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운 실리콘투/스타일코리안 대표.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K뷰티의 미래는 화장품이 아니다?” 뷰티산업의 미래가 뷰티제품이 아니라니. 붕어빵에 붕어가 없다는 말보다 더 황당하게 들릴 법하다. 그러나 K뷰티의 미래, K뷰티 2.0의 시대에선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제 화장품은 단순히 제조, 판매되는 단계를 벗어났다. 뷰티 크리에이터를 비롯한 비디오 콘텐츠, 제품 리뷰, 스킨케어 노하우까지 화장품에서 파생되는 2차 생산물은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K뷰티의 미래, ‘K뷰티 2.0’이라고 명명한 회사가 있다. 2002년 반도체 회사로 출발해 이제는 K뷰티 플랫폼으로 180도 변한 실리콘투가 그 주인공이다. 11월 21일 판교에 위치한 실리콘투 본사에서 김성운(45) 실리콘투 대표를 만났다.

스타일코리안, K뷰티 스타트업의 역직구를 돕다

해외에서 국내 화장품을 구입하는 ‘역직구’족에겐 실리콘투라는 회사명보다 스타일코리안(Style Korean)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할 것이다. 스타일코리안은 실리콘투가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말레이시아 등 전 세계 80개국에서 운영 중인 온라인 쇼핑몰이다. 국내 120여개 뷰티브랜드가 입점해 1만여개 제품이 판매되고 있으며 하루 접속자만 전 세계 10만여명에 달한다.

▲ 스타일코리안 메인 페이지. 출처=스타일코리안

입점 브랜드로는 대기업 브랜드보다는 중소·신생기업 제품이 주를 이룬다. 회사 규모는 작지만 제품력은 탄탄한 이른바 ‘다윗형’ 뷰티 브랜드들이다. 코스알엑스, 헤이미쉬, 헉슬리, 벤튼, 편강율, 쓰리컨셉아이즈 등이 그 주인공이다. 김 대표는 “국내 기업의 기술력은 전 세계 어느 브랜드에도 뒤지지 않는다”면서 “이들의 해외시장 활로를 열어주고 육성하는 것이 스타일코리안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내년부터는 K뷰티 제품 샘플을 담은 서브스크립션(Subscription, 구독) 박스도 도입할 계획이다. 서브스크립션 박스는 매달 일정 제품을 박스에 담아 고객에게 직접 배송해주는 시스템이다. 고객은 일정 기간 구독료를 내고 화장품을 받아볼 수 있다. 미국의 입시박스(Ipsy Box), 벌시박스(Birch Box), 글로시박스(Glossy Box) 등이 대표적으로, 국내에선 몇몇 기업이 시도했으나 현재는 운영되지 않고 있는 형태의 서비스다.

김 대표는 “화장품을 알리려면 화장품 샘플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전략이다. 매달 신상 화장품의 샘플을 담은 서브스크립션 박스로 한국의 우수한 K뷰티 제품을 해외 고객에게 제공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판교 실리콘투 본사에 위치한 스튜디오K의 메이크업 플레이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스타일코리안은 전 세계를 무대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가장 최근엔 쇼핑몰 ‘스타일코리안 타이완’이 문을 열었다. 남미와 유럽 지역 교두보가 될 ‘스타일코리안 콜롬비아’와 ‘스타일코리안 러시아’도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 준비 단계에 있지만 아프리카와 중동 시장 진출도 고려하고 있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김 대표는 “두바이의 경우 면세점 사업 협력 제의도 들어왔다. 그밖에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아프리카의 경우 이집트, 알제리,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을 고려 중이다”고 덧붙였다.

K뷰티 2.0의 시대… ‘판매’를 넘어 이제는 ‘문화’다

스타일코리안은 단순히 화장품만 판매하는 쇼핑몰이 아니다. 1차 생산품인 화장품뿐만 아니라 2차 생산품인 콘텐츠도 함께 제공한다. 스타일코리안 홈페이지에서 진행 중인 유튜버 콘테스트가 대표적이다.

