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불법대부업 피해상담센터와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에 사채업자와 작성한 공정증서로 인한 피해사례가 잇따라 접수되고 있어 사건 실체가 주목받고 있다.

이들 민원인들은 수년 전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린 후 이미 갚았거나 갚고 있는 과정에서 사채업자가 신용정보회사를 통해 채권추심을 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특히 서울시 불법대부업 피해상담센터에는 `사채업자 정 모씨`와 연루된 피해사례만 13건이 접수됐다.

사채업자 정씨는 급전이 필요한 채무자에게 수백만원을 현금으로 빌려주고 금액을 부풀려 수천만원의 공정증서를 여러 장 작성한 후 이를 근거로 강제집행을 일삼아 온 사채업자다.

최근 정씨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공정증서 채권을 모아 신용정보회사에 추심을 위임했다. 이와 관련, 추심회사인 K신용정보회사 관계자는 "정씨와 채권추심 대해 위임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구체적인 위임 건수와 추심 액수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 불법대부업 피해상담센터 한제현 상담사는 "피해민원을 제기한 민원인 중에는 9년 전 거래를 하고 당시 작성한 공정증서를 가지고 이제 와 추심을 하는 사례도 있다"고 주장했다.

불법 사채 피해자들을 상담해주는 민생연대에 접수된 사례도 유사하다.

추심회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는 이모 씨는 "지난 2013년 5월 11일 정씨에게 400만원을 빌리고 다음달 3일에 원금과 이자를 갚았는데, 며칠 전에 추심회사가 공증된 약속어음 2천만원을 추심했다"고 말했다.

이씨가 2013년 당시 공정증서를 작성한 변호사 사무실에 확인한 결과 작성된 약속어음은 신용정보회사가 독촉하는 2천만원 외에도 2천만원을 지급하겠다는 약속어음이 세 건이 더 있었다. 이 씨가 실제로 빌린 돈은 400만원인데 법적으로 상환해야 하는 돈은 8천만원이 된 것. 이씨는 곧 정씨를 상대로 형사고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사채업자 정씨는 실제 빌려 준 돈보다 금액을 부풀려 공증서류를 작성해 채무자들의 급여와 통장을 압류해 총 17억원의 재산상 이익을 취한 혐의로 총 28명으로부터 형사고소를 당해 서울남부지검으로부터 수사를 받았다.

관련기사: [사람 죽이는 공정증서] 법조인 '모두의 무책임'속 피해자 속출

검찰은 2016년 12월 정씨를 사기와 대부업법 위반 혐의로 기소, 현재 재판을 진행 중이다. 정씨의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는 정씨를 고소한 피해자 28명을 모두 증인으로 채택해 순차적으로 증언을 듣는 중이다.

정씨는 형사 재판도중 공증서류를 가지고 압류했던 채무자의 급여와 통장을 일부 해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가 이같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공증된 약속어음 채권을 신용정보회사에 추심 의뢰 한 것은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이뤄져 그 배경이 주목된다.

▲ 불법 사채업자들은 채무자들에게 현금을 빌려주면서 채무자로부터 여러 장의 위임장에 도장을 받아 약속어음에 허위의 금액을 기재한 후 공증을 받는다. 사진=이코노믹리뷰 DB

불공정 공정증서,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제도 개선 시급

약속어음은 채권자인 어음 소지자가 어음을 제시하면 채무자가 돈을 지급하겠다는 증서다. 공증인 변호사가 이 증서에 대해 공증(공적증명)하면 확정된 판결문과 같은 효력이 생긴다. 즉 채무자의 재산에 강제집행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실제로는 사채업자에게 200만원을 빌렸지만 약속어음을 2000만원으로 작성해 공증을 받는다면, 사채업자는 2000만원의 범위 내에서 채무자의 통장이나 급여를 얼마든지 압류할 수 있다.

채무자가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여러장의 문서에 도장을 찍는다면 사채업자는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금액을 허위로 기재해 공증을 받아 강제집행을 할 수 있게 된다. 사채업자는 허위로 기재된 금액만큼 채무자의 급여를 압류할 수 있다.

하지만 채무자는 자신이 빌린 돈이 공증된 약속어음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이를 피할 수 있는데, 사채업자들이 돈을 빌려줄때 금융거래내역을 남기지 않아 증명이 쉽지 않다.

불법 사채업자들은 빌려줄 땐 현금으로 주고, 원금과 이자를 입금 받을 땐 차명계좌로 받는다.  향후 소송으로 번질 경우 채무자가 실제 빌려간 돈에 대한 입증을 곤란하게 하려는 의도다.

비단 정씨뿐만 아니라 공증사무실을 이용하는 사채업자들 대부분 수법이 동일하다.

급전이 필요한 채무자에게 소액을 빌려주면서 사채업자 자신들이 제시하는 여러 문서에 도장을 찍게 만든다. 이 문서는 약속어음을 작성하거나 공정증서를 할때 사용된다.

문서 내용, 문서가 갖는 효력 등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급전이 필요한 채무자는 쉽사리 도장을 찍어준다. 간혹 의심하는 채무자에겐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공증인 변호사들도 이같은 사정을 알면서 불공정한 약속어음 등에 공증을 한다.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공증수수료가 주 수입원이기에, 사채업자가 악용하는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한다는 것이 민생연대의 송태경 사무처장의 주장이다. 억울한 피해를 방조하고 있는 것.

법무부의 '집행증서 작성사무 지침'에는 사채업자가 채무자를 대리해서 금전대부계약에 관한 집행증서를 작성하고, 이를 공증인이 공증하면 공증인은 징계를 받도록 돼있다.

하지만 공증인은 사채업자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발뺌하거나,  사채업자가 채무자에게 직접 증서를 작성하게 하는 경우는 징계를 할수가 없다.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이영기 변호사(법무법인 자연)는 "채무자가 실제 거래 관계를 증명하지 못하는 한 이미 공증 받음 약속어음의 액수를 재판에서 다투는 것은 어렵다"며 "사채업자가 채무자의 약점을 이용해 실제로 거래한 금액보다 부풀려 허위의 약속어음 공정증서가 남발되고 있는 것이 빈번하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공증제도의 개선도 필요하지만 약속어음 액수를 부풀려 공증하는 경우 그 처벌이 약한 것도 문제"라며 "일반 사기죄가 편취금액이 크면 구속수사와 실형을 선고하는 것과 같이 공증된 약속어음 금액의 허위성이 크면 역시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태경 처장은 "특정한 상황에서는 공증을 하는 경우 공증인이 실제 금전 거래내역을 확인한 후 정확한 금액대로 공증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