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6.19 부동산대책과 8.2 부동산 대책, 10.24 가계부채 종합대책 등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부동산 시장 안정화와 다주택자 옥죄기에 나섰다. 특히 투기과열지구(서울 25개구, 경기 과천시, 세종시, 성남시 분당구, 대구시 수성구 등) 내에서 LTV 한도를 40%로 강화했고, 주택담보대출을 1건 이상 보유한 경우 LTV 적용한도는 30%로 더 낮아진다. 이에 따라 서울을 비롯한 투기과열지구과 투기지역에서는 강화된 대출규제를 피하는 전세자금대출을 편법으로 하거나 규제를 벗어난 전세자금대출로 갈아타 전세가가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 전세자금대출 최대 80%… 정부 대출 규제 강화에서 제외

은행권에 따르면 올해 10월 말 기준 신한·KB국민·우리·KEB하나·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42조원가량으로 조사됐다. 2016년 말 전세자금 대출 잔액은 34조485억원으로 2015년 말(23조6636억원)보다 10조3849억원(43.9%)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5대 시중은행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2010년(2조3196억원) 이후 6년 사이에 15배 급증했다.

전세자금대출은 대출 규제 강화에서 제외돼 시중은행 역시 부담 없이 대출을 집행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여기에 전세자금대출은 리스크가 신용대출 등에 비해 크지 않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시중은행 가계대출 담당자는 “영업점 위치에 따라 전세대출수요는 상이하지만 연이은 대책에도 전세대출을 받으러 오는 고객들은 꾸준했고, 주택담보대출에 비해 대출집행이 쉽다”면서 “기타 대출에 비해 대체적으로 리스크가 크지 않고 만기도 길지 않아 수익성 자체가 좋다”고 말했다.

부동산 투기과열을 가라앉히고, 다주택자들을 겨냥한 정책이 연이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서민의 내 집 마련이나 전세자금 마련을 위한 저리의 정책대출이 내년 4조원가량 더 늘어날 예정이다.

지난 8일 정부 부처와 국회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내년 예산안으로 ▲디딤돌대출(주택구입자금) 1조5000억원 ▲버팀목대출(전세자금) 6조원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는 주택구입과 전세자금 대출 한도를 높이는 동시에 저리대출 혜택을 받는 가구를 더 늘릴 예정이다.

총규모는 2016‧2017년과 비슷한 수준인 7조5000억원이지만 디딤돌대출(주택구입)을 올해 3조원에서 내년에 1조5000억원으로 줄이고, 버팀목대출(전세자금)은 올해 4조4300억원에서 1조 5700억원 늘린 6조원으로 배정했다.

디딤돌대출과 버팀목대출은 공공기금인 주택도시기금을 활용해 시중은행보다 저렴한 금리(디딤돌 2.25~3.15%, 버팀목 2.3~2.9%)로 서민에게 대출해주는 정책 금융상품이다. 디딤돌대출은 최대 2억원(집값의 70%), 버팀목대출은 최대 1억4000만원(전세보증금의 70%)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디딤돌대출 집행 건수는 약 8만7000건 ▲버팀목대출은 10만6000건으로 집계됐다. 저리 정책대출이 4조원가량 늘어나면서, 내년에는 최소 20만명 이상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또 국토부는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구입·전세자금 대출 신규상품을 내년부터 도입할 계획이다. 전세대출의 경우 기존 버팀목대출보다 최대 3000만원 한도를 늘리고, 금리는 최고 0.3%포인트 우대적용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정부는 연내 발표할 ‘주거복지 로드맵’에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할 예정이다.

전세자금대출 최대한도는 80%이며, 제2금융권(은행을 제외한 금융기관)의 경우 100%까지 가능하다. ▲한부모가족 ▲차상위계층 ▲기초생활수급권자 ▲신혼부부 ▲다자녀의 경우 우대금리를 적용받아 대출을 받을 수 있다.

▲ 전세자금 대출 보증금 최고 한도. 출처=이코노믹리뷰 이정연 기자

전세자금대출이 주택담보대출보다 쉽고 대출자금도 최대 80%까지 가능한 만큼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에서 강화된 대출규제를 피해 각종 편법을 통해 전세자금대출을 받고 있어 주담대 규제를 피한 문제점으로 지적받고 있다.

서울 전 지역과 과천시, 세종시 등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은 LTV와 DTI가 40%로 줄어 주택가격과 연봉 등에 따라 대출 가능액이 감소했다. 투기지역은 원칙적으로 아파트 담보대출을 가구당 1건으로 제한했다. 단, 투기지역 내 기존 주담대가 있어도 신규 아파트 담보대출을 받은 후 2년 내 기존 주택을 처분하고 기존 주담대를 상환하기로 약정하면 예외적으로 추가 담보대출 1건이 가능하다.

