에서 감치제도의 인권침해와 위헌성에 대해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양인정 기자

계약관계 바탕으로 인신 구속?...인권침해 소지 커

감치제도는 도입 당시 법무부가 반대의견을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법무부는 “영세한 소액채권자 보다는 영세한 소액채무자가 많은 것이 현실”이라며 “소액채권자는 영세서민이 아니라 신용카드업자, 사채업자, 은행, 제2금융권, 대부업체 등 사회적인 강자이기 때문에 소액채권을 변제하지 못한 영세한 채무자에 대해 강력한 제재수단을 가할 경우 사법 정의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도입의 반대이유를 밝혔다.

한국법제연구원 최환용 선임연구위원이 이날 인용한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감치제도의 도입 이후 채무자가 재산을 밝히는 선서 비율이 60%로 높아졌다. 하지만 채무자가 법원에 출석해 재산명시를 선서한다고 해서 채권자들이 채무자의 재산 회수율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영세 채무자들이 법원에 나와 선서 후 밝힌 재산의 정도는 집안의 살림살이 정도가 대부분이다. 그 외 재산이 더 있는지에 대해서는 채권자가 다른 금융회사에 별도로 재산조회를 해야 하지만, 금융회사가 조회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결국, 금융회사의 재산명시신청은 법원을 이용해 영세 채무자의 심리적 압박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김미선 센터장은 “센터에 접수된 실제 사례 중에는 100만원도 안되는 채권으로 감치가 되기도 한다”면서 “감치를 통해 채권자에게 실질적인 효용보다는 법원의 명령에 불응해 ‘괘씸죄’로 법정 구속된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경제적 불평등이 다시 법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고 것이 김 센터장은 강조했다.

▲ 성남금융복지상담센터에 접수된 감치명령 사례 목록. 목록에는 100만원 미만 채권금액으로 감치명령이 내려진 사례가 포함되어 있다. 자료=성남금융복지상담센터 고은애 상담사 사례 

감치제도는 또다른 이유로 인권침해 논란에 서있다. 사실상 영장 없이 인신을 구속, 영장주의에 반하고, ‘누구도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이유로 구금되지 아니한다’는 시민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도 어긋난다는 것이 감치 반대자들의 논거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다르게 평가했다. 감치가 돈을 갚지 않아서 구속되는 것이 아니라 법원 절차에 따르지 않아 구속되는 것이라는 논리로 헌재는 감치에 처한 한 채무자의 헌법소원을 기각했다.

한국법제연구원의 최환용 선임연구원은 “감치제도의 도입 취지가 재산명시 명령의 실효성을 높이려고 할 뿐,  감치집행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채무자의 인권보호 측면은 반영하고 있지 않다”며 “특히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구금돼 경제적 활동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결과적으로 채무변제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문제가 있다”고 평가했다.

채무자의 재산명시 불이행에 대해 반드시 인신구속으로 강제해야 하는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도 이날 토론회 쟁점이 됐다. 특별법을 만들어 감치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제윤경 민주당의원은 지난해 11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기소액채권에 대해서는 감치결정을 면제하도록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제 의원은 제안이유에서 “우리나라에서 책임대출과 같이 채권자의 윤리와 의무규정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채무자에게만 가혹한 형벌을 부여하는 것은 채권채무 관계가 사적인 계약이라는 점을 넘어선 인권 침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