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빌리은행의 홍석만 상담사(43)는 아침부터 상담 전화로 정신없는 하루를 시작한다. 헤드셋을 끼고 전날 홈페이지에 올라온 상담 내용을 하나씩 보며 전화를 한다. 상대방에게 거는 전화보다 걸려오는 전화가 더 많다. 전화를 끊었다 싶으면, 곧바로 전화벨이 울린다. 주빌리은행은 목소리로 북적인다.

주빌리은행은 채무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채무 상담을 해주는 곳이다. 오래된 채권을 사서 소각 운동을 벌이거나 시효에 관련된 채무상담을 주로 하는 시민단체다.

돈을 버는 일에는 정보가 난무하지만, 빚을 지는 일과 그 빚을 처리하는 일에는 도움받을 정보가 없다. 그래서 빚 얘기는 점점 더 깊숙한 마음속으로 들어가기 일쑤다. 주빌리은행에서는 겁이 나서 숨기는 채무를 상담의 테이블로 끄집어내서 소각하거나 채무자에게 채무조정의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주빌리은행을 찾는 이들은 채무를 갚을 돈은 고사하고,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데 필요한 돈도 없는 이들이다. 

▲ 주빌리 은행 홍석만 상담사.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죽은 그 사람이 생각난다. 나는 여기에 있어도 될까?

주빌리은행의 홍석만 상담사는 상담 전화를 받느라 기자와 얘기를 나눌 틈조차 없어보였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겨우 그와 마주 앉았다. “과거 로펌에서 10년 동안 회생과 파산업무를 했다. 지금 여기서 받는 보수는 예전 직장의 3분의 1 정도다. 예전과 비교하면 삶이 윤택하지 않지만, 마음은 편하다”라고 웃으면서 그는 대화를 시작했다.

그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건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로펌에서 일할 때 한 채무자의 파산절차를 로펌에서 대리했다. 수임료를 다 못 받은 상태에서 면책결정이 났는데, 밀린 법률 수임료를 얘기하려 전화했는데 채무자의 딸에게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면책을 받았지만, 그동안 채권자들로부터 받은 추심 압력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 당시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채무에 관한 업무를 하면서 돈을 받아도 될까 하는 생각에 착잡했다”며 “문득 ‘내가 정말 저 사람들을 알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을 때 10년 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시민단체 상담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시민단체에서 적은 월급을 받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최소한 이 일은 보람이 있다는 것을 그는 강조했다. “사람들이 나의 말을 듣고 희망이라는 것을 갖는다. 그리고 예전의 삶보다 지금이 스스로 더 만족스럽다.” 자신을 이해해 주는 아내도 고맙다고 말했다. 어쩌다 죽을 것만 같던 사람이 자신의 상담을 통해 용기를 갖게 됐을 때 그는 한없이 기쁘다고 홍 상담사는 말했다.

채무를 상담하면서 예전과 같이 굳이 수임이라는 것을 하도록 유도하지 않아도 되자 그는 채무 상황을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주저함이 없이 주빌리은행에 전화하기를 바랐다.

▲ 홍석만 상담사는 상담을 통해 채무자가 희망을 가질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채무를 직시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상담 코칭

주빌리은행 사무실 한쪽에 그의 상담 부스가 있다. 홍 상담사를 포함해 4명의 상담사가 전국 각지의 채무 상담을 해준다. 채무상담이 때론 인생 상담이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인터뷰 동안 걸려온 한 여성 채무자의 사연도 그런 경우다. 남편이 채무 사실을 모른다는 여자의 말에 신용회복과 개인회생 등의 가능성을 그에게 제시한다. 그녀는 “남편이 채무를 알지 못하고, 곧 이혼할 사이라 채무내역을 상의할 수 없다”고 간신히 털어놓는다. 사람들이 용기 내어 파탄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홍 상담사는 위로하고 이해시키고, 설득한다.

홍 상담사는 “채무를 상담하려 전화를 걸 때는 채무자에겐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미 사람들이 채무 때문에 위축되어 있기에 내밀한 빚의 축적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에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 그는 “우리 주변에 채무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 사람들”이라며 “이 때문에 그 용기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해줘야 채무자들이 맘에 짐을 벗는다”고 말했다.

이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채무자들에게 ‘자신의 채무를 똑바로 직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문제 해결을 피하지 말라는 것. 그는 ‘채무의 속성’을 제대로 알지 못해 막연한 두려움에 빠진다며 “채무가 무서운 것이 아니고 똑바로 보고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채무도 얼마든지 조정되거나 탕감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이런 말을 들으면서 이해하지 못한다. 상환 능력이 없으면 조정하고 탕감받을 길이 있는데 사람들이 빚을 더 내어 갚거나 불법 사채의 나락에 떨어진다. 이런 사람들에는 ‘채무가 삶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다’고 일깨워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상담을 받은 사람들은 시효로 채권에 대응을 하거나, 신용회복위원회나 법원을 찾아가도록 한다. 이런 절차가 쉬운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채무에 대한 두려움과 막연함을 떨쳐버리라고 조언한다.

홍 상담사는 “채무가 조정되거나 탕감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생활방식을 바꿔 지출을 줄일 수 있도록 재무 설계를 해주기도 한다”며 “재무상담은 전화 상담으로 한계가 있어 꼭 주빌리은행을 방문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금융복지상담사 자격증도 갖고 있다. 서민 곁에 채무상담자가 더욱 밀착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오래된 생각이다. 이 때문에 그는 최근 금융복지상담사 양성에 시간을 할애한다.

강의를 통해 채무의 속성과 채무자들의 상황을 체계적으로 알려주고, 상담을 받은 사람 중 일부에게 다시 주빌리은행이나 지자체 금융복지상담센터에서 상담업무를 하게 한다. 전문지식을 익혀 누군가가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이 금융복지상담사의 직업적 보람이라고 자부한다. 홍 상담사는 “빚진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 주고, 상담사를 많이 양성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 채무상담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환영한다”고 말했다.

▲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