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까지의 마케팅은 브랜드를 유명하게 만들기만 하면 성공이었다. 한 업종 내 브랜드 수가 많지 않았기에 사람들에게 알리면 판매는 따라왔다. 광고도 많지 않아서 웬만한 미디어를 통해 노출하면 대중들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그런 전략은 곧잘 먹혀 들었으며 효과도 상당했다. 소비자들은 각각의 카테고리에서 덜 알려진 브랜드보다는 널리 알려진 브랜드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전혀 다른 양상이다. 소비자는 마음 속에 확실하게 새겨진 브랜드의 제품을 구매한다. 이때 브랜드가 소비자의 마음을 파고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선두주자라는 이미지다. 어떤 브랜드가 그 업계에서 선두라는 이미지가 새겨지면 소비자는 당연히 그 브랜드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선호하게 된다. 제일 먼저 만들어 팔기 시작한 업체의 제품이 최고가 아닌데도, 선두이니 최고라고 많이 생각한다. 이런 인식 때문에 기업들은 1등을 선호한다. 1등은 언론의 노출도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 주위에는 보기보다 1등을 하는 브랜드가 너무 많다. 동일한 제품군에 속하는데도 불구하고 이 제품도 1등이고 저 제품도 1등이다. 심지어 같은 제품류에서 사람들이 저마다 알고 있는 1등 브랜드들이 다른 경우도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1등이라는 글자는 크게 붙어 있지만 어떤 분야에서 1등을 한 것인지는 눈에 잘 띄지도 않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1등을 했는지는 몰라도 그냥 1등이라는 기억은 남게 된다.

 

강한 브랜드, 차별화된 스토리로 시장을 장악하라

할리우드 영화가 국내에서 소개될 때마다 ‘미국 박스 오피스 1등’이라고 대대적으로 내세운다. 웬만큼 인기 있는 영화 치고 박스오피스 1등이라고 광고하지 않는 영화가 없을 정도다. 1등이 이렇게도 많을 수가 있나 하고 의문일 때도 있다. 박스오피스 1등은 그 주 후반에 개봉해 주말 동안 수입이 가장 많이 나온 영화에 붙는 타이틀이다. 박스오피스에 몇 주 이상 1등을 차지하는 명작도 있지만, 새 영화가 몰리지 않는 시기에 신생영화로 등장해 이전 영화들에 비해 그 주말에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들었다면 박스오피스 1위 타이틀이 붙는다.

그런 영화가 수입되면 대문짝만하게 박스오피스 1등이라고 한다. 뭘 볼지 애매할 때 1등이라는 문구는 상당히 큰 힘을 발휘한다. 1등 영화는 좋은 영화라는 인식이 지배한다. 마케팅에서 노리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우리 주위에서 보게 되는 수많은 1등 제품들도 뜯어보면 가장 먼저 출시된 제품, 가장 많이 팔린 제품, 가장 인기가 높은 제품, 출시된 이후 특정 기간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제품 등 카테고리가 무척 다양하다. 그런데 한결같이 1등이라고 선전을 한다. 사실 뭐가 진짜 1등인지 알 수도 없는 실정이다.

1등이라는 타이틀을 갖다 붙이는 것은 경쟁 제품보다 더 나은 제품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서인데, 사실 더 나은 제품이라고 해서 항상 더 좋은 브랜드가 되지는 않는다. 이제는 경쟁 제품과 다른 제품이 되어야 더 좋은 브랜드가 될 수 있다. 한마디로 차별화에 성공해야 하는 것이다. 더 나좋은 제품을 만든다고 반드시 돈을 더 버는 것도 아니다. 더 좋은 브랜드를 만들어야 돈이 되는 세상이다.

새로운 제품 카테고리를 최초로 뛰어든 브랜드가 장악하는 것은 아니다. 최초의 브랜드는 대개 기존 브랜드에서 제품 확장을 하거나 소니 마비카 디지털 카메라처럼 더블 브랜딩한 제품들도 많다. 그런 브랜드로는 새 카테고리를 장악할 수 없다. 또 유명하다는 사실만 가지고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장을 장악해야 강력한 브랜드가 된다.

그 브랜드만이 가지는 차별화된 이야기와 아이디어가 있어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이다.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히 메시지를 파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자기 자신, 즉 메신저를 파는 일이 되어야 한다. 메신저의 신념을 팔아야 메시지에 담긴 스토리가 팔린다.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설득력은 많이 말하는 것보다 짧게 말하고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가운데 생겨난다. 훌륭한 메신저는 20%만 말하고 나머지 80%는 듣는다고 한다. 설득의 파워는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는 공감적 경청에서 나온다.

