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스타들이나 살 법한 100억원이 넘는 집이 서울에만 8채가 있다. 지난 4월 서울시가 발표한 개별주택 공시가격에 따르면, 서울시에 100억원 이상 주택은 8채, 20억 초과~100억원 이하는 1245채였다.

▲ 서울 한남동 유엔빌리지. 출처=이코노믹리뷰 DB

최고가 주택은 221억원으로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공동 소유의 주택이었다. 100억원 이상의 초고가 주택 중 상위 5채는 모두 이건희 삼성 회장의 소유였다. 이 회장과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보유한 용산구 이태원동 주택이 201억원, 이 회장 부부 소유 이태원동 주택 157억원 순으로 비쌌다. 100억원 이상 주택은 지역별로는 용산구에 6채, 중구와 강남구에 각각 1채씩이었다.

100억원 안팎의 상위 10위 초고가 주택 공시가격의 평균 상승률은 16.3%로 전체 개별주택 상승률(5.18%)의 3.1배에 달했다. 영국의 부동산 컨설팅업체 나이트 프랭크가 각국 도시의 고급 주상복합·아파트만을 조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고가 아파트값 상승률이 전 세계에서 4번째로 높다. 일반 주택이 아닌 고가주택이 서울 집값 상승을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양극화’가 심해진다. 주택 시장에서도 불황을 타지 않는 시장이 바로 초고가 주택, 일명 ‘하이엔드 부동산’ 시장이다. 정부의 혹독한 부동산 규제 정책 아래에서도 한 채에 수십억 혹은 수백억을 호가하는 상위 1%를 위한 최고급 주택은 줄줄이 시장에 나오고 있다.

 

재건축 아파트의 초고가 변신

서울 시내 요지에 위치한 노후 재건축 아파트들이 고급 주택으로 변모하고 있다. 실제로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에 따르면 1973년 준공한 강남 재건축 예정 단지인 반포주공1단지 전용면적 106.26㎡는 지난 8월 26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아직 시공사가 정해지지 않은 이 단지는 사업비만 7조원에 달해 대형 건설사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모두 이 단지를 강남에서도 주목받는 고급 아파트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시공사 입찰에 응한 GS건설은 반포주공 1단지 재건축 단지에 총 5개의 고층 브리지에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와 같은 옥상수영장을 배치하겠다고 해 화제가 됐다. 이에 맞선 현대건설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고급 레지던스 타워인 ‘재스퍼 타워’를 설계한 세계적인 설계회사인 HKS 등 해외 유수한 전문회사들과 연합해 명품 아파트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이로써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5층짜리 2120가구 대규모 단지인 반포주공1단지는 재건축사업을 통해 지하 4층~지상 최고 35층 5388가구의 최고급 아파트로 다시 지어진다.

다른 강남권 재건축 예정단지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84.43㎡은 8.2 대책이 나온 뒤인 9월에도 가격 하락 없이 14억6000만원에 팔렸다. 8.2 대책 이전인 7월에는 15억7000만원에 거래된 바 있다.

대치동 J중개업소 관계자는 “잠실주공5단지가 서울시로부터 50층 재건축을 사실상 허가받음으로써 은마아파트도 49층 재건축 계획안이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면서 “7월까지 활발히 거래되고 호가는 최고치를 찍었지만 8.2 대책 이후 거래가 끊겼다가 다시 투자자 문의가 늘어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회는 최고 49층 고층 아파트 계획안을 고집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8월 도시계획위원회에 상정된 은마아파트 정비계획안에 대해 서울시의 높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등 심의 요건 자체가 불충분하다고 미심의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바로 다음 달인 9월 서울시는 제16차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사업 정비계획변경 및 경관계획안’을 심의한 결과, 보류 판정을 내리고 수권소위원회로 이관했다. 50층 재건축을 계획한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가 서울시 심의를 사실상 통과한 것이다.

계획안에 따르면 잠실주공5단지는 재건축을 거쳐 최고 50층짜리 주상복합·아파트 총 6401가구로 탈바꿈한다. 지하철 2호선 잠실역 주변 아파트 3개 동과 오피스 1개 동 등 4개 동은 50층으로 지어진다.

