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 앞에 서자 작은 카메라가 분주히 움직인다. 센서가 자동으로 집 주인의 얼굴을 인식해 도어락을 해제한다. 현관에 들어서면 잠들어 있던 집이 깨어난다. 외출한 동안 차단돼있던 전기, 수도, 가스 등은 현관 잠금이 풀리는 순간 자동으로 다시 연결된다. 집 주인의 패턴을 분석해 집이 스스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셈이다. 그 혈류는 블록체인에 저장된 암호화된 데이터다. 그에 따른 요금 결제까지도 가상통화로 이뤄진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전삼구(46) 더블체인 대표가 그리는 블록체인이 가져올 미래 모습이다. 모든 것이 초연결되는 4차산업혁명 시대, 블록체인은 각각의 디바이스에 남은 로그 데이터를 통해 모든 것을 제어하고 관리한다. 블록체인이 갖는 강력한 보안을 바탕으로 사물인터넷(IoT)이 갖는 해킹 위험도 보완할 수 있다.

블록체인은 우리에게 아직까지 낯선 영역이다. 가상통화(가상화폐)에 대해서는 ‘투기냐 투자냐’를 놓고 연일 갑론을박이 쏟아지고 있지만 블록체인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가상통화보다 블록체인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가상통화에 회의적인 우리 정부도 “블록체인에 대해서는 투자를 지원하고 육성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실제로 블록체인은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기술이다. IBM과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세계 90% 국가의 정부 기관은 올해까지 블록체인 기술에 투자하고 육성할 계획을 발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퇴계로에 위치한 더블체인 본사에서 전삼구 대표가 그리는 블록체인으로 연결된 세상을 들어봤다.

▲ 전삼구 더블체인 대표.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블록체인, 비즈니스가 될거라 확신했다”

전 대표는 2014년 더블체인을 세웠다. 2000년대 초반부터 SK화학, LG, 현대캐피탈, 삼성전자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시스템 개발을 맡아오던 전 대표는 다른 사업을 찾던 중 우연히 가상통화 비트코인을 알게 됐다. 비트코인 거래를 해보고 모임을 찾아다니면서 그는 비트코인보다 근원 기술인 블록체인 기술의 매력에 빠졌다. 막연히 이건 될 거란 확신이 그를 지배했다.

국내 사업자 대부분이 거래소나 가상통화 기반 금융시스템에 주목할 때 전 대표는 블록체인 플랫폼에 집중했다. 플랫폼을 구축할 전문 개발자를 찾아나섰고 관련 기술을 끈질기게 파헤쳤다. 그 결과 2016년에는 ‘블록체인기반 전화화폐 거래 플랫폼’으로 미래부 장관상을 수상하고 관련 특허를 세계 최초로 획득하기도 했다. 2016년말 기준 5명에 불과했던 직원 수는 2018년 1월 현재 40명 가까이로 늘어났다. 전 대표는 “다소 무모했지만 운이 좋게도 맞아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에는 현대계열사인 현대BS&C가 설립한 핀테크 기업 현대페이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한국디지털거래소 등과 함께 가상통화 Hdac(에이치닥)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Hdac은 현대페이와 더블체인, 한국디지털거래소 등 3사가 공동으로 개발한 가상통화로 2월이나 3월초 상장을 앞두고 있다. Hdac의 블록체인 기술 기반을 마련한 더블체인은 현재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Hdac 테크놀로지 AG(아게·스위스어로 회사라는 뜻)에 직원을 파견해 공동 운영 중에 있으며 향후 관련 기술을 전수하고 Hdac시스템을 이전할 예정이다.

▲ 전 대표는 IoT와 보안을 생각했을 때 답은 블록체인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4차 산업혁명의 초연결, 블록체인이 뒷받침하는 시대 올 것”

전 대표가 주목한 블록체인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는 블록체인의 높은 보안력이 4차 산업혁명에 맞아떨어지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4차 산업혁명이 모든 것이 초연결되는 사물인터넷 시대를 가져올 것임을 알게된 그는 기존의 중앙 서버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보안 체계는 해킹에 취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IoT와 보안을 생각했을 때 답은 블록체인에 있었다는 것이다. 

