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작 대표.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최근 신약개발 사례가 자주 보도되면서 신약개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임상시험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높아졌다. 임상시험은 신약 후보 물질을 사람의 몸에 투여했을 때 안전하고 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으로 개발 과정 중 가장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든다.

임상시험엔 다양한 관계자가 참여한다. 병원(의사, 간호사 등)과 제약사, 환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임상시험수탁기관(CRO)이다. 대중들에겐 다소 생소한 CRO는 임상시험 전반에서 제약사가 해야 할 일들을 대신 해주는 기업이다. 작게는 임상승인허가 신청, 약물감시부터 크게는 제약사가 전 세계 임상을 할 때 필요한 제반사항까지 모두 관리해주니 제약사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신약 개발이 활기를 띠면서 CRO 산업도 성장하고 있다. 미국의 글로벌 컨설팅 업체 프로스트앤설리번(Frost & Sullivan)에 따르면, 임상시험수탁산업은 전 세계에서 연평균 10% 이상 성장하고 있으며 오는 2019년에는 전체 시장 규모가 504억달러(약 58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시장이 이처럼 커지지만 국내 CRO 업계는 퀸타일즈트랜스내셔널코리아 등 외국계 회사가 장악하고 있다. 10여곳 남짓한 토종 CRO 중 눈에 띄는 활동을 벌이는 기업은 거의 없다. 국내 CRO가 해외 CRO보다 수행 능력이 좋지 않기 때문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한국 CRO의 수행 능력이 해외사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 이영작 대표.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국내사 중 눈에 띄는 활동을 벌이는 기업이 LSK글로벌파마서비스다. 국내 CRO들의 모임인 사단법인 한국임상CRO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영작 대표가 지난 2000년 설립한 기업이다. 이 대표는 미국의 보건을 담당하는 정부기관에서 연구자로 일하고 한미약품과 동아제약 등 유수 국내제약사의 고문을 역임하는 등 임상시험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다.

임상시험 전문가로서 그는 국내 상위 제약사들이 조언을 구할 정도로 인정받고 있지만, 국내 CRO가 마주하는 현실은 절대 녹록하지 않다고 토로한다.

<이코노믹리뷰>는 지난 5일 이 대표를 만나 그가 미국국립보건원(NIH)에서 임상시험 업무를 한 공무원인 그가 회사 경영자가 된 계기와 국내 CRO업계의 현실에 대해 들어봤다.

美국립보건원 출신 임상시험연구자, 경영자 되다

임사시험수탁산업은 여전히 일반인에게 생소한 분야다. 이 산업의 개념이 국내에 제대로 도입되기 몇십 년 전 이 대표가 임상시험업계에 몸 담은 이유가 궁금했다. 이 대표는 “CRO를 시작한 특별한 계기는 없고 모든 과정이 아주 자연스러웠다”고 회고했다.

이 대표는 순수 국내파는 아니다. 그는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 공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통계학 석사와 박사를 땄다. 이후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수학과 통계학 조교수로 재직했다. 통계학을 연구하다가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지난 1977년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암연구소(NCI)에서 다국적 임상시험을 계획하고 설계하고 검토하는 등 임상시험과 관련한 연구를 시작했는데 당시 이것이 CRO의 업무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그는 “사실 정부기관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연구할 때는 그 모든 게 CRO의 업무라는 것을 모르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CRO가 하는 업무였다”면서 “1999년에 귀국하면서 내가 통계학자로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미국의 한 컨설팅 회사의 도움을 받아 CRO를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임상시험산업이 발전한 미국에서 임상시험 과정의 전반을 연구한 그였지만 그 전까지 회사 경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 이 대표에겐 회사 직원들을 관리하는 것도 큰 일이었지만 그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국내 CRO들이 처해 있는 냉엄한 현실이었다.

이 대표는 “국내 CRO를 국내 제약업계가 어떻게 보는지 확신할 순 없지만 수주 건수나 금액을 보면 대략 어떤지 알 수 있다”면서 “해외 CRO들이 수주하는 건수가 국내사를 월등히 앞서고 매출액 면에서도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 이영작 대표.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국내제약사조차 해외CRO 선택하는 현실

국내에 진출한 외국 제약회사는 통상 본사가 해외 CRO를 협력업체로 선정하기 때문에 한국 CRO와 함께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문제는 국내 제약사들이 국내 CRO가 아닌 외국 CRO를 자주 선택한다는 점이다. 외국 CRO가 해외 진출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전제돼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임상시험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외국 CRO가 더 많이 갖추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이 대표는 이게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예를 들어 국내에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이 있으면 한국에 여러 협력업체들이 하나의 기업군이 돼 동반성장한다”면서 “그런데 셀트리온이나 삼성바이오에피스처럼 최근 바이오시밀러 붐을 타고 국내에서 이름이 많이 알려진 바이오기업은 국내 CRO를 전혀 쓰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는 “바이오시밀러가 뜬다지만 바이오시밀러 개발에는 노하우가 있어도 국내 CRO가 임상시험에 참여할 기회가 없으니 이 같은 노하우가 전부 외국 CRO가 있는 외국으로 가버리고 있다.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CRO가 임상시험과 관련한 모든 자료를 확보한 후 제약사에게 주지만 제약사가 받는 것은 어디까지나 가공한 자료일 뿐, 진짜 알짜배기는 해외 CRO의 본사로 간다는 설명이다.

