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의 인공지능 플랫폼 클로바가 LG전자의 스마트 스피커 씽큐 허브에 탑재된다고 20일 알려졌다. 올해 초 인공지능 분야에서 두 회사의 협력 청사진이 발표된 후 처음 나온 성과다. 씽큐 허브는 사용자와 대화하며 집안 가전제품의 상태를 확인해 알려주고 동작을 제어하는 기능이 뛰어나다는 설명이다. LG전자가 키워낸 인공지능 허브기기의 역할에 네이버 클로바가 탑재된 셈이다.

연동된 가전제품들을 관리할 수 있도록 알림 서비스를 제공하며 클로바를 통해 네이버 뮤직 접근도 가능하다. LG전자는 전국 100여개 LG베스트샵 매장에 씽큐 허브 신제품을 선보인 후, 이달 말까지 베스트샵  매장으로 판매를 확대할 예정이다. 가격은 24만9000원이다.

▲ 웨이브와 클로바. 출처=각 사

네이버와 LG전자의 인공지능 협력이 성과를 내며 자연스럽게 국내 전자업계를 대표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 그리고 ICT 업계를 대표하는 네이버와 카카오의 전략이 조금씩 베일을 벗고 있다.

먼저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갤럭시S8에 인공지능 빅스비를 탑재하며 인공지능 스마트폰 시대에 합류했으나 존재감은 다소 약하다. 빅스비 개발을 주도하던 이인종 부사장이 2선으로 후퇴하는 한편, 뚜렷한 확장 전략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빅스비는 지난 5월 출시되며 한국어만 지원하는 상태에서 조만간 영어도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나 차일피일 늦어졌다. 결국 7월이 되어서야 간신히 영어를 지원하기 시작했으나 8월부터 200개 나라에서 서비스를 하겠다는 계획도 불투명하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는 올해 글로벌 스마트폰 인공지능 비서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빅스비 점유율이 12.7%를 기록했으나 2020년 6.5%로 반토막 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다만 삼성전자는 진정한 비브랩스의 기술력을 보여주기 위해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삼성페이의 아버지인 정의석 부사장이 개발총괄을 맡으며 인공지능 청사진을 처음부터 다시 짜고있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2020년부터 생산되는 자사의 모든 가전제품에 빅스비를 탑재할 계획이며, 타이젠 운영체제를 중심으로 사물인터넷 로드맵을 '내 생태계'로 구축할 계획이다.

▲ 빅스비 시연. 출처=삼성전자

그러나 삼성전자의 초연결 인공지능 생태계가 내부만 향하는 것은 아니다. 자회사 하만카돈이 아마존 알렉사와 연동되는 기술력을 보여주는 한편, 카카오와 손을 잡기도 했다.

삼성전자와 카카오는 지난 9월14일 카카오의 인공지능 플랫폼인 카카오 I가 빅스비와 연동되며, 이를 바탕으로 음성인식을 비롯한 인공지능 분야에서 협력한다고 밝혔다. 카카오 임지훈 대표는 “삼성전자와의 협력은 카카오 서비스가 가진 경쟁력과 함께 카카오 I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카카오의 인공지능 기술은 카카오 서비스 안에 머물지 않고 수많은 파트너들을 통해 확장해 전 국민의 일상에 자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0월12일에는 두 회사가 구체적인 업무협약도 맺었다. 스마트 가전 서비스가 핵심이다. 카카오톡 메시지나 카카오미니(카카오의 스마트 스피커)로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생활 가전제품을 명령하고 제어할 수 있는 서비스다. 카카오의 다양한 생활 밀착형 서비스와 음성 엔진, 대화 엔진(챗봇) 기술을 삼성전자 가전제품에서 이용할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구성기 상무는 “패밀리허브 냉장고 등 차별화된 스마트가전 기술 리더십을 보유한 삼성전자와 진화한 모바일라이프 플랫폼인 카카오와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IoT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소비자들이 IoT경험을 더 간편하고 다양하게 즐길 수 있도록 관련 기술과 서비스 개발에 주력할 것” 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빅스비 고도화와 내적 생태계를 중심으로 이미 보유한 막강한 가전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장면은 고화질 경쟁인 HDR 업계에서도 재연된다. 현재 삼성전자는 자사 스마트 TV를 중심으로 HDR 10 플러스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에 맞서는 돌비는 LG전자 등과 더욱 가깝게 협력하며 돌비비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고집스럽게 내적 생태계만 노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HDR 업계에서 다수의 스트리밍 업체와 협력하는 것과 인공지능에서 카카오의 손을 잡은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카카오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이미 현대자동차에 카카오 I의 경쟁력을 이식한 상태에서 카카오미니와 같은 인공지능 스피커를 매개로 삼아 플랫폼-생태계 전략을 더욱 날카롭게 다듬을 수 있다. 멜론이라는 강력한 음원 경쟁력으로 카카오미니라는 하드웨어 제품을 사실상 무료로 풀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생태계를 빠르게 장악하겠다는 복안이다.

