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합공간 책책 내부. 출처= 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불과 5분만 발걸음을 옮기면 한적하고 조용한 주택가가 나온다. 주택과 주택 사이에서 튀지 않게 자리 잡고 있는 ‘책책’은 여러 가지 성격을 지닌 복합공간이다. 사람들은 이곳에 책을 사러 오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거나 공연을 보기 위해 오기도 한다. 다양한 목적으로 사람들이 방문하도록 책책을 설계했다는 선유정 대표(48)는 ‘행복한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실용·리빙서 속의 예쁜 콘텐츠를 책 밖으로 꺼내어 구현했다. 개성 강한 독립서점들이 증가하는 최근의 추세는, 자기만의 공간을 운영하고 싶은 사람들과 그런 문화를 환영하는 사람들 모두 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연말 분위기로 들뜬 어느 겨울날, 이화동 책책에서 선유정 대표를 만나 이곳만의 개성과 생존전략에 대해 물었다.

 

“책책은 나만의 파라다이스”

선유정 대표는 연예부 기자 생활을 하다가 출판계로 옮겨가 편집 기획자로 오랫동안 일했다. 그가 대표로 있었던 웅진리빙하우스와 스타일북스는 모두 실용·리빙 관련서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곳. 선 대표는 “처음부터 실용·리빙 관련서를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조금씩 분야를 옮겨 일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들을 찾아 갔고 결국 여기에 이르게 된 것”이라며 현재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에서 얻어지는 즐거움을 표현했다.

▲ 선유정 책책 대표. 출처= 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지금 하는 사업 역시도 치밀하고 거창한 계획과는 거리가 멀다. 15년 이상 책을 기획하고 출판하면서 막연하게 ‘이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구상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구체화해나갔고, 그 결실이 서점과 공연, 전시 공간이 결합한 ‘책책’이다.

책책의 지하 1층에는 책, 그중에서도 실용·리빙·여행서 등 그의 취향대로 책들을 골라 진열했고, 그 옆에는 각 책과 연관된 소품들을 알맞게 배치했다. 요리를 좋아하는 선 대표는 무려 200권 이상의 요리책을 만들었는데, 그렇게 쌓은 실력으로 부엌에서는 쿠킹 클래스도 진행한다. 그 옆에는 미술 작품을 전시·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뿐만 아니다. 차를 마시면서 음악을 듣고, 책도 읽을 수 있도록 배치한 테이블 옆에는 실제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를 비롯한 악기들도 두었다. 책부터 요리, 음악까지 모두 선 대표가 좋아하는 것, 즐겨 하는 것들이다.

이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로 둘러싸인 ‘자기만의 파라다이스’를 완성한 선 대표는 “오랫동안 꿈꿨던 것들을 이뤘다”고 말하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 꾸준히 정진해오다 드디어 목표 지점에 도달했다는 그에게서, 완주를 마친 달리기 선수 같은 성취감과 함께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려는 굳은 결의도 엿보였다.

 

이국의 낯선 공간, 서점과 카페·미술 전시까지 한곳에서

책책은 대학로의 조용한 주택가에 있다. 오래된 주택을 구입해 뼈대만 남기고 전부 새로 만들었는데, 하나하나가 선 대표의 취향이 깃든 결과물이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분명히 서울에 있는데도 서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다”며 이 공간에 떠도는 묘한 공기를 설명한다. 일반 가정집이면서도 서점이고, 카페이기도 하면서 쿠킹 스튜디오며 전시공간의 성격까지 지닌 이곳에서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 복합공간 책책 내부. 출처= 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선 대표는 책책을 “밀착형 실용서를 만들고, 판매하고 전시하는 복합 공간”으로 정의한다. 과거 명성을 날리던 출판사 대표였던 그는 책책이라는 새 이름으로 책들을 기획하고 만들고 있다. 당연히 사무실은 책책이다. 사람들과 미팅을 갖는 장소도, 그가 노트북을 올려두고 일하는 장소도 여기다.