“국내 CRO에 정부 사업 참여 기회 줘야”

물론 국내 CRO가 수주한 건수는 여전히 국내 제약사가 약 65% 이상으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 제약사와 국내 제약사에서 수주할 때 이익에는 큰 차이가 난다. 외국 제약사의 업무를 대행했을 때의 이익이 국내 제약사의 경우보다 약 3~4배 높다고 한다. 국내 제약사에서 수주를 많이 해도 이익이 남지 않으니 국내 CRO는 어려울 때가 많다고 한다. 이 대표는 “수주를 하는 것보다 ‘이익이 남는’ 수주를 하는 게 훨씬 더 힘들다”고 털어놨다.

국가에서 하는 임상시험에서도 국내 CRO는 대접받지 못한다. 이 대표는 “국가가 하는 신약개발사업에서도 국내 CRO에 일을 맡기지 않는다”면서 “국내 CRO에게도 기회를 줘서 임상 자료를 축적하고 노하우를 키울 수 있도록 우선권을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일본은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지만 제약분야에서는 맥을 못 추는데, 그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게 일본 CRO산업이 잘 발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라면서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이 발전하려면 국내 CRO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영작 대표.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임상시험 자료 관리 ‘자신감’, 타사와의 차별점

LSK가 자신 있는 분야는 단연 임상시험 자료 관리(Data Manegement). 임상시험으로 얻은 데이터를 관리하는 업무로 시험 결과의 신뢰도와 질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지만 쉽지 않은 분야다. 이 대표는 “데이터 관리는 글로벌 수준으로 한다고 자신할 수 있다”면서 “현재 12개국 95개 병원에서 항암제 임상시험을 하는데 모두 미국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의 허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우리는 필요한 기반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데이터 관리는 그의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대표의 경영철학은 ‘정직함’으로 그 개인의 철학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수치화한 데이터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이 대표는 “임상시험은 모든 과정이 완전하게 무결(無缺)해야 한다”면서 “과정의 모든 요소가 돈인 임상시험에서는 데이터의 조작과 같은 유혹이 늘 있지만 정직하고 질이 높은 자료를 위해 손해까지 감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지사’ 설립으로 전 세계 임상자료 확보

이 대표는 미국 지사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아직까지 국내에선 어느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이다. 그만큼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이를 통해 국내 CRO산업과 제약산업의 동반 성장을 꾀할 수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이 대표는 “임상시험 방법은 국내에 가만히 있어서는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전 세계에서 굉장히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면서 “미국은 자국 CRO 덕에 전 세계 임상자료를 갖고 있지만 우리는 국내 자료뿐이다. 국내제약사들이 해외에서 임상할 때 우리가 설립한 해외 지사를 통해 한다면 ‘보물’ 같은 외국의 임상자료가 전부 국내로 들어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이영작 대표.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임상시험 과정은 ‘철학’… 일할 때가 쉬는 것 같다”

연구자로 시작한 것까지 합치면 이 대표의 임상시험 경력은 약 40년이다. 긴 세월을 보낸 그이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온통 임상시험뿐이다.

‘쉴 땐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에 이 대표는 “일할 때가 제일 쉬는 것 같다”는 비범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정말로 일하는 과정이 즐거워서 일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임상시험을 단순히 문자 그대로 이해하면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의 철학이라고 생각하면 재밌다”면서 “자동차를 만드는 공정처럼 임상시험 결과가 나오는 과정이 보인다. 사람들이 정직하지 않으니 데이터에 거짓을 심어놓지만 사실 데이터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터뷰에서도 그는 손수 준비한 임상시험 관련 통계 자료를 보며 수치와 사실에 근거해 이야기를 풀어갔다. 그는 까다롭고 복잡한 임상시험을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글로 풀어쓸 때를 좋아해 후에 칼럼 기고자의 꿈도 갖고 있다고 한다. 임상시험에서 철학을 발견한 통계학자, 자기 분야에 몰입하는 즐거움을 아는 이 대표가 세계 임상시험계에서 파란을 일으킬 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