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유전자변형작물(GMO) 시장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GMO 농업 규제를 해야 할 중국이 지난해부터 종자기지 건설·대형 인수 합병에 열을 올리며 GMO 산업에 뛰어든 것이다. 중국 국영 화학공업회사 켐차이나가 스위스 종자회사 신젠타를 인수하면서 GMO 업계는 서구 농업 기업의 전유물이란 등식을 깨 시장 참여자들과 소비자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세계적인 농업 기업들은 2012년 이후 매출 감소에다 친환경·유기농의 압력과 디지털 파밍에 다른 청정 농업의 대두 등 급변하는 여건을 돌파하기 위해 인수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에 주력했는데 중국이란 새로운 플레이어가 등장한 것이다. 중국 농업 기업의 글로벌 GMO 생태계 참여가 GMO 시장에 대규모 지각변동을 일으킬지, 일시 현상에 그칠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중국 정부가 열심히 외치고 있는 ‘첨단농업굴기’의 핵심 포트폴리오에 GMO가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도 GMO업계에서 얼마든지 중국발 인수합병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 최근 글로벌 GMO 기업 합병 규모(정리=천영준 기자)

GMO 업계 지각변동 일으킨 다섯 건의 인수합병

지난해 2월, 중국 국영 켐차이나가 스위스 농화학기업 신젠타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몬산토가 인수합병을 하기 위해 계속해서 공들인 신젠타를 중국이 대번에 낚아챈 것이다. 조건도 매우 파격적이었다. 전체 인수 규모 430억달러(한화 44조원)에 전액 현금 지급 조건이었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 관계자는 “그 돈이 전부 어디서 났느냐고 의구심을 갖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파격적 조건”이라고 전했다.

켐차이나는 430억달러 이외에 각종 수수료를 더해 504억달러를 썼는데, 250억달러는 자기자본으로, 254억달러는 부채금융으로 조달했다. 254억달러 중 일부는 중신그룹(CITIC)과 HSBC가 발행한 신디케이트론(최소 2개 이상 은행이 차관단을 구성해 기업이나 국가에 융자하는 것), 인수 대상인 신젠타의 채무조정지원을 명목으로 빌린 대출금이었다.

미국 농무부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시원하게 켐차이나에 대출해준 것”이라고 평했다.

이 ‘사건’이 터지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원래 신젠타와 함께 하려 한 몬산토는 새롭게 주인을 찾아야만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결국 지난해 9월, 몬산토는 독일 화학업체 바이엘에 회사를 팔기로 하고 560억달러의 매각계획을 발표했다.

몬산토는 글로벌 인수합병 시장에서 계속 표류했다. 신젠타에 인수합병을 제의했으나 네 번 거절당했고, 아르헨티나와 인도에서도 인수 후보 기업과 종자 사용료를 놓고 싸워야 했다. 몬산토의 주가는 지난해 동안 31%나 하락했다. 2013년에는 일부 미디어로부터 ‘세계에서 제일 사악한 기업’이라는 욕을 먹기도 했다. 몬산토의 이름값으로 도저히 글로벌 금융 시장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었다. 그래서 몬산토는 바이엘의 품에 안기기로 했다. 이 과정에 중국 기업 켐차이나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만으로도 큰 충격이었다.

미국의 화학업체 다우케미컬과 듀폰도 합병을 서둘렀다. 두 기업은 올해 9월 완전히 인수합병 절차를 끝내고 비료·농약·디지털파밍·종자 분야에 걸친 1300억달러 규모의 거대 결합을 선언했다. 다우케미컬과 듀폰은 다시 회사를 농업분야, 소재 분야, 기타 화학 분야 등으로 쪼개서 거의 독립된 그룹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잔잔한 파도는 계속 이어졌다. 지난 9월엔 캐나다 비료회사 포타쉬가 같은 국적의 다른 비료업체 아그리움을 300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했고, 바이엘은 독일 화학회사인 바스프에 곡물 계열사인 ‘크롭사이언스’(Crop Science)를 59억달러에 매각하기로 했다.

