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미즈호금융그룹

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이후 미국의 일본 점령정책 기본 목표는 일본의 정치와 경제 체제를 민주화하는 데 있었다. 미국은 이를 실현하는 방안으로 재벌 해체와 거대기업의 분할을 포함한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는 일련의 조치를 취했고, 이때 제정된 독점금지법에 따라 일본의 금융지주회사의 설립도 금지됐다.

일본은 1960년대 이후 고도성장기가 끝나면서 기업의 자금수요가 급속히 줄어들게 된다. 성숙기에 들어선 기업들은 설비투자를 필요로 하는 경우에도 감각상각 충당금, 이익잉여금 등을 내부자금으로 충당하거나 증권발행을 받는 경우가 많아졌다.

우량 대출처를 잃게 된 은행들은 부동산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1980년대 플라자 합의로 엔화강세가 이어지자 일본 정부는 저금리 정책을 펴고 은행들의 부동산 대출은 더욱 급증하게 된다. 1990년대 초반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대량의 불량 채권이 발생하고 일본은행들도 국제경쟁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이른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시작 시점이다.

위기에 직면한 일본 은행들은 기존 은행 업무 외에도 증권·보험 등의 업무를 취급하기 시작했다. 일본 금융당국 역시 은행을 지원하기 위해 1993년 은행들에게 자회사 방식에 의한 겸업을 허용한다.

이후 1997년에 일본 정부는 경제단체연합회(경단연) 등의 건의를 받아들여 ‘금융 빅뱅’이라는 금융대개혁의 구상을 구체화한다. 금융 빅뱅의 원칙은 ▲Free(금융시장에 대한 진입·퇴출의 자유화, 금융서비스 가격의 시장 결정) ▲Fair(철저한 정보 공개 등을 통해 모든 시장참가자가 게임의 룰과 정보를 공유) ▲Global(법률, 회계, 세제 등의 국제화와 표준화)이다.

구체적으로는 일본은행법을 개정해 ▲중앙은행의 정부 종속을 폐지하고 그 중앙은행의 책무를 물가안정으로 바꾸는 것 ▲외환법 개정으로 외국자본 유입의 자유화를 추진하고 금융업에 경쟁원리를 도입하는 것 ▲증권시장을 자유화하는 것 ▲금융지주회사의 설립을 자유화하는 것 ▲은행을 은행·증권·보험 업무 등을 아우르는 복합 금융그룹으로 키운다는 것이다.

결과론이지만 한국과 일본 모두 금융지주회사의 등장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금융산업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금융지주사는 전 세계에서 현재 한국과 미국·일본만이 법으로 정해놓고 있다. 금융지주사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을 제외하면 경제 위기 상황에서 금융지주사를 설립한 한국과 일본의 경우 토착화에 성공했다고 평가하긴 이르다.

일본의 금융빅뱅은 미국식 금융제도를 도입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금융지주회사 도입도 그것이 이른바 신자유주의 금융 구조개혁 패키지의 하나로서 제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998년에는 금융기관의 파산이 이어지면서 일본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함과 더불어 자본집중을 강력하게 추진해 단기간에 금융지주회사 위주의 금융재편성을 완료하게 된다.

2000년 일본 최초의 금융지주회사인 미즈호금융그룹이 출범했으며 2001년에는 미츠비시도쿄금융그룹(MUFG), 2002년에는 미츠이스미토모FG(SMBC)가 설립된다. 일본의 금융지주회사들은 자회사를 활용해 투자신탁 판매, 증권 중개, 부외거래, 파생상품 거래 등으로 업무를 확대했지만, 여전히 은행 중심성을 온존(溫存)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대형화·겸업화의 궁극 목표는 글로벌한 경쟁력을 갖추는 것에 있다. 또 그러한 경쟁력은 추가 수익 기반을 확보하거나 원가 우위를 확보하는 데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 금융지주회사의 경우 그룹화가 성장성에 크게 기여한 바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총자산 대비 경비율(비용발생률)이 2002년 이후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는 것을 볼 때, 그룹화에 따른 비용절감 효과는 있는 것으로 평가받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