최근에 인터넷에서 본 동영상 하나가 기억난다. 4분 37초의 길지 않은 내용인데, 제목이 ‘삼성 애니콜 광고로 알아보는 핸드폰의 역사’다. 1997년부터 2015년까지 등장했던 CF를 이어 붙인 내용이다. 처음 등장은 당대의 최고 영화배우 안성기가 등장해서 초소형, 초경량, 음성자동다이얼 기능 등 다양한 장점들을 숨가쁘게 선전했다. 당시엔 모토로라, 노키아, 에릭슨 등의 글로벌 강자들 틈에서 삼성이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함께 글로벌시장을 호령하면서 광고는 많이 달라졌다. 우선 유명 연예인을 내세우지 않고 애써 뭔가를 강조하기보다는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차지하는 스토리를 내세웠다. 사람들의 이목을 더 끌어들이는 스토리로 차별화함으로써 오히려 스마트폰이 더 빛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최상위의 영업 행위다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이나 할 것 없이 매출 최일선에서 뛰고 있는 영업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어내더라도 팔아야 수익이 나고 회사가 돌아간다. 서비스, 금융상품, 분양에 이르기까지 영업부서는 언제나 수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부서이고 경영진들이 늘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수익을 올리는 부서 외에는 흔히들 ‘코스트 센터’라고들 한다. 비용을 쓰기만 할 뿐 직접 수익을 가져오지는 못하기 때문인데, 특히 비용을 많이 쓰는 곳이 커뮤니케이션 부서라 별다른 전제조건 없이 코스트 센터라 하면 커뮤니케이션 부서를 지칭한다.

‘커뮤니케이션이야말로 최상위의 영업활동’이라 할 수 있다. 제품이나 기술, 서비스에 국한하지 않고 CEO를 포함해서 기업 이미지 전체를 영업하는 활동이 커뮤니케이션이다. 여기엔 실체가 없다. 그냥 회사를 긍정적인 스토리로 승화시키는 것인데, 기업이 힘들거나 위기에 봉착했을 때 기업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최전선에서 뛰는 사람이 커뮤니케이터다.

영업은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불만이 있거나 거부감을 가질 경우 그 고객을 포기할 수도 있다. 반면 커뮤니케이터에게는 그런 선택권이 없다. 담당기자나 취재하는 언론매체가 싫다거나 탐탁지 않다고 생각돼도 다른 기자나 매체로 바꿀 수 없다. 어떻게든 마음을 돌려놓도록 해야 한다. 그것도 아니면 차라리 기자가 회사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라도 해야 한다. 말처럼 쉽지 않다. 절대로.

영업은 실체가 있는 제품이나 상품 아니면 서비스를 팔지만 커뮤니케이터의 영업은 대상만 있을 뿐 실체가 없다. 영업은 또 회사는 맘에 들지 않더라도 제품이 뛰어나다면 그것만으로 판매에 성공할 수 있다. 특별한 AS를 한다든지 아니면 경품이라도 주면서 환심을 살 수도 있다.

커뮤니케이터가 팔고자 하는 기업의 이미지는 매출과 같은 영업실적은 물론 CEO나 제품, 때로는 임직원들의 인간적인 면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바탕이 되어 형성된다. 사회가 주목 할만한 이벤트를 여는 경우도 기업의 이미지를 높여서 결국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기업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경영자가 오판이나 실수를 하거나, 기업이 의도치 않게 실책을 범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여론이라는 도마 위에 올려놓고 잘근잘근 씹어대는 경우도 있다. 경영자를 비롯해서 다들 숨기에 바빠도 커뮤니케이터는 그럴 수 없다. 어떤 난감한 상황에서도 달라붙어서 여론의 물꼬를 돌려야 한다. 적대적인 감정이 느껴지는 경우에도 만나서 설득해야 한다. 고객이 될 가망이 없을 경우 과감하게 돌아서는 것이 영업일 수 있다면 커뮤니케이터는 절대 포기하는 법이 없다. 기어이 마음을 돌려야 한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은 영업활동 중에서도 최상위 영업행위다.

예전 CF는 3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온갖 것들을 전달하고자 했기 때문에 수다쟁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일방적으로 전달만 하고자 했다. 하지만 트렌드가 바뀌었다. 한꺼번에 많은 것들을 전달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스토리를 추구하게 되었다. 강요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뭔가를 자발적으로 하도록 만드는 쌍방향으로 진화했다. 이런 기교는 긍정적인 기업 이미지라는 발판이 있어야 더욱 효과적이다. 긍정적인 기업 이미지야말로 제품 판매 증가, 주가 상승, 취업 선호도 향상 등 기업이 추구하고자 하는 거의 모든 활동의 원동력이 된다.

커뮤니케이터가 어디서 무엇을 팔아야 할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여러 사람들과 많은 시행착오 끝에 조금씩 그 결과로 드러나게 될 뿐이다. 한번 팔고 나면 그만이라고 할 수도 없다. 사는 사람이 싫든 좋든 포기 하지 않고 달라붙어야 하고, 계속 그 다음 것을 팔아야 한다. 그게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