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29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시중은행 금융지주회장의 셀프연임 발언 이후 각 언론에서 금융지주의 지배구조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동안 금융지주 지배구조에 대해 수없이 문제 제기를 해도 꿈쩍도 하지 않다가 금융위원장의 한마디에 언론이 관심을 갖는 것을 보고 필자는 금융위원장의 위세를 실감한 것이 아니고 역으로 그동안 언론과 정부를 침묵케 한 금융지주들의 언론과 정부에 대한 로비력을 실감하는 계기가 됐다.

금융위원장이 지적한 금융지주회장의 문제점은 의도된 후계자양성 배제를 통한 경쟁자 제거, 그에 따른 셀프연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실제는 그것은 빙산의 일각이고 지주회장의 선임과정, 경영방식, 인사방식, 내부 경영감시시스템의 무력화, 감독당국과의 유착 등 이루 다 나열하기가 힘들 정도이고, 그 실상을 알고 나면 21세기에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며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가 막힌다.

금융지주회장제도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주인 없는 기업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대리인문제(Proxy Problem)의 모든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표본이다. 국책은행은 그나마 정부의 감독 및 간섭으로 이 정도까지는 아닌데 시중은행 금융지주는 무늬만 민영화인 민영화를 핑계로 정부간섭도 배제하고, 그렇다고 대주주 및 소액주주의 간섭도 안 받는 그야말로 무주공산화 되어 “회장 것인듯, 회장 것아닌, 회장 것”같은 금융지주가 된 지 오래됐다.

새로이 금융지주 회장이 되고 다시 재선임 되는 과정을 통해 어떤 적폐들이 벌어지는지 보자. 신임 금융지주회장이 되기 위해서는 각종 인맥을 동원하고 이해관계자 집단과의 사전 약속과 협조를 통해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회장추천위원회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이해관계자 집단에는 노조, 기존 경영진, 감독당국 및 언론까지 포함된다.

행정부에 대한 그립(Grip)이 약하거나 민주정권을 자처하는 정권일수록 민간은행이라는 논리에 묶여 관여하기를 꺼려한다. 정부나 정권이 개입하려는 조짐이 보이면 관치 낙하산으로 여론전을 펼치면 된다.

이런 난관을 뚫고 금융지주회장으로 선임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사외이사진을 자기사람으로 교체하는 일이다. 회장이 모든 인사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은행장 및 지주 임원진 그리고 모든 자회사 CEO 및 임원진에 대한 인사를 단행하면서 이해관계자 집단들과의 사전 협조와 약속에 따른 인사가 이루어지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주 사외이사, 은행 사외이사, 은행장, 자회사 CEO, 지주 및 자회사 임원들의 자기사람 심기다. 여기서 장기집권, 사유화, 황제경영의 기틀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기준은 능력이 아니고 회장에 대한 충성도와 순응도다. 회장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이나 정의감이 있으면 제거 1순위다. 임기만료 된 사외이사의 후임 사외이사는 기존 사외이사들이 추천하고 선발하는 말도 안 되는 제도 덕분에 초기 구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 금융산업의 선진화 및 발전이라는 순수한 목표는 취임사에서나 한번 써먹으면 된다. 실제는 재선임을 위해 필요한 각종 조건들을 충족시키기 위한 작업을 수행한다. 실적이 연임에 필요하니 M&A나 사업다각화의 명목으로 투자사업를 통해 몸집을 불리고, 이익은 조직을 다그치고 가능한 모든 회계규정을 동원해 불법이 아닌 편법으로라도 이익을 늘리면 된다.

M&A, 투자, 노후화 새출발 명분으로 각종 보수·교체사업을 통해 사적이익도 챙길 수 있다. 수익구조 개선과 금융의 선진화를 위한 소프트웨어적 개선은 말로만 하면 되고 적당한 시점에 명퇴나 강제퇴직제도로 인력감축이나 지점축소작업으로 비용절감하면 수익성은 개선된다.

내부감시시스템인 준법감시인제도나 감사제도는 무늬만 만들어 놓든지 아예 자리를 없애든지 무력화시켜 버려야 한다. 혹시 정의로운 사람이 감사가 되어 잘못된 걸 문제화시키면 골치만 아파지니까.

혹시 국회 국정감사에서 꼬투리 잡힐 수 있는 일은 사전에 철저히 대비하고 내부통제를 통해 잘 넘기면 된다. 임기만료 시점이 정권의 말기나 차기정권의 초기에 이뤄지면 금상첨화다. 정권말기에는 정부나 정권에서 관심도 없고, 다음 정권 초기에는 정신이 없을 때이니 이때를 틈타 전광석화처럼 내편인 사외이사진들과 짜고 재선임 받으면 그만이다.

불특정 다수의 국민들로부터 수신 받은 수백조의 부채를 근거로 만들어진 자산을 마치 순자산인양 코스프레하고 돈놀이나 하는 무늬만 민간은행 지주가 이렇게 적폐의 온상 속에 비리집단화 되어도 되는가에 대해 정말 말문이 막힌다.

주인 있는 사기업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공기업 및 국영기업에 이런 곳이 있나? 이상한 민영화 논리로 대리인이 사기업의 주인처럼 행세하고, 책임이나 의무에서는 그 누구로부터도 감시나 견제를 안 받으니 이게 바로 봉이 김선달이지 누가 봉이 김선달인가.

이렇듯 문제가 많은 금융지주 지배구조와 회장선임제도에 대해 정부도 정권도 아는지 모르는지 뒷짐만 지고 있다. 다행히 금융혁신위에서 20일께 금융지주관련 권고안을 발표한다고 한다.

그 안에 들어갈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동안의 전례처럼 마지못해 넘기면서 면죄부나 주는 혁신안으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의 금융회사 지배구조법도 필요하면 고쳐야 하고, 병행하여 법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정부와 정권의 개입을 통해서라도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곧 선임해야 하는 금융지주회장 뿐 아니라 이미 정권교체기를 틈타 재임된 금융지주도 소급해서 바로 잡아야 한다.

그 추운 겨울에 촛불을 들고 뛰쳐나온 선량하고 양심적인 국민들이 청산해달라고 요구한 것이 바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적폐이지 않은가. 꼭 국민청원을 하는 적폐만이 적폐인가. 국민이 모르는 숨어있는 적폐가 진짜 적폐이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