전 대표는 “글로벌 기업들에 따르면 2020년까지 500억개 이상의 물건들이 인터넷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사물인터넷은 모든 것이 다 연결되기 때문에 그 중에 하나만 뚫려도 모든 것이 다 뚫릴 수 있다”면서 “예컨대 자동차의 자율주행 시스템을 해킹해 원격 조종으로 사고를 내고 보험금을 타내는 등의 사고가 미래에는 비일비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블록체인은 개별 데이터를 조작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기존 보안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사물인터넷에 적합한 보안 체계”라고 설명했다.

▲ 더블체인의 IoT 블록체인 플랫폼 개념도. 개별 디바이스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모두 연결된 미래를 그렸다. 사진=더블체인 제공

그러나 블록체인도 무적의 기술은 아니다. 전 대표는 “블록체인 관련 보안 시스템의 최대 단점은 초기 노드(블록체인을 연결하고 사용하는 개별 개체)가 적다는 점”이라면서 “초기 노드가 적을 때는 단점이지만 사용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단점이 보완되는 형태”라고 말했다. 블록체인 기술이 도입되고 보편화되기까지 상당 시일이 걸릴 수 있는 만큼 초창기에는 높은 보안 능력을 갖추지 못할 수도 있는 셈이다.

전 대표는 현재 가상통화 지갑에 있는 프라이빗 키(Private Key)가 미래엔 개별 디바이스에 모두 장착될 거라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TV, 태블릿 등 스마트기기는 물론 가전제품과 자동차까지 모든 것에 프라이빗 키가 설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라이빗 키란 거래가능한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암호화된 가상의 열쇠다. 거래소 등에서 이용하는 가상통화 지갑은 개별 지갑마다 프라이빗 키가 설정돼있어 인증에 실패하면 거래를 이어갈 수 없게 돼있다.

이렇게 개별 기기에 심어진 프라이빗 키는 주인 맞춤형 데이터를 축적한다. 낮에는 안 쓰는 기기의 전원을 꺼놨다가 퇴근 후 작동하는 식으로 주인의 생활 패턴을 분석해 저장하는 식이다. 블록체인을 이용하면 기존의 계량기가 담당하던 에너지 사용량 측정은 물론 요금 결제까지도 간편하게 할 수 있다.

전 대표는 “이미 OS가 있는 스마트폰, PC 등은 키 값을 즉각 입력하고 계량기 등 키 값을 담기 어려운 것은 마이크로 PC와 칩을 통해 중간 게이트웨이를 거쳐 키 값을 넣게 만들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 전 대표는 2018년에는 블록체인 관련 스타트업을 키워 국내 블록체인 시장 자체를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블록체인 기술, 제도권 입성 위해 힘쓸 것”

더블체인에게 2018년은 가장 중요한 한 해로 기억될 예정이다. 지난해 전국을 강타한 가상통화 열풍을 타고 가상통화에 대한 각종 규제와 함께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 대표는 “지난해에는 Hdac 기술 개발에 집중했다면 올해는 IoT 블록체인의 완성을 이룰 것”이라고 설명했다. Hdac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료한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벤처나 스타트업을 발굴해 국내 블록체인 업계를 이끌고 확산해나갈 비전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해외 블록체인 컨퍼런스를 가도 비슷한 기술을 가진 업체들은 적이 아니다. 초기 시장에서는 시장 자체를 키워야 모두가 성장한다”면서 “블록체인 스타트업을 키워 글로벌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참여하도록 지원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강화되고 있는 가상통화 규제에 관해서 전 대표는 “안타깝다”고 답했다. 그는 “국내 가상통화 시장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분위기”라면서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부터 상용을 목표로 가칭 ‘제이코인을’ 내놓지 않았나. 비트코인 때문에 침체됐던 일본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과 함께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들은 가상통화를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까지 예전 단계에 멈춰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 대표는 “기존의 시스템으로는 앞으로 다가올 단계를 이뤄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만약 5년, 10년 뒤에 우리나라만 준비가 안 돼 있다면 국제 자유 무역 시대에 도태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상통화를 사다가 우리가 써야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