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사장님부터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겪은 고시원 동료까지. 다양한 직업과 폭넓은 나이대의 여자들에게 무작위로, 예의 없이 물어봤다. 여자에게 먹히는 시계는 뭐냐고. 자, 이제부터 하는 얘기에 놀라지 말자. 시계에 대한 여자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당신의 시계가 어떤 역사를 갖고 있으며, 무브먼트가 얼마나 복잡한지, 누가 찼던 시계인지에 대한 여부는 그녀들에게 그다지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무브먼트나 기술에 대한 설명과 편견을 내려놓고 오로지 여성의 시선에서 ‘먹히는 시계’가 무엇인지 마음 편히 구경하시라.

 

1. 까르띠에 발롱 블루 드 까르띠에

▲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발롱 블루 드 까르띠에. 출처=까르띠에

1년 365일 중 65일을 빼고 클럽을 가는 아는 동생이 있다. 그녀는 패션에도 민감하지만 시계도 좋아하는, 앞에 있으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그런 여자다. 이 친구가 선택한 스타일은 십중팔구 다음 시즌에 유행하더라. 그녀에게 여자에게 먹히는 시계가 뭐냐고 묻자,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한 마디를 툭 던졌다. “발롱 블루.” 왜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오빠가 시계 전문가면서 왜 나한테 그걸 물어?'라고 말하는 듯한 그녀의 눈빛을 보며 나는 아무런 질문도 할 수 없었다. 그래, 발롱 블루니까.

산토스의 역사라든가 파샤가 만들어진 이유, 혹은 어떤 유명 인사들이 탱크를 찼는지는 잠시 접어두자. 특히나 클럽에서도 나이트에서도 쓱 훑어보고 답이 나오는 건 아직까지 발롱 블루 드 까르띠에다. 심지어 까르띠에는 몰라도 발롱 블루는 아는(?) 젊은 여성층도 있다. 그녀들에게 발롱 블루는 시계가 아닌 보석이다. 고상함과 섹시함을 동시에 어필할 수 있는 무기는 이만한 것이 없다.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된다. 최초의 현대식 손목시계는 까르띠에가 만들었다. 브레게, 빌스도르프와 더불어 루이 까르띠에는 3대 시계 천재라고 불리기도 한다. 160년의 역사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2. 샤넬 J12

▲ 섹시한 매력이 넘쳐 흐르는 시계, J12. 출처=샤넬

샤넬이라는 한 단어에서 오는 임팩트는 여자들에게 각별하다. 샤넬 로고가 박혀있으면 립스틱부터 백까지 알 수 없는 마력이 뿜어져 나온다. 특히나 검은 진주를 연상케하는 유광 세라믹으로 만들어진 J12는 10년이 넘도록 최고의 패션 워치의 자리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지인이 소개팅에서 보았던 남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시종일관 그의 센스를 칭찬했는데, 하얀 와이셔츠 안쪽으로 힐끗힐끗 보이는 J12가 그렇게 섹시해보였다는 이야기를 빼놓지 않더라.

코르셋에 갇혀있던 여자들에게 바지를 입힌 분이 바로 코코 샤넬이시다.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모든 것들을 여자들이 더 멋지게 소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던 샤넬이, 이제는 남성들에게 섹시한 여성미를 입히며 매력을 부여하고 있다. 하얀 와이셔츠 안에 보이는 세라믹의 J12라니, 내가 생각해도 그 소개팅남의 센스는 시계 외에도 여성의 마음을 충분히 읽고 있었을 것만 같다.

 

3. 엠포리오 아르마니 AR0673

▲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는 AR0673. 출처=엠포리오 아르마니

20대 청춘들의 모임에서 시계에 관한 재미있는 대화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자신감 넘치는 대학교 학생 임원들의 대화였는데, 자연스러운 대화 속에 시계에 관한 주제가 나왔다. 20대의 모임이니 오토매틱 시계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좋은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가 주였는데, 한 여성분이 앞에 앉은 사람의 손목시계를 보고 남자친구에게 이런 대사를 날렸다. “하긴, 오빠는 아르마니 차는데 이게 눈에 들어오겠어?” 비교당한 시계는 오메가의 씨마스터 300.