지난 9월 개최된 스타일코리안 유튜버 콘테스트는 해외 뷰티 유튜버를 대상으로 한 신인 유튜버 발굴 프로그램이다. 500:1의 경쟁률을 뚫고 11월 22일 기준 최종 4인이 남았다. 최종 우승자의 포상금은 1만달러다.

▲ 스타일코리안 홈페이지에서 지난 9월부터 진행 중인 유튜버 콘테스트. 사진=스타일코리안 제공

김 대표에겐 콘텐츠도 하나의 ‘유통’이다. 그는 “콘텐츠도 어떤 채널로 어떻게 유통하느냐가 핵심”이라면서 “스타를 만들어내고, 이를 어떻게 노출할 것인가의 문제에서 유통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실리콘투 본사 내에는 직접 콘텐츠를 촬영, 제작할 수 있는 ‘스튜디오K’도 마련됐다. 스튜디오K에서는 향후 화장법, 제품 리뷰, 스킨케어 노하우뿐만 아니라 뷰티 크리에이터 간의 리액션 영상, 라이브 토크쇼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할 예정이다.

▲ 판교 실리콘투 본사에 위치한 스튜디오K 전경.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김 대표는 K팝 시장에서 K뷰티 2.0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과거 음반사업이 주를 이뤘던 K팝 시장은 현재 아이돌을 중심으로 음반, 음원뿐만 아니라 캐릭터, 인형, 의류 등 2차·3차 굿즈가 주를 이루고 있다. 게다가 아이돌 육성 과정 자체도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소비되고 있다.

김 대표는 “K뷰티에도 이런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다. 뷰티 크리에이터들의 실력이 과거에 비해 월등하게 높아졌고 이를 지망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스타 뷰티 크리에이터의 콘텐츠뿐 아니라 이들을 육성하는 과정도 실리콘투가 지향하는 K뷰티 2.0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그는 신제품이 자주 나오는 K뷰티의 특성도 K팝 시장과 유사하다고 봤다. 고가의 해외 뷰티 브랜드의 경우 1년에 많아야 한두 개의 신제품을 내놓지만 국내 화장품회사는 하룻밤 새에도 신제품이 쏟아져나온다는 것. 이러한 다양함과 발랄함, 역동성을 무기로 K뷰티와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게 김 대표의 목표다.

실리콘투는 사내 미디어팀을 중심으로 내년 중 ‘스타일코리안 TV’를 여는 등 내년부터 본격적인 콘텐츠 개발에 뛰어들겠다는 계획이다.

반도체에서 화장품까지… 결국은 ‘유통’의 문제

실리콘투는 2002년 반도체 유통회사로 출발했다. 2006년 반도체 매출 ‘2000만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하며 승승장구하던 실리콘투는 2012년 돌연 화장품 유통업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얼핏 연관이 없어 보이는 둘 사이의 연결고리는 ‘유통’이라는 키워드다.

김 대표는 반도체에서 화장품으로 바꿨을 뿐 유통업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도체 유통업에서 10년 가까이 일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미들맨(Middle Man)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데 반도체업계가 성장하면서 미들맨 역할이 점점 줄어들더라. 장기적으로 봤을 때 화장품이 미래가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 김성운 실리콘투/스타일코리안 대표.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김 대표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사업 변경 2년 만인 2014년 실리콘투는 화장품 수출 200억원을 달성했고 이듬해 ‘3000만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올해 연매출은 42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사드(THAAD) 여파로 중국 시장에 진출한 국내 화장품 기업들이 고전을 면치 못할 때도 실리콘투는 ‘나홀로’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중국 시장 비중을 줄이고 미국, 유럽, 동남아는 물론 남미, 중동, 아프리카까지 영역을 넓힌 성과였다.

반도체에서 화장품으로, 다시 콘텐츠로. 유통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실리콘투와 스타일코리안은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