▲ 지난해 2월 합병에 합의하는 런젠신 켐차이나 회장과 미셸 드마레 신젠타 회장(출처=켐차이나 홈페이지)

중국을 만만하게 보다간 큰 코 다친다

세계 굴지의 농화학기업들이 중국과 중국 기업을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양환 계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GMO 작물을 과감하게 밀어주는 중국 정부의 태도가 다른 국가와 확연히 차별화되는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GMO는 중국에서는 기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7%밖에 되지 않는 경작지 규모의 한계를 극복할 만한 혁신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도 이전에는 GMO를 꺼리는 수세적 태도를 취했다. 중국은 2014년 4월 미국에서 수입된 옥수수 54만t의 통관 불허 조치를 내렸다. 병충해에 강한 유전자 변형 요소가 포함된 작물이라는 게 이유였다. 이미 중국 국민들이 소비하고 있는 수입산 옥수수 중 93%가 유전자 변형 작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조치였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2015년 태도를 바꿨다. ‘GMO 대거 수용’을 공식 입장으로 걸었다. 식량 자급률을 높이겠다는 게 주된 명분이었다. 중국 정부는 깐수(甘潚)성과 허난성 일대에 GMO 벼와 감자 등을 재배하는 종자과학기술기지를 짓는다고 발표하고 4억위안(총 660억원)을 배정했다. 상장기업들도 증가해 종자 산업의 시가 총액도 2006년 500억위안에서 1170억위안까지 급증했다. 중국의 ‘GMO 굴기’는 무시하지 못할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 GMO 쌀이 대거 재배되고 있는 중국 하남성 일대의 농장(출처=하남성 원황미업 공사)

중국 학계 인사들도 중국 사회의 GMO 수용 분위기에 힘을 싣고 있다. 2015년 10월에는 중국과학원의 원사(연구원) 61명이 함께 서명한 ‘유전자 변형 벼의 산업화를 촉구하는 서한’을 정부 측에 발송했다. 장치파 화중농업대학교 생명과학대학장은 “중국 정부의 GMO 산업화에 대한 의지에 학계 측도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계의 주장은 곧 중국 정부의 뜻이라는 이야기였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중국 국유기업인 켐차이나는 앞으로 여러 국가의 GMO 기업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켐차이나는 이미 지난 2011년 이스라엘의 농화학·GMO 회사인 막테심 아간 그룹 지분 60%를 24억달러(2조4000억원)에 인수하는 등 성장 잠재력이 큰 글로벌 기업 사냥에 시동을 걸었다. 중국 정부의 정책지원, 막대한 자금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농업기업은 글로벌 시장을 초토화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 지난해 9월 미국 상원 법사위가 개최한 GMO 기업 인수합병 청문회(출처=미국 상원 홈페이지)

중국 농업굴기 막을 진입장벽 없어

그렇기에 중국발 GMO 기업의 합종연횡은 다수 국가에서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농업대국 미국이 걱정을 가장 많이 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미국 상원 법사위는 지난해 9월 청문회를 열고 몬산토, 바이엘, 다우, 듀퐁, 신젠타 등 5개 기업 최고경영자들을 불러 강도 높은 질의를 했다. 이 자리에는 미국 농민 연맹 관계자들도 참고인으로 참석해 중국발(發) 인수합병의 서막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미국 농업계 관계자는 이 청문회에 대해 “중국 기업에 대한 강한 견제 심리가 작동한 것 아니겠냐”면서 “신젠타 최고경영자 미셸 드마레는 ‘장기적 재무 투자에 불과하다’고 열심히 강변했다”고 전했다.

