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의견을 내고 서서히 의견의 합일을 이뤄가는 과정, 자연스럽게 서로의 생각을 체화하며 의미있는 결과물을 얻어가는 과정. 토론과 협의는 굳이 민주주의의 원칙을 말하지 않아도 매우 중요한 가치입니다. ICT 기술이 발전하며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콘텐츠의 이동도 가능해졌고, 우리는 이를 집단지성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토론과 협의의 전제가 잘못됐다면 어떻게 될까요? 시간도 부족하고 서로를 이해할 준비조차 되어있는 않는 상황. 이건 집단지성의 과정과 결론으로 볼 수 없어요. 우리나라 속담에 이런 말이 있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정부의 시각으로 보겠습니다. 첨예한 대립이 벌어지고 있는 이슈가 있어요. 정부가 원하는 것도 있고,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하는데 선뜻 나서기가 애매합니다. 후폭풍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2017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정부는 주로 '공론화'라는 매우 아름다운 카드를 꺼냅니다. 지난 10월 온 나라를 들썩이게 만든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가 대표입니다. 정부 권고안을 정하기에 앞서 471명의 시민 참여단은 총 네 번  설문조사에 참여했지요.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에 찬성해도, 반대해도 시민의 뜻이 결정됐으니 큰 잡음은 없었습니다.

ICT 업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조만간 단말기 완전 자급제에 관한 논의 결과를 발표할 가계통신비정책협의회가 대표입니다. 정부와 통신사,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가계통신비정책협의회는 지난 11월10일 첫 회의를 연 후 가계통신비 인하를 위해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문제는 가계통신비정책협의회를 두고 내외부에서 회의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는 것입니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가계통신비정책협의회는 지난 8일 3차 회의에서 실질 가계통신비 인하를 위해 다양한 논의를 거듭했으나 뚜렷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통신3사 온라인 직영몰에서 스마트폰을 구매할 때 통신비 할인을 지원하는 정책 등이 구체화되고 있으나 이 마저도 강제성이 없는 '권고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끝장토론으로 의미있는 결론을 내야하는데,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무작정 자리에 앉아있으니 강대강 대치만 이어진다는 지적입니다. 일각에서는 통신사의 뜻대로 가계통신비정책협의회가 움직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아직 발족하지 않았으나 이르면 올해 말, 늦으면 내년 초 등장한다는 인터넷 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한 상생발전협의회도 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를 비롯해 시민단체, 네이버와 카카오, 구글, 스타트업 등 다양한 인터넷 기업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역차별과 규제 이슈를 풀어간다는 계획입니다.

▲ 인터넷 사업자 대표 간담회. 출처=방송통신위원회

문제는 덜컥 공론의 장만 마련하고 협의회가 공전만 거듭하다가 의미없는 결론만 낼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역차별 문제만 봐도 글로벌 기업, 국내 ICT 기업, 스타트업의 생각이  모두 다릅니다. '외국기업의 규제를 강화하는 게  아니라 모든 플레이어의 규제를 완화해달라'와 '국내 플랫폼 기업의 갑질을 막아달라'는 의견들이 일관된 방향성도 없이 충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네이버는 누군가에게 갑일 수 있으나 또 다른 누군가의 을일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교통정리가 필요합니다. 성급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물론 사회의 합의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요한 가치입니다. 좋은 방법입니다. 문제는 '토론과 협의를 위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을 짜 논의를 하는가'입니다. 모두가 행복하게 '하하하' 웃을 수 있다면 애초에 싸우지도 않았을 겁니다.

등장하고 있는 협의회들이 진짜 기능을 하기 위해서 치밀하고 냉정한 판을 짜기를 바랍니다.

[IT여담은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소소한 현실, 그리고 생각을 모으고 정리하는 자유로운 코너입니다. 기사로 쓰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 번은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를 편안하게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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