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노연주 기자

“세상엔 임원 뜻으로 만든 서비스가 정말 많아요. KPI(핵심성과지표)를 위한 서비스요. 이게(KPI) 사실 필요 없거든요. 사용자는 ‘내 친구가 쓰는 서비스’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죠. 사용자 마음을 읽어주는 기획이 중요합니다.”

세상에 없던 서비스를 기획해오던 그다. 인터파크, 다음, 엠파스, 멜론, 마이스페이스, 넥슨을 거치며 ‘최초’란 표현이 붙은 서비스를 여럿 만들었다. 20년차 프로 기획꾼 임수진 헤이뷰티 대표 이야기다.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창업지원공간 마루180에서 그를 만났다.

 

스타트업 CEO로 변신한 월급쟁이 기획자

서비스 기획자로 직장생활을 한 지 18년. 임수진 대표는 중대 결정을 내렸다. 스타트업 창업에 도전하기로. 2015년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더벤처스 사내벤처로 시작했다. 사명은 헤이뷰티, 서비스명도 동일하다. 지난해 초 서비스를 정식 오픈해 같은 해 연말에 더벤처스로부터 독립했다. 외부 투자도 다수 유치했다.

헤이뷰티는 모바일 뷰티숍 예약 서비스다. 헤어, 네일, 왁싱, 스킨케어 등 뷰티숍 예약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손쉽게 할 수 있다. 투명한 가격 정보와 사용자 리뷰를 보며 손가락 하나로 언제 어디서든 예약 가능하다.

“첫째는 고객이 뷰티숍을 예약하는 데 겪는 불편을 최소화하는 겁니다. 현재 우리나라 미용업은 예약이 꽤 귀찮은 작업인데 이를 개선하려 합니다. 둘째는 미용업체가 돈을 잘 벌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고요.” 임수진 대표가 말하는 헤이뷰티 기업 미션이다.

“아직 헤매고 있어요.” 지금껏 성과를 묻자 돌아온 말이다. 그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성과를 얘기할 순 있습니다. 사용자와 업체가 모바일 예약에 익숙해지고 있거든요. 또 실력은 뛰어나지만 자금이 부족해 홍보가 어려운 숍이 우릴 통해 단골손님을 늘리고 있습니다. 가장 보람차게 생각하는 부분이죠.”

 

“우릴 선택한 직원의 성공이 가장 중요”

임수진 대표가 그랬다. 직장생활 18년보다 지난 2년이 훨씬 힘들었다고. 어쨌든 창업은 처음이니까. 지난해 이맘때 회사에 돈이 떨어지기도 했다. 지금은 투자금을 바탕으로 사업을 잘 풀어나가고 있지만 시행착오를 피해갈 수 없었다.

“초창기에 뷰티숍 대상 영업망부터 늘렸는데 좋지 않았어요. 유저를 같이 봤어야 하는데 불신만 생겨났죠. ‘뭐야, 손님 하나도 안 오잖아.’ 무의미한 서비스라 여기는 분도 있었어요. 시행착오였습니다. 이후엔 유저 확보에 집중하니 영업을 하지 않아도 업체가 플랫폼에 들어오는 구조로 변했죠.”

좋게 말하면 활기차다. 악의를 품으면 ‘어수선하다’고 얘기할 수 있겠다. 10명이 함께 일하는 헤이뷰티 사무실은 수다스럽다. “심하게 자유로워요. 우린 커피처럼 맥주를 끼고 마시며 일하거든요. 자율출퇴근제를 실시하고 있고, 일하는 장소에 의미를 두지 않아요. 집에서든 카페에서든 일할 수 있죠.”

직원한테 숙제는 많이 준다. 성장을 위한 숙제 말이다. 임수진 대표는 직원의 성공을 1순위 목표로 삼는다. ‘우리 회사에 와서 성장하고 갈 수 있느냐.’ “우리가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잖아요. 그런데 우릴 택한 직원은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까지 이 목표는 달성하고 있고요.”

▲ 사진=노연주 기자

 

퇴사하고도 사용하고픈 서비스가 진짜

기획. 20년을 기획자로 살았으니 이 단어에 남다른 감정을 품고 있지 않을지. 임수진 대표한테 물었다. ‘좋은 기획’이란 무엇이냐고. 간단명료한 정리가 나왔다. 사용자 마음을 읽어주는 기획,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는 기획이라는.

“굉장히 많은 회사가 외국에서 낸 기획을 카피해요. 그게 기획일까요? 아닌 것 같아요. 다른 회사에서 떴다고 해서 비슷한 서비스를 만들면 안 됩니다. 사용자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를 봐야죠. KPI를 위한 서비스는 대개 퇴사하고 사용자로서 다신 쳐다보지 않게 됩니다.”

그렇다면 기획력을 끌어올리는 노하우는? 임수진 대표는 막힘없이 기획 철학을 공유했다. “사용자를 애정 있게 봐야 해요. 감정이입이 필요합니다. 사용자가 우리 서비스를 어떻게 생각할까 관찰하고 추리해야 합니다.”

공부만 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임수진 대표 생각에 우리나라 대부분 서비스는 ‘딴짓’을 위해 기획됐다. 딴짓 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거나. 모범생 기질이 다분한 사람은 딴짓에 관해 잘 모를 수밖에 없지 않겠나. 

창업? 입양과 파양을 함께 생각해야

임수진 대표의 2018년은 올해보다 더 바쁠 듯하다. 계획 중인 일이 많다는 뜻이다. 전국 서비스를 꿈꾸고 있다. 커뮤니티 기능을 강화해 앱을 포털 형태로 리뉴얼할 생각이다. 뷰티숍 대상 재료공급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동네 뷰티숍을 물류기지·쇼룸으로 삼아 뷰티·라이프스타일 상품을 판매하는 사업도 준비 중이다. 시리즈A 투자도 유치하겠단 각오다.

마지막으로 예비 창업자를 위한 애정어린 조언을 쏟아냈다. “강아지 입양할 때 파양 순간도 고려해야 하잖아요. 준비 안 됐으면 창업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사업이 잘 되도 문제예요. 끊을 수가 없으니까. 팀원도 생기고 투자자도 생기고. 내가 지겹다고 끝낼 수 없어요. 망하면 더 문제고요.”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자금도 충분히 모으고, 기능 면에서도 내가 다른 직원 몇 명을 대체할 수 있을 때 창업을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누가 등떠 밀어서, 단순히 쿨해 보여서 하면 안 돼요. 충분히 고민하고 기술·돈·멘탈을 갖췄을 때 도전해도 늦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