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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4차산업혁명, '약소국의 생존전략' 으로 대응해야"

김창경 한양대 교수(전 교육과학기술부 차관) 인터뷰

천영준 농업ICT 전문위원 겸 에디터/공학박사 taisama@econovill.com

기사승인 2017.08.23  08:2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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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혁명을 논하는 이들은 많지만, 실제 한국의 주소를 진단하고 변화 과제를 제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김창경 한양대학교 신소재공학부 교수(전 교육과학기술부 차관, 전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는 "우리에게 남아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장밋빛 미래는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권위적인 문화, 규제, 과학기술계의 느슨한 태도로 인해 4차산업혁명을 주도할 수 있는 가능성은 상당히 줄어든 상태라고 진단했다. 또 김창경 교수는 "더 이상 새로운 요소기술을 개발할 생각을 하지 말고, 약소국의 전략처럼 플랫폼에 접근하여 생존 수단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현실적으로 조언했다. 김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대표 정책인 ‘창조경제’ 개념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창조경제는 원래 작은 사업자도 자기만의 아이디어로 생존 수단을 확보할 수 있는 아이디어 기반 경제이지만, 박근혜 정부가 ICT에 치중한 승자독식 경제로 전락시킨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창경 교수를 22일 한양대학교 연구실에서 만났다.

   
▲ 김창경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촬영=이코노믹리뷰)

'한국이 4차산업혁명 하기 정말 어려운 나라'라는 지적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장 주된 요인이 뭘까요?
“가장 치명적인 것은 문화입니다. 한국은 갑질이 횡행하는 사회 아닙니까. 군부의 최고 간부에서부터 제약회사, 청년 창업 기반의 야채가게, 곳곳에서 갑질 문화가 팽배해 있습니다. 젊은이들도 갑질에 젖어 있어요. 대학 신입생 환영회 때 머리를 박는다든지 하는 폭력적 문화 풍토에서 창의성이 살아날 리 없습니다. 창의적인 인재들이 모여야 4차 산업혁명을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나타나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 다음으로 4차산업혁명에 치명적인 방해요인은 규제입니다. 한국은 ‘뭐든 안 된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농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형 영농, 스마트팜, 6차산업 같은 것들을 전개하는 과정에 여전히 법률적 난제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문제라는 것이죠.”

한국의 4차 산업 혁명을 이끌고 나갈 만한 기업은 있습니까?

“없습니다. 삼성, LG, 주요 통신사들 모두 4차 산업혁명을 거론할 자격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권위주의 문화가 뿌리깊게 자리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정권 때 모 자동차회사의 신차 론칭 쇼를 가 봤습니다. 당시 총리 이하 공무원들이 도열해 박수를 치고, 오너 일가 경영자가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묘한 구조였습니다. 이런 문화에서 무슨 혁신적인 신상품을 내놓을 수 있나요? 전문가는 홀대하고 관료주의만 살아 있는 대기업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4차 산업 혁명은 한 분야에 깊이 있는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찾고, 그들을 제대로 보상하기 위한 기준을 설계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봅니다. 이른바 지식 획득 시스템이거든요. 그런데 한국 대기업들은 그런 걸 할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습니다.”

4차산업혁명 트렌드에서 제일 중요한 기술이 뭘까요?

“빅 데이터죠. 그런데 한국의 경우에는 기업들이 대부분 의미 없는 데이터를 막대한 양으로 모으는 데 혈안이 돼 있습니다. 데이터를 모아서 뭘 하려고 하느냐, ‘플랫폼’(platform)을 만든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구글이나 페이스북에 비해 플랫폼 경쟁력이 뒤쳐집니다. 이미 그들이 표준을 형성해 버려서 우리가 추가로 뭘 만든다 하더라도 매력이 없어요. 지난 정권 때 누가 한국형 유튜브를 만들어서 강남 스타일 같은 콘텐츠를 올려 놓고 인기를 끌기 위한 사업을 정책화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세계 이용자를 유입시키기엔 역부족인 플랫폼 구상이죠. 다만 사업자들이 자기에게 의미 있는 데이터를 모아서 비즈니스를 올바로 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플랫폼에 올라 탈 수 있는 계기가 형성되거든요.”