이 단지는 올해 말을 끝으로 내년 부활하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가 적용될 것으로 보여 재건축사업으로 얻은 이익에 대한 부담금이 가구당 1억~2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조합 측은 재건축 이후 시세는 2배에 가까울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송파구 S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조합원 매물이 회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면서 “대책 이후 소폭 하락했던 호가도 하루 새 최대 3000만원 올랐다. 조합원들은 현재보다 2배 가치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상황이라 1억원 수준의 부담금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실제로 입지가 우수한 지역에 위치한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의 경우 고분양가 논란을 빚을 만큼 시장에서의 가치를 높이 평가받는다. 분양 이후 입주 시까지도 가격은 가파르게 오르고 주변 단지들이 재건축되면 다시 한 번 상승하기도 한다.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는 전용면적 112.96㎡가 27억원(3.3㎡당 7890만원)에 팔리면서 래미안퍼스티지를 꺾고 반포동 최고가 재건축 아파트가 됐다. 같은 달 입주한 강남구 수서동 ‘강남 더샵 포레스트’ 전용면적 208㎡도 지난해 4억원 이상 프리미엄(웃돈)이 붙은 26억5551만원에 거래됐다.

이 지역의 또 다른 중개업소 사장은 “매물이 거의 없다 보니 매도자들이 부르는 게 값”이라며 “6·19 대책으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이 종전보다 강화됐지만 부자들에게는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초고가 분양가로 화제가 된 서울 '한남더힐'. 출처=이코노믹리뷰 DB

 

“12가구가 한 친인척” 커뮤니티 중시

지난해 서울에서 분양한 한 아파트는 3.3㎡당 최고 8150만원의 고분양가로 화제가 됐다. 2015년 10월 부산 해운대구 중동 주상복합단지 ‘엘시티 더샵’의 전용 320.85㎡ 펜트하우스(분양가 3.3㎡당 7002만원)가 세운 최고 분양가 기록을 몇 달 새 경신한 것이다.

주인공은 용산구 한남동 옛 단국대 부지에 들어선 ‘한남 더힐’ 아파트였다. 분양가 상한제를 피해 5년 동안 임대주택으로 운영되던 ‘한남 더힐’은 분양 전환을 하지 않은 일부 세대를 일반분양했다. 3.3㎡당 평균 분양가는 5100만~5200만원대다.

‘한남 더힐’의 시행사 한스자람에 따르면 단지는 지상 3~12층, 32개동, 전용면적 57~244㎡ 600가구로, 전용면적 206㎡(구 74평) 38~39억원 선이며, 전용면적 233㎡(구 85평)은 44~48억원 선에 분양가가 책정됐다. 전용 244㎡ 펜트하우스의 분양가는 80~84억원이다. 다만 기존 입주민들은 다소 할인된 분양가에 매입할 수 있다.

‘한남 더힐’의 임대관리를 맡은 신영 관계자는 “9월 현재까지 600가구 중 약 75%가 분양 전환이나 일반 분양으로 이미 제 주인을 찾았다”며 “입주민 소송 등의 이슈가 아니었다면 이미 모두 팔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남더힐 입주민 일부가 시행사의 분양가 산정에 불만을 나타내며 2015년 12월에 시행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1심에서 기각 판결했다. 최초 소를 제기한 입주민 중에서도 절반가량이 포기한 이후 현재 100여명 정도가 소송을 진행해 100가구 정도가 분양 전환 또는 퇴거 결정, 혹은 항소를 진행해야 한다.

분양 당시에도 고급 주택으로 정재계와 유명 연예인 등이 나란히 입주해 화제가 됐다. 영화배우 안성기, 가수 이승철, 전 검찰총장, 현대, LG, 삼성, 두산 등 대기업 집안 등이 이웃이 됐다. 박용현 두산그룹 회장, 박인원 두산중공업 상무 등 두산그룹 총수 집안은 무려 7가구가 입주했다. 친인척만 12가구가 입주한 집안도 있다.

강명성 신영 M&D 마케팅 부장은 “자산 규모 300억원 이상의 재력가들이 입주한다. 이들은 프라이버시를 중시하고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이루고 투자·사업 정보를 공유하고 사교를 나눈다”고 말했다. 아파트 입주자 모임인 ‘신사회’, ‘숙녀회’와 같은 커뮤니티 모임도 활발히 운영 중이다.

입주민들이 가장 만족하는 것은 교통 요건이었다. 강 부장은 “남산1호 터널만 통과하면 도심 업무지구, 한강을 건너면 곧 강남으로 연결돼 서울 시내에 모두 접근이 쉽다”고 부연했다. ‘한남 더힐’ 단지는 지하철역과 거리가 있는 언덕에 위치해 일반적으로 교통 요건이 좋다고 하는 입지는 아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투자자문 A 씨는 “하이엔드 부동산 소비자들은 일반적으로 선호하는 역세권을 피하려고 한다. ‘비버리힐스’ 등 해외 유명 부촌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유동인구가 많고 북적대는 것을 피해 한적하고 사생활을 보호받을 수 있는 입지를 선호하기 때문이다”라면서 “현재 ‘한남 더힐’ 맞은편에 지어지는 외인아파트 부지의 고급 아파트의 경우 일반적으로는 더 나은 입지라고 여겨질 수 있지만 부자들의 선호에서는 ‘한남 더힐’에 못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한남동 뉴타운이 재개발을 앞두고 3.3㎡당 1억원에 거래가 이뤄지고 있어 향후 이 지역 주택들의 시세는 더 높아질 것이라고 봤다.