자, 20대의 남성분은 주목하자. 여자 친구 앞에서 어깨 펴고 다니고 싶다면 ‘홍독(홍콩 독수리의 줄임말로 아르마니 시계를 조롱하는 별명)’이니 쿼츠니 하는 문제나, 조르지오인지 엠포리오인지의 문제는 일단 잊은 채 고민을 시작해도 좋다. 엠포리오 아르마니는 한국 시계 판매량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봐도 아르마니의 디자인은 비싸 보이고, 예뻐 보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패션 하우스의 디자인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4. 다니엘 웰링턴

▲ 다니엘 웰링턴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디자인으로 여심을 저격한다. 출처=다니엘 웰링턴

예쁜 시계는 가격도 브랜드도 초월한다는 것을 지난 한 해 다니엘 웰링턴이 여실히 보여줬다. 20만원대면 충분히 살 수 있는 이 시계는 시계가 필요한 대부분의 대학생들의 손목부터 시계에 관심 없었던 여자들의 손목까지 차지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올여름 지하철에서 아주 인상 깊은 구경을 할 수 있었다. 한 여성분이 앉은 자리에서 다니엘 웰링턴 시계의 가죽 스트랩을 나토 밴드로 교체하는 모습이었다. (다니엘 웰링턴은 실제로 줄질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휴대용 시계 공구를 함께 준다.) 시계를 좋아하는 남자들의 세계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자가(自家) 줄질’을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 능숙하게 해내는 여성분의 모습을 보며 다니엘 웰링턴이 바꿔놓은 생태계가 어떤 것인지 가늠해볼 수 있었다.

물론, 남자 손목 위에 올라간 다니엘 웰링턴도 마찬가지다. 남자가 볼 때는 남자 손목 위의 다니엘 웰링턴이 왠지 심심하거나 너무 얇고 가볍다고 느껴져 묵직한 오토매틱의 감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로지 시간을 정확하게 보기 위한 기능만을 갖춘 다니엘 웰링턴의 심플한 외관은 여자가 보기엔 그렇게 깔끔해 보인다더라. 실제로 예거 르쿨트르의 마스터 컨트롤 모델을 착용한 지인에게 여성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어머, 다니엘 웰링턴처럼 깔끔하게 생겼네요.” 아마도 그건 예거 르쿨트르가 아니라 파텍필립의 칼라트라바였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5. 롤렉스 데이트저스트

▲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완벽한 데이트저스트. 출처=롤렉스

불과 몇 주 전, 시계를 좋아하는 분들과 그분들의 동반자(아내, 애인, 여사친이 모두 포함되었으니 부르기 쉽게 동반자라 하겠다)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여성분들은 본인의 동반자가 시계 마니아라는 사실에 별생각이 없거나 싫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여기서 나온 주제는 롤렉스. 시계 마니아들에게는 교과서와 같은 진리의 롤렉스지만 여성분들은 롤렉스가 예쁘다는 생각을 한 적은 딱히 없단다. 하지만 자리에 계신 분이 차고 나온 롤렉스 데이트저스트 116234 로듐로만을 보며 모두의 의견이 일치했다.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시계로서의 완벽함이냐, 디자인으로서의 완벽함이냐는 시계 마니아들의 고민이지만 최소한 롤렉스를 찬다면 그 모델이 어떤 모델인지는 몰라도 “비싼 시계 차셨네요.”라는 이야기는 지겹게 들을 것이다.

사실 불가리나 루이비통은 꼭 들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자들의 시계 트렌드도 많이 바뀌었나 보다. 물론 1000명 이상의 여자들에게 물어본 만큼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꽤 많은 여자들에게 물어보았다.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여전히 시계의 메커니즘적인 부분이나 역사의 상징성보다는 시계를 차는 사람과 시계와의 조화, 그리고 디자인이나 브랜드 인지도를 더 많이 생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그 누구도 비판을 할 수 없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고, 당신 또한 여자친구가 든 버킨백이 몇 년의 웨이팅 끝에 산 것이고 얼마나 좋은 가죽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테니.

 

▶ 지구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계 집결지 [타임피스 서울투베이징 홈페이지]

▶ 타임피스 서울투베이징  공식 포스트 [타임피스 서울투베이징 N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