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한동수자본시장부장] “귀하의 본명(이름)을 변경하는 것 이상으로 신중하게 처신해주십시오”. 작명소나 가정법원 재판부에서 나 온 얘기가 아니다.

미국 증권감독기관인 증권거래위원회(SEC) 최고 책임자 제이 클레이튼 의장이 블록체인으로 회사이름을 변경한 상장사들에게 던진 경고 메시지다.

클레이튼 의장은 22일(현지시간) 노스웨스턴대학교 로스쿨에서 열린 증권규제관련 연설에서 “뉴욕증시 상장업체들 가운데 블록체인을 암시하거나 아예 포함시켜 회사 이름을 바꾸고 사업목적에 추가해 공시한 기업들을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 불고있는 블록체인 광풍의 단면이다.

클레이튼 의장의 이같은 발언이 우리에게 낯설진 않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9년 코스닥시장에서 벤처 광풍을 경험한 바 있었다. 당시 코스닥 상장종목들 가운데 IT(정보통신)를 암시하는‘닷컴’이나 ‘기술’ 등 사명 변경이 유행처럼 번졌었다. 건설회사도 사업목적에 인터넷사업을 추가해 공시하던 때였다. 실제로 코스닥에선 상호를 첨단기업 이미지로 바꾼 기업들의 주가가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졌었다.

지금 뉴욕증시에서도 이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 블룸버그에 따르면 클레이튼 의장은“뉴욕증시 상장업체들이 실제 사업과 무관하게 블록체인 경쟁에 뛰어들기 위해 상호를 변경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면서“SEC는 앞으로 블록체인 관련 상호 변경이나 사업목적 추가 상장사에 대해 면밀히 조사해 증권법 위반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클레이튼 의장이 지적한 사례로 롱 블록체인(Long Blockchain)으로 사명을 바꾼 롱 아일랜드 아이스 티(Long Island Iced Tea Corp.)를 꼽았다. 이 회사는 사명을 바꾼 후 가상화폐 회사를 매입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가가 200%(약 3배)나 폭등했다.

상호를 변경한 것은 아니지만 이스트만코닥(Eastman Kodak, 이하 코닥)의 예도 거론됐다. 코닥은 블록체인 기술을 응용해 온라인 데이터베이스에서 사진을 구입할 수 있는 코닥코인(Kodakcoin)을 만들겠다고 발표한 후 200%이상 주가가 뛰어올랐다.

헬스케어 업체였던 바이옵틱스(Bioptix)의 경우 지난해 12월 가상통화 사업을 추가한다고 공시하면서 상호를 ‘라이어트 블록체인(Riot Blockchain Inc.)’으로 교체했다. 이후 이 업체 주가는 300%(약 4배)넘게 올랐고, 이달 초에는 상호변경 후 약 1200%(약 13배)폭등했다.

뉴욕증시에는 블록체인보다 가상통화 이슈로 주가가 폭등한 상장사도 있다. 가상통화를 연상시키는 크립토(Crypto)를 사명으로하는 크립토컴퍼니(crypto company)가 주인공. 이 회사는 지난해 6월 피트니스 관련 웹사이트 크로에(Croe)를 인수하며 우회 상장한 후 10월 크립토컴퍼니로 상호를 변경하고 사업목적에 블록체인과 가상통화 관련 자문과 투자를 추가했다. 이후 지난해말까지 주가가 약 2700%(약 28배) 급등해 이달 초 거래가 중단되기도 했다.   

클레이튼 의장은 “블록체인과 관련된 상호변경이나 신규사업을 공시할 경우 위험성도 동시에 알려야 한다”면서 “이 같은 위험경고가 없을 경우 (미국)증권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 99년 코스닥 열풍시기를 복기해볼 때 앞으로 상장사들 가운데 블록체인이나 가상통화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상호변경이나 신규사업 추가공시를 하는 상장사들이 늘어날 수 있다”면서“감독당국이 투자자 보호를 위해 미국 수준은 아니더라도 주의를 환기할 수 있는 선제적인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