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정부의 부동산경기 부양책의 일환으로 나온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시행령에는 아파트 재건축 연한 축소(40년→30년)가 담겼다. 이듬해 이 시행령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우리나라 아파트의 ‘유통기한’은 30년이 됐다.

▲ 출처=이코노믹리뷰 DB

너나없이 연한만 채우면 재건축 사업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연한을 채우면 '경축, 안전등급 D등급 판정'이라는 현수막이 나붙는다. 건물이 노후돼 위험하다는 경고 판정도 ‘경축’할 일이 되는 웃지못할 현실이 도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런 기현상은 노후 아파트 재건축을 통해 새 집을 얻고 세대 수를 늘려 분양하면 여윳돈까지 벌 수 있다는 아파트 소유주들의 속셈 때문이다.

대형 건설사들이 ‘현금 살포’ 등 불법행위를 일삼으며 재건축 수주전을 벌이고 소유주들로 이뤄진 재건축 아파트 사업의 시행주체 재건축 조합도 편법의 온상이 된지 오래다. 이처럼 우리 주택은 선진국에 비해 수명이 아주 짧고 이에 따른 환경오염과 사회적 비용이 크다. 국내 대형건설사인 GS건설에 따르면 현재 지어지는 주택의 설계수명은 약 40~50년으로, 장수명주택 인증은 의무사항이 아니다. 실제 아파트 평균 교체 수명은 26.95년(2005년 기준)에 불과하다.

장수하는 아파트의 비밀 '장수명 주택'

최근 초유의 시공사 선정전이 벌어진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에서 승리를 거머쥔 현대건설은 새로 짓게 되는 아파트를 "100년 가는 '장(長)수명 주택'으로 만들겠다"고 해 화제가 됐다.

장수명주택은 '수명이 긴 주택'이란 뜻의 선진형 주택모델이다. 구조체를 견고하게 지어 콘크리트의 수명만큼 100년 간다해서 ‘100년 주택’이라고도 불린다. 장수명주택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성능이 저하되고 공간변화와 수리가 어려운 기존 공동주택과는 달리 기호에 따라 평면구조 변경이나 설비배관 교체 등이 자유롭고 유지보수가 용이하다.

현행 주택 제21조의6에서 규정한 장수명주택은 내구성, 가변성, 수리 용이성에 대해 장수명 주택의 성능등급 인증기관의 장이 성능을 확인·인증한 주택을 말한다. 특히 100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에 적용한다.

철근의 피복 두께와 콘크리트 품질부터 오래갈 수 있도록 설계하고, 건축물의 구조적인 안정성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내부 구조에 변화를 줄 수 있고 수리도 용이하게 해서 실제로 주택수명을 늘리는 방식으로 지어진다.

▲ 출처=LH

세대 내부의 모든 벽체가 경량벽체로 시공되고 구조체에 배관이나 배선이 매립되어 있지 않아 유지보수 비용이 절감된다. 바닥에 배관시설이 설치돼 화장실 배관 누수로 이웃세대간 갈등이 발생하는 일반 공동주택과 달리 장수명주택은 벽에 배관시설이 들어가 내 집에서 바로 배관 수리가 가능하다.

현대건설 건축구조설계팀 최문호 과장은 "장수명 주택이 되려면 평면 가변성, 골조 내구성, 설비 수리 용이성 등의 3가지 기본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1000세대 이상 주택의 경우 강제조항은 아니지만 장수명주택 인증 4등급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고,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공사에서 현대건설은 자재 등 골조 내구성에서 법에서 요구하는 최고등급을 받을 예정이다. 앞으로도 이같은 중요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장수명주택이 확대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러가지 이점들에도 불구하고 장수명주택의 경우 공사비 등 초기사업비 부담은 큰 편이다. 최근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려는 정부도 인센티브 등을 도입해 장수명주택을 활성화 하자는 분위기다. 실제로 국토교통부에서 R&D 사업 핵심분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공동추진하는 사업이기도 하다.

이들은 공동으로 비용절감형 장수명주택 모델을 개발해 LH가 직접 시공하는 국내 최초의 실증사업 모델을 내놓을 계획이다. 세종 행복도시 2-1생활권 M3블록(10년 공공임대주택) 전체 14개동(1080세대) 중 2개동(116세대)은 비용절감형 장수명주택 실증사업으로 지어지며 2019년 6월경 완공 예정이다.