EU 국가들은 걱정은 하면서도 중국 GMO 기업의 인수를 막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EU 집행위원회의 반독점위원장인 마르그리트 베스타게르 위원장은 “켐차이나가 아다마스라는 농약 계열사 지분을 일부 매각하는 조건으로 지난 4월 신젠타 인수를 승인받았다”고 밝혔다. 아다마스는 미국계 살충제 회사다.

EU 내부 사정에 정통한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중국 기업의 인수합병을 막을 명분이 없다는 게 EU 반독점당국 분위기”라면서 “한국 기업들도 중국 기업의 인수합병 광폭 행보를 그냥 지켜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한국 기업들은 ‘중국발 농업굴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한농연 관계자는 “켐차이나의 인수합병으로 글로벌 농업계 구조조정 바람이 거세지만, 한국 기업이 대응할 방법은 많지 않다”고 털어 놨다. 국내 종자기업들은 지난 20년 동안 인수합병 시장에서 이리저리 떠다녔다.

농화학 시장의 강자였던 흥농종묘와 중앙종묘가 1998년 멕시코 기업 세미니스에 인수됐다. 무 ·배추·토마토·상추 등의 종자 주권이 해외로 넘어가는 계기였다. 이후 서울종묘는 노바티스에, 청원종묘는 일본 농화학 기업 사카타의 품에 안겼다. 몬산토 코리아가 2005년에 세미니스를 인수하며 흥농종묘와 중앙종묘가 점유하던 시장을 가져가자 국내 농업계는 한 차례 더 놀랐다. 이후 팜한농이 2012년에 몬산토 코리아로부터 채소 종자사업권 일부를 인수하면서 “종자주권을 되찾아 왔다”고 발표했지만 여기에 공감하는 농업계 종사자는 많지 않았다.

셀트리온의 러시아 농장장을 지낸 이인규 NIR랩 대표는 “켐차이나 같은 거대 자본의 국내 시장 진입에 대응하려면 한국 종자 기업에 대한 대규모 금융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사모펀드나 증권사들이 매력적으로 느낄 만한 투자 대상이 되어야 국내 종자 기업이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농업 진입에 저항적인 국내 농민들의 정서도 개선되어야 하고, 국내 종자기업들끼리도 서로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불려 나가야 한다. 강명재 한국외대 경영학부 겸임교수는 “미국 나스닥에 상장되는 기업들은 평균 13~15번 이상 주인이 바뀐 회사들”이라며 “외부 투자를 꺼리는 국내 농업계의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 권역별 화학(농화학, 종자 포함) 산업 M&A 추세(출처=삼정 KPMG)

‘중국 위기설’만이 유일한 진입장벽

중국의 ‘GMO’ 굴기는 중국과 유럽 간 육상 물류 연결을 뜻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비전으로 탄력을 받고 있다. 일대일로에는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농업협력 정책도 담겨 있다. 중국 농업계 관계자들은 GMO 벼나 감자, 원예 작물 등의 종자가 이 지역으로 대량으로 수출되거나 중국이 구입한 현지 농장에서 재배돼 새로운 식량 전초기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한나 중국 칭화대 교육학과 연구교수는 “일대일로는 중국의 국제정치학적 비전일 뿐만 아니라 내수 경제를 재편하기 위한 비전이기도 하다”고 평했다.

일대일로 정책에는 엄청난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켐차이나 등 국영 기업들의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만 일대일로 사업은 중국 경제가 위축되면 제일 먼저 타격을 받을 대상이기도 하다. 중국 위안화 절하와 외환보유고 감소, 미국 국채 가치하락 등이 낳을 ‘중국 위기’설이 현실화한다면 일대일로 사업과 함께 중국 GMO 굴기가 진격을 중단할 수는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한국과 미국, 유럽연합과 농업기업들이 당면한 사실이다. 김윤형 한국외대 상경대학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지금으로서는 중국 GMO 굴기의 가장 큰 장벽이 ‘위기설’이라고 할 정도로 외생 요인이 많지 않다”면서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