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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민의 AI시대 인문학적 사고 ⑨] 나태한 두뇌를 극복하기 위한 첫걸음, 행동유도성

안성민 한국생산성본부 전문위원, <생계형 인문학> 저자 sumahn@kpc.or.kr

기사승인 2017.10.12  08: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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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뇌는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적응하고, 변화한다. 이러한 변화는 시대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바뀌었을 텐데, 그렇다면 지금 시대의 우리의 뇌는 어떠한 상태일까? 적어도 뇌를 엄청나게 고차원적으로 활용해야 하거나 매우 많은 기억력을 요구하는 상태는 아니라고 보인다. 과거에는 뇌가 해야 했던 일들을 지금은 여러 가지 스마트 디바이스들이 대신 해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뇌는 과거보다 덜 활용되고 있고 그렇기에 조금은 나태한 상태로 있기 때문에 쉽게 속고, 자신도 모르게 현실을 왜곡하는 등의 오류를 종종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마라톤을 해본 사람들은 모두 ‘마라톤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단지 자신의 체력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흔히 ‘정신력’이라고 말하는 ‘지각’과의 싸움이 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오래 달리기를 해보면 첫 출발의 1㎞보다 마지막의 1㎞가 엄청나게 길게 느껴진다’ ‘똑같은 폭의 길을 걷더라도 높은 곳에서 걸으면 길의 폭이 더 좁게 느껴지고, 또한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등의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이는 우리의 뇌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왜곡된 지각’이라는 특성 때문인데,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지금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인지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세상을 살아가더라도 각자가 다르게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다름은 뇌를 나태하게 쓸수록 더 크고 넓게 나타난다.

 

행동유도성이란

행동유도성(Affordance)이란 ‘어떤 형태나 이미지가 행위를 유도하는 힘’ 또는 ‘대상의 어떤 속성이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거나 특정 행동을 쉽게 하게 하는 성질’을 말한다. 어떠한 물건과 사람 사이의 특정한 경험이나 관계에 따라 즉각적으로 반응하도록 하는 연계성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행동유도성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생활과 삶에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

쉬운 예를 들면 무거운 가방을 매고 산을 오르면 같은 언덕이더라도 더 가파르게 인식하고, 같은 거리에 있는 물건들 중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이 더 잘 인식되고 가까워 보이는 것들이 아주 소소한 행동유도성에 따른 반응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유도성은 우리의 생존이나 본능과도 매우 연관이 있다. 남성의 이성에 대한 선호 연구를 보면 배가 고플 때는 덩치가 큰 여성을 선호하지만, 배가 부른 경우에는 날씬한 여성을 선호한다고 한다. 이는 인류가 곤궁기를 겪으며 진화하면서 건강한 여성이 종족번식에 더 유리했기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다. 지금도 가난한 지역의 경우 일반적으로 몸집이 큰 편이 이상적인 여성상인 것을 보면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다. 또한 우리는 위험을 느끼는 물건이 더 가까이에 있고, 더 큰 의미로 받아들인다. 이 역시도 생존과 관련된 행동유도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태한 두뇌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행동유도성은 개인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즉 행동유도성을 유도하도록 설계된 어떠한 물건이 있더라도 누군가는 제작자의 의도에 맞게 무의식적인 사용을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만의 생각을 담아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해보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두 사람 중 누가 좋은 사람인지 또는 나쁜 사람인지는 구분할 수 없더라도, 누군가가 두뇌를 더 많이 쓰고 있는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행동유도성에만 너무 의존하는 사람은 어떻게 보면 두뇌를 ‘나태하게’ 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나태함 역시도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의 본능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일정한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는 우리 몸과 뇌는 가능하면 에너지를 최소화하도록 알고리즘이 만들어져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가능한 익숙한 것을 찾아가 변화를 최소화하려는 경향을 누구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지 고민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것은 바로 ‘인지되는 정보’가 생겼을 때다. 정보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비교와 분석을 거쳐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 매번 정보를 부여하고 사고하는 방식은 실생활에서 활용하기가 어려우니, 그 대신 활용하는 방법이 환경을 변화하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환경을 정보라고 여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대형마트에서 진열대의 양 끝이나 계산대 앞에 있는 물건들을 충동구매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 제품을 구입하는 것은 제품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제품이 놓인 환경이 우리로 하여금 구매행동을 하도록 유도했기 때문인 것이다. 즉 환경의 변화는 우리의 행동을 올바르게 유도할 수 있고, 반대로 올바르지 않은 행동은 억제할 수 있는 충분한 활동이다. 본능적으로 나태한 두뇌를 이기려면 환경에 대한 분석을 통해 변화방향을 모색해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한번 주위를 둘러보라, 평소와는 달리 5분 정도만 시간을 투자해 주변을 둘러보자. 그리고는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물건들이나 행동들이 과연 필요한 것들인지 또는 합리적인 것인지 스스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평소에 하는 사고와 행동은 현재의 상황에 적절하게 맞춰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그 적절함이라는 결과는 나태한 두뇌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은 자신의 두뇌에 대해 의심을 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인공지능이 자신의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앞으로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을 넘어 앞으로의 행동을 유도한다. 즉 우리의 사고와 행동이 자신의 의도가 아니라 AI에 의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AI에 의해 조종당하고 이러한 경험이 계속될수록 우리의 뇌는 더욱 나태해질 가능성이 높다.

조금은 심각하게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얼마나 자주 AI가 의도하는 행동유도성에 속아 넘어가고 있는가?”

<저작권자 © 이코노믹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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