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사업실패로 빚을 정리하기 위해 3차례나 파산신청을 준비했으나 번번이 포기했는데 이분의 도움을 받고 빚을 정리하게 됐습니다.”

“중랑구에서 성북구로 전근을 갔지만, 그곳에서도 자기 일처럼 챙겨줘 빚에서 자유롭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와 중랑구 금융복지센터 홈페이지에 이런 글이 남아 있다. 채무를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이런 것을 도움 받아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는 후기다. 그들이 칭찬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어젯밤 무슨 생각을 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나요.”

기자가 “금융복지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김선형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상담관은 이렇게 반문했다. 그러면서 김 상담사는 “금융복지란 취약계층에게 ‘내가 내일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답했다.

‘내일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녀에겐 금융복지는 ‘미래 계획’인 것이다. 물론 채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회적 약자에게 하는 말이다.

 

사람의 자존감이 먼저다

사회복지사였던 그녀는 주변의 권고로 채무와 금융을 공부하면서 금융복지상담사가 됐다.

금융복지상담사의 자격을 취득하고 2013년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시범사업’에서 일하게 되면서 현재까지 금융복지상담센터의 상담관으로 일해오고 있다.

그녀는 누군가 생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살아가거나 절망에서 헤쳐 나올 수 있도록 돕는다. 금융자본주의 시대에서 빚으로 인한 절망은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삶을 앗아가기 일쑤기 때문에 그녀가 하는 일은 목숨을 구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그녀는 취약계층에게 복지서비스를 안내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채무조정의 방법을 안내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복지서비스가 실효를 거두는 데 필요한 선행 절차다.

김 상담관은 “빚 문제는 금융의 문제로만 접근하면 모럴 해저드로 공격받을 수 있지만 복지 차원으로 이해하면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해야 할 서비스”라는 신념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복지도 금융도 아니라, 사람의 자존감이에요. 돈이 없는 사람에게도 중요한 것은 사람으로서의 자존감입니다.”

상담을 받았던 취약계층 중에는 무작정 빚을 조정할 수 있게 돕겠다는 것을 꺼리는 사람도 종종 있다. 사정 되는 대로 조금이라도 갚고자 하는 사람에게 파산이나 회생을 권하면 그 사람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며 불쾌해 한다.

김 상담관은 “우리나라는 빚은 곧 ‘무능과 게으름’을 상징하는데, 사실 센터를 찾는 방문자들은 이런 인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어요”라며 “방문자는 ‘나는 이렇게 도움만 받아야 하는 거지 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자존감을 살려주는 게 중요합니다”고 말했다.

예컨대 실패한 사람이라도 과거에는 정상적으로 세금을 냈던 사람이었다는 사실도 일깨워주고, 때문에 채무든 재무든 취업이든 복지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격려해준다는 것.

 

힘든 건 사람이 아니라 ‘경직된 제도’

5년 가까이 금융복지상담을 한 경력의 소유자지만 그녀도 힘들 때, 얼굴을 붉힐 때가 있다. 경직된 제도에 막혀 복지상담이 효과를 보지 못할 때가 마음이 가장 쓰라린다.

한 번은 부모의 빚 보증을 선 미혼 여성을 상담한 적이 있다. 부모님은 딸의 명의를 빌려 사업을 했고 딸은 금융채무, 사채 등을 떠안게 됐다. 1년 동안 빚을 정리하고 직장에 들어갔지만 결국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할 수 없었다. 그녀 앞으로 넘겨진 세금은 파산절차를 밟아도 사라지지 않았다. 관할 세무서는 그녀가 취업하자마자 체납 세금에 대해 급여를 압류해갔다.

▲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세금은 면책이 되지 않는데, 특히 회수 절차가 취약계층의 개별적인 경제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법이 정한 회수 매뉴얼대로 합니다. 이런 제도적 제약 때문에 금융을 연계한 복지는 효과가 나지 않을 때가 있지요.”

김 상담관은 “이런 한계 때문에 좌절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일은 죽을 맛”이라며 “체납세금이라도 이들의 상황에서 조금씩 갚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해야 금융복지정책도 효과를 낼 수 있어요”라고 강조했다.

 

금융복지 상담, 질적 발전성장 이뤄야

중국에서 부모와 생활하다가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하고 어머니마저 중병에 걸려 어려움에 맞은 남매가 상담센터를 찾은 적이 있었다. 미성년자인 남매는 아버지의 채무를 모두 상속받았다. 기간 내에 상속을 포기하면 빚을 물려받지 않지만, 이때는 재산도 물려받을 수 없게 된다. 병든 어머니가 누워 있는 임대주택 보증금이 상속 포기로 채권자 손에 넘어가고 남매는 고아시설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김 상담관은 지역센터의 사례 관리자, 사회 복지사, 교육 복지사, 청소년 상담사, 남매의 학교 선생님, 변호사와 함께 모여 문제해결에 나섰다. 수차례 회의를 통해 남매의 상속 빚은 파산절차를 통해 탕감하기로 하고 청소년 상담사가 이들을 정서 상담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파산절차를 거치더라도 이들의 전세보증금은 면제재산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결론도 찾아냈다.

금융복지도 다른 복지서비스와 같이 입체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김 상담관은 금융복지가 외형적 실적에 의해 예산이 책정되고 시설 확충이 이뤄지는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결 건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해결했느냐를 같이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녀는 ‘내일이 있는 삶’을 강조했다.

“취약계층을 상담할 때, 이들이 내일 또다시 채무로 삶을 지속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말 필요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채무를 조정하는 것 외에 주거, 취업, 창업, 교육 차원이 복지가 따라가야 기초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내일을 고민하다가 극단에 몰려 어린 아이와 함께 자살을 생각하거나 범죄 유혹을 받는 것. 금융복지상담사는 이런 일들을 없애는 소방수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