그러나 친분관계가 있는 지인들끼리 서로 보유하고 있는 주택을 각각 전세임대차계약을 체결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6억원의 두 매물을 서로 교차해 5억원의 전세임대차계약을 체결한 후 최대 전세보증금 한도인 80%를 적용하면 4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의 경우 LTV와 DTI가 40%로 주담대를 받게 되면 6억원의 매물에는 2억4000만원만 가능하지만 서로 전세임대차계약을 맺을 경우 무려 1억6000만원을 더 받을 수 있게 된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 정보원 이사는 “이 같은 편법대출에는 적정선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지만 규제에 따른 부작용이 더 크게 우려된다. 주택담보대출에 이어 전세대출 규제까지 시행했을 때 가장 큰 피해를 볼 수 있는 것은 실수요자”라면서 “다주택자의 꼼수를 막기 위한 방어규제보다는 실수요자를 위한 실효성 높은 지원책을 내놓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어 권 이사는 “규제 적용 조건을 보다 세밀하게 설정해야 한다. 특히 주택 수에 따라 보유세를 도입하는 게 직접적인 효과를 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이 같은 편법 대출이 생기는 현상에 대해서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부동산 투자가 가장 안정적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때문에 편법대출까지 이용하면서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라면서 “결국 부동산 투자라는 것은 오른다는 기대심리가 있고 사겠다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므로, 지금처럼 매매 열기를 지속적으로 꺾어 준다면 자연스럽게 편법투자는 사그라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 전세시장 신(新)풍속도, 전세가율이 높은 단지가 뜬다

▲ 전국 전세가율. 자료=한국감정원

주택담보대출이 강한 규제를 받고 있지만 규제에서 벗어난 전세자금대출의 규모는 꾸준히 늘고 있다. 2015년 5대 시중은행의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총 34조485억원으로 2015년 대출잔액인 23조6636억원보다 10조4839억원이 늘어났다.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해 부동산 시장 전방위적으로 규제가 가해지고 전세자금대출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값)이 높은 지역들이 관심을 끌고 있다.

▲ 수도권 전세가율. 자료=한국감정원

지난달 18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전국 매매가 대비 전세가율은 평균 74.4%로 나타났다. ▲수도권 74% ▲5대 광역시 74.4% ▲도지역 75.8% 등으로 집계됐다. 이어 전국 시·군·구별로 살펴보면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전국 기준(74.4%)보다 높은 곳은 총 75개 지역으로 전체의 48% 수준을 차지했다.

지역별로는 ▲전남 목포시가 82.3%로 가장 높았고 ▲경기 오산시 82.3% ▲전북 전주시 82.2% ▲경북 구미시 82% ▲광주 동구·광산구가 각각 81.4% ▲광주 북구 81.2% ▲전남 순천시 81.1% ▲경기 군포시 80.8% 등의 순이었다.

특히 청약규제가 집중된 수도권은 ▲서울 서대문구(80%) ▲성북구(78.7%) ▲관악구(78.1%) ▲구로구(77.7%) ▲성동구(77.1%) ▲동작구(76.1%) ▲금천구(75.6%) ▲중랑구(75.5%) 등으로 높았다.

경기도에서는 ▲오산시(82.3%) ▲군포시(80.8%) ▲의왕시(80.7%) ▲안양시(80.4%) ▲과천시(78.7%) 등이 높았고, 인천시에서는 ▲부평구(79.2%) ▲남동구(78.1%) ▲연수구(76.8%) 등이 매매가 대비 전세가율이 수도권 기준(74%)을 상회했다.

▲ 지역별 전세가율. 자료=한국감정원

전세가율이 높은 단지가 주목받는 것은 대출금이 확연히 차이 나기 때문이다. 즉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의 경우 매매가 10억원의 아파트를 주담대로 받으려면 LTV와 DTI 40%를 적용받아 4억원을 대출받을 수 있게 된다. 주택담보대출을 1건 이상 보유한 경우 LTV 적용한도는 30%로 더 작아져 3억원을 받는다. 그러나 전세자금대출의 경우 최대 80%까지 가능해 10억원짜리 매물의 전세가율이 70%라면 전세보증금인 7억원의 80%인 5억6000만원까지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지연 리얼투데이 리서치팀 팀장은 “만약 다주택자가 편법을 통해 대출을 받는다면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현재 고려 중인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하면 전세값 안정효과가 있으리라 생각된다”면서 “근본적으로 서울에서 도심노후지역 내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통해 공급이 이뤄져야만 수도권 집값 안정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이어 권 이사는 “서울은 연이은 대책으로 인해 어느 정도 투자 열기가 꺾인 상황으로 집값도 점차 보합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또 이달 중 발표될 주거복지로드맵의 내용에 따라 부동산 투자 시장의 위축 정도와 전세시장의 안정화를 판단할 수 있을 걸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