 

‘땅집파’ VS ‘하늘집파’

하이엔드 주택 중에서도 단독주택이나 빌라를 선호하는 ‘땅집파’와 고층 마천루 아파트를 좋아하는 ‘하늘집파’가 따로 있다. 재벌 총수들은 전통적으로 단독주택을 지어서 살거나, 세대 수가 적은 고급 빌라를 매입해 살기를 선호했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공동주택인 ‘트라움하우스5차’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강덕수 STX 회장 등이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지난해 국토교통부 공시가격이 가장 높은 공동주택은 서초동 빌라 ‘트라움하우스5차’ 전용 273㎡다. 2015년 61억1200만원이었던 집값이 지난해 63억6000만원으로 올랐다. 실제 시장 호가는 더 높아 트라움하우스5차 전용 273㎡는 100억원대에 달한다.

이어 바로 옆 ‘트라움하우스3차’ 전용 273㎡가 44억4000만원, 강남구 청담동 ‘상지리츠빌카일룸3차 전용 265㎡가 44억800만원으로 뒤를 이었다. 강북 지역에서는 한남동 ‘한남더힐’이 244㎡ 42억1600만원, ‘라테라스한남’ 전용 244㎡가 41억3600만원이었다.

올해는 이 순위에도 변동이 올 것으로 보인다. 초고층 주거용 오피스텔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레지던스’의 등장 때문이다. 최고 분양가가 3.3㎡당 1억3500만원, 평균 8000만원에 분양 중이다.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레지던스’의 시행사 롯데물산 관계자는 “지난 4월 준공 후 분양을 시작해 현재까지 분양성적은 무난한 편이다. 실제로 잔금 완납까지는 6개월이 걸려 등기상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60~70평형대는 모두 분양됐다”고 말했다.

▲ 철거 중인 서울 한남동 외인아파트 부지. 출처=이코노믹리뷰 DB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레지던스’ 오피스텔 223세대는 42~43층의 커뮤니티시설, 68~71층의 복층과 펜트하우스 세대 등으로 구성됐다. 이 관계자는 “초고층 레지던스라는 주거 형태가 젊은 층에게만 어필할 것 같지만 전 연령대에서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도곡동 타워팰리스나 인근 롯데캐슬 골드 주민들 중에서 ‘갈아타기’를 위해서도 많이 온다. 당분간 서울에서 이같이 특별한 주거 상품이 나오긴 어려워 보여 그 희소성도 대만, 홍콩, 일본 등의 해외 계약자에게 높이 평가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신흥 부촌으로 인정받고 떠오르는 곳이 성동구 성수동이다. 성동구 뚝섬 일대에 초고층 아파트들은 최고 분양가 기록을 잇달아 세웠다.

강북권 최고가를 기록한 ‘갤러리아포레’에 이어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속속 모습을 드러내는 중이다. 갤러리아포레 인근에 두산중공업의 ‘서울숲 트리마제’ 688가구가 입주를 시작하면서 미분양을 털고 수천만원의 웃돈까지 붙여 거래되기 시작했다.

대림산업이 성수동 뚝섬 지구단위계획 특별계획 3구역에 짓는 ‘아크로 서울포레스트’도 지상 49층, 전용면적 91~273㎡ 280가구 규모로 아파트 2개 동과 오피스인 ‘디타워’, 미술관·공연장을 갖춘 아트센터, 상업시설인 ‘리플레이스’로 이뤄졌다. 8.2 대책이 발표된 주에 진행된 분양 성적도 무난하게 나왔다.

고급주택 홍보전문업체 골든스코어미디어의 박상현 대표는 “제주도 중문에서 31억~58억원대의 화장실만 최대 10개 딸린 고급 타운하우스가 곧 분양한다. 경기가 좋지는 않지만 부유층의 경우 부동산을 구입할 때 투자를 넘어선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하이엔드 주택 시장은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가 작용하는 시장”이라고 부연했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도 “시장에 수요층은 충분하고, 실제로 이들의 ‘니즈’를 충족해줄 고급주택의 공급이 부족할 정도다. 전체적인 부동산 시장과는 별개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