다만 선 대표가 기획하는 영역이 종이책이라는 한계를 벗어난 것이 특징이다. 그가 기획한 서점은 실용·리빙·여행서 중 좋은 것들만 골라 나름의 기준으로 진열했고, 책과 연계된 물품들이 센스 있게 배치되었다. 뜨개질 관련서 옆에는 저자가 직접 뜨개질한 작품이 있고, 색칠하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책 일명 안티 스트레스 북 옆에는 색연필 등 필기구가 놓여 있는 식이다. 책과 소품들이 조화를 이루며 진열된 서점 공간은 매달 주제에 따라 다르게 꾸며진다.

일반 주택에서 거실이 있는 곳, 즉 책책의 1층 한가운데는 카페 겸 모임 공간이다. 평소에는 이곳에서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눌 수 있지만 강연이나 연주 등 모임이 있을 경우 이곳이 메인 스테이지가 된다. 짙은 초록색으로 칠해져 차분하고 편하게 연출된 카페와는 달리, 안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공간이 있다.

▲ 복합공간 책책 내부. 출처= 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미술관처럼 사방이 흰색으로 칠해진 안쪽 공간은 미술작품 전시를 위한 곳이다. 사방에 그림을 걸어 두고, 한쪽에 조형물을 두기도 한다. 책책의 전시 기획이 여기서 구현되는 셈이다.

전시 공간 옆은 쿠킹 클래스가 열리는 쿠킹 스튜디오다. 선 대표가 직접 주제를 정해 여기서 요리 방법을 강연하기도 하고, 매달 특정일에는 점심을 일정 분량 만들어 파는 ‘언니의 점심’ 같은 기획이 실행되기도 한다.

▲ 복합공간 책책 내부. 출처= 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선 대표는 “여기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자주 묻는다. 대체 카페인지, 책방인지 아니면 문화 공연을 하는 곳인지 헷갈린다고. 나는 그 모든 것이 합쳐진 곳이라고 답한다”면서 책책의 정체성을 정의했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선 대표 혼자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프로젝트 팀처럼 사람들이 프로젝트별로 모여서 함께 일한다. 수익 배분은 기여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하는 선 대표의 운영 방식은 과거 회사의 방식에서 한 걸음 나아간 것처럼 보인다.

 

“너무 재밌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올해 5월에 갓 오픈한 책책은 아직 조금씩 발걸음을 떼는 중이다. “이것저것 재미있는 것들을 시도해보고 싶다”는 선 대표는 운영 소감에 대해 “너무 재밌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라고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돈벌이가 걱정되지는 않을까? 현재는 수익을 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시행착오 기간이고, 따라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는 게 그 방법이다. 다만 눈높이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기준이 달라진다.

선 대표는 “현업에 있는 지인들이 자주 하는 말이 ‘요즘 사람들에게는 끈기나 헝그리정신이 없다’는 불평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자기 인생 즐기면서 사는 게 진정한 행복 아닌가. 큰 돈을 버는 것, 너무 높은 것에 목표를 두고 달리고 싶지 않다”면서 “이런 사람들이 독립서점을 꿈꾸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 선유정 책책 대표. 출처= 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서점 운영과 미술 전시, 공연 기획까지 갖가지 문화 영역을 넘나드는 선 대표에게 ‘과연 어떻게 일하는지’ 물었다. “예전에는 에너지의 100%를 책 만드는 데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현재는 공간 운영, 기획에도 각각 1/3씩 에너지를 나눴고 나머지 10%는 휴식하는 데 쓴다”는 대답 뒤에 따라온 부연설명이 듣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일 년 중 한 달은 여행하는 기간이다. 올해 8월에도 잠깐 문을 닫고 여행을 다녀왔다.”

오랫동안 꿈꾸던 파라다이스를 만들고 그 안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는 선 대표. 책책의 성공은 현실과 이상의 적절한 조합에 대해 고민하는 많은 이들에게 의미 있는 사례가 될 것이다. 이곳의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