‘뼈대 그대로 고쳐쓰자’ 리모델링 아파트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시장 규제 일명 ‘8.2대책’이 ‘정조준’한 곳은 그간 시장의 시세를 이끌던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단지들이었다.

내년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재시행하고, 서울 전역 등 전국 29개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아파트 거래시 조합원 지위 승계 불가, 투기과열지구 내 3억원 이상 거래에 대해서 자금 출처 및 입주계획 신고 의무화한 것 등이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다.

시장에서 재건축 아파트 거래가 끊기고 재건축 투기수요가 자취를 감추면서 노후 아파트 주민들사이에서는 실거주를 위한 리모델링 사업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1977년 10월 입주한 서울 여의도 목화아파트는 과거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다가 리모델링 사업으로 선회한 후 다시 인근 다른 한강변 단지들과의 통합 재건축 사업을 시도하는 등 오락가락 혼란을 겪었다. 목화아파트 주민 박기림(가명) 씨는 “층별 엘리베이터도 없어 유모차나 노인이 다니기가 불편할 정도의 노후 아파트다. 요즘은 재건축 아파트 전매제한도 있고 기부채납 등으로 인해 재건축 사업 수익도 예전만 못하다고 들었다. 리모델링 사업이라도 빨리 진행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8.2대책 이후 이 같은 분위기가 여의도와 강남, 1기 신도시 노후 아파트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그리고 수직증축을 통해 리모델링 사업도 사업성을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먼저 재건축 사업과는 달리 리모델링은 용적률 제한이 없다. 재건축시 용적률은 최대 300%까지 가능하지만 전체 면적의 10~15% 정도를 지자체에 임대주택 건설과 공공기여 등을 통해 기부채납해야 한다. 때문에 기존 아파트가 저층이 아니라 용적률이 높으면 수익성이 떨어진다. 때문에 용적률이 180% 이하면 재건축, 200% 이상인 경우엔 리모델링이 유리하다.

리모델링 사업은 수직 증축해 가구수를 15% 늘릴 수 있고 전용면적도 늘어 이후 일반분양을 통한 조합 수익에도 도움이 되고 면적 확대로 집값이 상승하는 이점도 있다. 리모델링은 기존 주택 수에서 최대 15% 3개층(14층 이하 2개층)을 늘릴 수 있다. 공사 가능 연한도 재건축 사업이 30년인데 비해 리모델링 사업은 15년이면 가능하다. 조합원 지위양도가 가능하고 물론 내년 초 부활하는 초과이익환수제 적용도 받지 않는다.

비용과 시간이 절감되면서도 새 주택에 가까운 집을 얻을 수 있고, 나날이 중요하게 고려되는 환경 문제도 고려했을 때 앞으로는 더욱 각광을 받을 전망이다. 매년 쏟아지는 재건축 대상 물량만 최고 19만 가구에 이르고, 재건축을 할 때 공기오염과 에너지 사용 그 외에 아파트 재건축 시 콘크리트, 골재 등 건설폐기물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가구 간 내력벽을 허무는 방식의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2019년 3월까지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에 앞서 국토부는 리모델링 사업 활성화를 위해 내력벽 철거를 일부 허용키로 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가 이를 제외한 것이다.

내력벽이 존재하는 한 리모델링 사업시 평면 설계 등에 제한을 받게 된다. 차정윤 한국리모델링협회 부회장은 “국내에서는 아직 선호도가 낮은 편이지만 전면 철거를 하는 재건축보다 리모델링 사업이 사회적 낭비가 적고 여러 면에서 바람직하다. 다만 구조안전진단 등 기술적 문제와 행정적 절차가 상충한다. 선진국의 기준과 사례를 참고해 보더라도 내력벽 철거 등은 안전문제 없이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 가장 많은 리모델링 수주실적을 가진 쌍용건설의 관계자는 “현재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이 필요한 이유는 주로 배관이나 배선 문제다. 콘크리트의 수명은 100년이나 콘크리트 내부에 매립된 배관·배선 등이 노후된 것이 불편을 가져오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조합 입장에서는 공사기간도 1년반 정도로 짧고 비용도 20~30% 저렴하지만 시공사 입장에서는 아파트 골조를 그대로 두고 지하주차장 등을 만드는 작업 등 공사 자체의 난이도가 높고 수익이 적다. 다만 앞으로는 리모델링 사업이 더욱 주목받을 것이라고 보고 실적을 쌓는데 주력한다”고 설명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수도권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는 45곳, 2만여가구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