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잠정실적 발표에서 영업이익 14조5000억원, 매출 62조원을 기록해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반도체에서만 10조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되는 등 산업 트렌드의 바람을 확실하게 타고 있다는 평가지만, 대내외 상황이 점점 불투명해지면서 조직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최고의 실적에 고무되어 샴페인을 터트리기에는 현재 삼성전자의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뜻이다.

경영진 세대교체 빨라진다?

이건희 회장 와병,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 상태에서 지금까지 삼성전자는 권오현 부회장 체제로 움직였다. 그룹 미래전략실이 해체되고 계열사 각자경영이 시작됐으나 사실상 삼성전자가 그룹의 역할을 맡아 이 부회장의 공백을 막은 점을 고려하면 권 부회장의 역할은 총수 대행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권 부회장은 삼성전자 3분기 잠정실적이 발표되고 이 부회장의 2심 공판이 한창인 지난 13일 전격 용퇴의사를 밝혔다. 16일 열리는 한국전자산업대전에도 참석하지 않고 미국 출장길에 오르는 등 공식석상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다. 그는 반도체사업을 총괄하는 부품부문 사업책임자에서 자진 사퇴함과 동시에 삼성전자 이사회 이사, 의장직도 임기가 끝나는 2018년 3월까지 수행하고 연임하지 않기로 했다. 또 겸직하고 있는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직도 사임할 예정이다.

권 부회장의 사퇴는 경영공백의 발생, 뒤이은 세대교체의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12월 예정인 사장단 인사가 당장 다음달 안으로 단행될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권 부회장의 후임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총수 대행의 역할을 맡을 유력한 인사는 윤부근 CE(소비자가전) 사장과 미스터 갤럭시로 불리는 신종균 IM(인터넷모바일) 사장, 이상훈 경영지원실장이 거론된다. 포스트 권 부회장의 자리는 윤 사장이 유력하다는 말이 나온다. 삼성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윤 사장은 지난 8월 IFA 2017 당시 기자들과 만나 수감중인 이 부회장을 만났다는 사실을 언급하기도 했다"며 "내부 서열로 봐도 윤 사장이 전면에 나서 총수 대행 역할을 할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반론도 있다. 총수 대행의 자리가 세대교체의 신호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예상을 뛰어넘는 신선한 기용이 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용퇴를 결정한 권 부회장은 1952년생이고 윤 사장은 1953년생, 신 사장도 1956년생이다. 비슷한 경력과 연배를 가진 이들은 권 부회장이 물러남과 동시에 자진사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권오현 부회장. 출처=삼성전자

권 부회장이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IT 산업의 속성을 생각해 볼 때, 지금이 바로 후배 경영진이 나서 비상한 각오로 경영을 쇄신해 새 출발할 때라고 믿는다"고 언급한 대목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조직쇄신의 차원에서 젊은 경영진이 전면에 배치될 수 있음을 시사했기 때문에 수감중인 이 부회장과 비슷한 연배와 경력의 인사가 전면배치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시기도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삼성전자는 다음달  19일 고 이병철 창업주의 30주기와 이건희 회장 취임 30주년을 맞아 올해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준비해왔다. 2014년 이 회장의 와병 후 사장단 인사가 비교적 소극적으로 이뤄졌으나, 올해는 큰 폭의 변화를 예고했다는 게 정설이다. 실제로 구속이라는 돌발변수가 생겼으나 이 부회장이 지난해 등기이사에 오른 후 어느 정도 예상된 세대교체였다는 게 삼성전자 안팎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에 따라 권 부회장의 용퇴와 50년대생 경영진들의 이선후퇴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시나리오가 나온다.

총수 대행이 아닌, 점점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반도체 사업 총괄 후보군에는 김기남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을 비롯해 손영권 삼성전자 전략혁신센터 사장, 전동수 의료기기사업부장 사장, 진교영 반도체총괄 메모리사업부장 부사장 등이 거론된다. 이 중에서 김 사장이 가장 유력하다는 평가다. D램 개발실장과 반도체 연구실장,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을 역임하고 현재 반도체 총괄을 맡고있는 그가 향후 삼성전자 반도체 콘트롤 타워가 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SDS를 필두로 삼성전자와 직접적인 관련이 높은 전자 계열사를 중심으로 대규모 임원 인사가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 계열사도 큰 폭의 경영진 및 임원 교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장단 인사와 더불어 삼성전자 이사회의 세대교체 여부도 관심사다. 권 부회장은 이사회 의장과 이사직을 내년 3월15일까지 수행하고 연임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이사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 등기이사 9명 중 초임은 이 부회장과 박재완 사외이사 2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60개월 넘게 재임한 바 있다. 단순하게 몇몇 이사의 교체가 예상된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의외로 큰 폭의 변화가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만약 큰 폭의 변화가 이뤄진다면 관전 포인트는 새로운 인사 충원 여부와 더불어, 외국인과 여성 이사 선발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엘리엇의 공세에 대비하며 지난해 11월 이사회 개선안을 발표했다.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 출신 사외이사를 1명 이상 선임하는 것이 골자였으나 뒤이은 국정농단 사건에 이 부회장이 휘말리며 유야무야된 바 있다. 그런 이유로 전격적인 외국인 이사 선발이 이뤄질 가능성에는 시각차이가 있으나, 이사진 세대교체가 큰 폭으로 이뤄지면 외국인 이사가 이름을 올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나아가 지난해 3월 주주총회 후 100% 남성으로 꾸려진 이사회 성별구성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

▲ 김기남 사장. 출처=삼성전자

포스트 미전실 소식 솔솔...삼성, 어려운 길 간다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 방미 기간 동행한 경제인의 면면을 보면 재계 전반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다. 총수 대행인 권 부회장이 이름을 올린 가운데 SK 최태원 회장이 유일하게 오너 일가로 참여했고 LG는 구본준 부회장, 현대자동차는 정의선 부회장이 동행했다. 출소 후 수펙수추구위원회를 중심으로 세대교체를 일찌감치 단행한 최태원 회장을 제외하면 총수 대행인 권 부회장을 비롯해 구 부회장과 정 부회장의 등장은 현재 재계가 일종의 과도기에 있음을 시사한다는 평가다. 구 부회장은 후계자라기보다 일종의 후계 연결고리의 뉘앙스를 풍기지만, 재계 전반이 일종의 변화와 직면했다는 점은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논의를 좁혀 삼성전자에 집중해도 비슷한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권 부회장의 용퇴 후 삼성전자는 당장 리더십 공백 위기를 피할 수 없을 전망이지만, 크게 세가지 카드가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먼저 이사회의 구심점 역할 강화다. 구속된 이 부회장은 등기이사에 오른 직후 이사회가 단순한 상정 안건을 심사하고 통과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소 능동적이고 선명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만약 31일로 예정된 이사회에서 큰 폭의 이사진 변화가 있을 경우 이사회가 더욱 강력한 권한을 갖고 그룹의 콘트롤 타워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계열사 각자경영 기조를 강화해 집단지도체제를 탄탄하게 꾸리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 부회장을 겨냥한 특검의 수사가 시작되었을 무렵부터 흘러나오던 삼성전자 공식적 반응의 연장선이다.

과거 미래전략실 규모의 대조직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미니 콘트롤 타워를 통해 계열사의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도 선택가능한 시나리오라는 말도 나온다. 삼성전자가 운용하고 있는 경영위원회를 보좌하는 각 계열사 지원조직을 따로 구성하는 방안이다. 현대차의 기획조정실과 SK의 그룹 협의체 모델 중 삼성전자의 상황에 맞는 새로운 미니 콘트롤 타워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주장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