카카오가 O2O 일변도에서 벗어나 각 사업부를 분사시키며 일종의 플랫폼 사업을 강화하는 장면이 중요하다. 카카오톡이라는 대형 플랫폼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려면 인공지능이 필수며, 하드웨어가 없는 카카오는 삼성전자 등과 협력해 빠르게 몸집을 불릴 필요가 있다. 현재 카카오는 카카오브레인이 인공지능 장기 로드맵을, 사내 인공지능 부문이 실제 활용방안을 타진하는 투톱으로 나서고 있다. 카카오브레인은 김범수 의장이 직접 키를 잡았으며 사내 인공지능 부문은 김병학 총괄 부사장이 맡고 있다.

네이버도 카카오와 비슷한 상황이다. 클로바를 통해 인공지능 스피커 웨이브를 출시했으나, 웨이브라는 하드웨어 라인업으로 사업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카카오와 비슷하게 무료로 하드웨어 스피커를 풀어 플랫폼 생태계를 구축하려고 준비한다. 그 연장선에서 일본 시장에서 동아시아까지 겨냥한 라인 메신저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강점'도 가지고 있다.

만약 최근 월 거래건수 1000만건을 돌파한 라인페이, 라인 메신저, 일본과 동남아시아에 마련한 오프라인 거점 인프라가 위력을 발휘한다면 클로바의 영향력은 비약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

네이버와 협력한 LG전자는 지금까지 인공지능 영역에서 오픈 플랫폼 전략을 구사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LG전자의 가전제품이 아마존 인공지능 알렉사와 만난 것이다. LG전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IFA 2017에서 아마존 알렉사에 자사의 가전제품이 연동되는 장면을 시연했다. 연동되는 LG 생활가전은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에어컨, 공기청정기, 로봇청소기, 오븐 등 7개다.

구글과의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특허 라이선스를 맺고 서로의 기술을 활용하는 한편, 인공지능 시장에서도 보폭을 맞추고 있다. 구글의 인공지능인 구글 어시스턴트가 LG전자와 호환되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아마존과의 협력으로 가능한 서비스를 구글 홈을 통해 동일하게 누릴 수 있으며, 올해 5월 열린 구글 I/O에서 구글 홈으로 LG 시그니처 가습공기청정기를 작동하는 모습이 시연되기도 했다. LG V30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한글로 패치가 끝난 구글 어시스턴트가 탑재된 스마트폰이기도 하다.

▲ LG V30 체험관. 출처=LG전자

물론 오픈 플랫폼(Open Platform)과 오픈 파트너십(Open Partnership) 전략을 기반으로 삼았으나 스마트씽큐라는 단독 플랫폼을 키우기는 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내적 생태계보다는 외부와의 협력이 잦은 편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묘한 현재의 상황도 관전 포인트다. 두 회사는 모두 모바일 생태계에서 안드로이드에 종속된 상태다. 여기서 삼성전자는 구글과 거리를 두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삼성페이와 안드로이드페이 충돌, 빅스비와 구글 어시스턴트의 충돌이 첨예하게 수면 위로 부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글이 삼성전자의 운영체제인 타이젠에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는 것은 업계의 상식이다.

다만 LG전자는 적극적으로 글로벌 ICT 기업과 협력한다. 구글과 애플 등이 최근 하드웨어 수직계열화까지 나서며 엔드단 인프라 장악의 욕심을 숨기지 않는 가운데, 각각 네이버와 카카오와 손을 잡은 LG전자와 삼성전자의 다음 수에 시선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