얼마 전 국회 강연에서 유전자 가위 분야 관련 내용도 인상 깊었습니다. 최근에 농촌진흥청이 시민단체의 요구로 GMO(유전자변형작물) 관련 사업단을 없애 버렸는데, 앞으로 우리나라가 이 분야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유전자 가위 기술은 매우 싸고, 쉽고, 생물학이 아닌 다른 분야 실험실에서도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2016년 다보스 포럼에서도 BT(생명공학) 분야는 4차 산업혁명으로 가장 활성화시키기 좋은 것으로 지적됐습니다. 사실 한국 입장에서도 접근하기 용이한 분야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순수 IT 분야에서 페이스북이나 구글 같은 대형 플랫폼을 만들어 내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왜냐 하면 이미 사업 기회가 다 노출됐고, 이미 누군가의 영토가 공고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명공학 분야의 경우는 다릅니다. 지금 200살 까지 살 수도 있는 기술이 계속 연구되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 규제가 문제인 것이죠. 일단 사회 내 이해관계자가 활발하게 토론하고, 국회나 정부는 규제 형성과 철폐를 합리화해줄 수 있는 ‘라운드테이블’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사실 GMO보다 훨씬 진일보한 기술입니다. 일단 남의 유전자가 생체에 주입되는 게 아니니까 위험 부담이 덜 하거든요. 한국 사회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유전자 가위 관련 연구들에 대해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4차산업혁명을 논하며 과학기술계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긴 흐름을 보고 지원해 달라는 주장이 기초과학자들 사이에 계속 나오고 있는데요. 역대 정권마다 목표를 바꾸다 보니 장기 계획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 동안 연구개발 행정이 지나치게 시류 영합적으로 운영돼 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다른 측면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장기’라는 표현 속에 ‘과학기술계를 편하게 10년 내버려 둬 달라’는 실제 의도를 숨겨 두고 이야기하고 다니는 과학기술계 인사들도 정말 많다는 겁니다. 그들은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식의 팔길이 원칙은 철저한 성과 평가와 가치 있는 기술 개발이라는 측면이 전제될 때에만 가능 한 것입니다. 장기 지원을 이야기하며 독일의 프라운호퍼, 막스 플랑크, 미국의 국립보건원(NIH) 같은 기관 사례를 예로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기관 종사자들에게 이야기를 들어 보면 정말 가치 있는 연구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압박이 엄청나다는 겁니다. 1억짜리 과제를 하려고 해도 수많은 제안서를 써야 하는데, 우리나라 이공계 연구자들 중에 1억짜리 과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4차산업혁명에 저해되는 과학기술 체제가 이런 부분입니다.”

   
▲ 김창경 교수가 최근 강의한 EBS 초청강연 시리즈(제공=김창경 교수)

해외에서는 기초과학자들이 매우 부지런히 일한다고도 하는데요. 제대로 일한 것에 대한 보상도 명확히 해 주는 편일 테고요.

“맞습니다. 사실 한국에도 그런 학자들이 꽤 있습니다. 문제는 몇몇 사람들이 물을 흐리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논문도 많고 특허도 많이 배출됐지만 실제 내용을 뜯어 보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치는 눈을 씻어도 찾아 볼 수 없는 연구들이 정말 많습니다. 지금까지 10년간 R&D 예산을 100조 가까이 썼는데 과학기술계에서 국제적으로 괄목할만한 성과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 수준에 도저히 장기개발하기 어려운 주제인데 애써서 사업단을 만들고, 중형 연구 과제를 만드는 일도 빈번합니다. 차라리 그 기술들은 해외의 선진 연구 사례를 참조하고, 한국 과학기술계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는 요소만 집중 연구하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국가가 무작정 돈만 풀지 말고 과학자들이 효율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줘야 합니다.”

해외에서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 기초 과학 연구에도 많이 적용되는 모양인데요.

“하버드 대의 제시카 메가(Jessica Mega) 같은 사람이 구글, 애플 등으로 적극 영입돼서 인공지능,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간의 몸을 분석하는 엄청난 과제들을 하고 있습니다. 해외 기업들은 수많은 데이터를 처리할 만한 인프라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매우 빠르게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기초과학 연구 역시 속도전이 될 것입니다. 정말 소수의 창의적 연구자만 남고, 형식적으로 실적을 생산해 왔던 연구자들은 도태될 것입니다. 일반적인 연구 질문은 굳이 사람이 답하지 않고 기계가 실험해도 무리가 없는 수준이 될 겁니다. 이미 글로벌 제약사들은 로봇을 신약 분석에 투입합니다. IBM, 도요타에서는 인공지능이 신소재를 만듭니다. 이제는 빠른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빅데이터가 합쳐지지 않으면 과학으로 세계적 경쟁을 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과학기술계도 이 현실을 모른 척 하면 안 됩니다.”

정말 우리에게 남은 기회가 있을까요?

“일단 조선, 자동차와 같은 중후장대형 산업들이 쇠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산업 모두 중국이 저가 개발로 치고 들어 옵니다. 최근 한국 조선사들이 프랑스 컨테이너선 수주를 빼앗겼다는 소식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완성품을 만들어 내는 중후장대형 산업, 제조업은 계속 가격 경쟁에 시달리게 될 겁니다. 이제는 어디서 생존 수단을 확보해야 할까, 저는 부품 산업이라고 봅니다. 경쟁력 있는 플랫폼 기업에 접근해서 먹고 살 수 있는 비법이 부품 산업에 있습니다. 이제 과학 연구는 부품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삼성이 반도체에 계속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같은 원인에 기초한 것입니다.”

   
▲ 2011년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이었던 김창경 교수가 IAEA 총회에서 한국 대표로 발언하고 있다(제공=김창경 교수).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외교안보정책처럼 ‘약소국의 전략’을 쓰자는 이야기로도 들립니다.

“맞습니다. 지금 대국(大國)들이 플랫폼까지 점령한 상황이거든요. 이미 산업과 기술의 질서가 정해진 상태에서 대안적인 형태의 플랫폼을 만들기란 쉽지 않습니다. 경쟁력 있는 부품, 응용 가능성이 높은 상품을 만들어서 플랫폼 기업에게 납품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의 모든 기술이 보편화되는 국면에서는 ‘가성비’ 경쟁이 심해 집니다. 해외의 경우에는 아마존, 한국의 경우에는 티몬, 홈쇼핑 같은 것들이 가격 경쟁을 촉발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들에게 자꾸 신기술 개발하라고 하면 안 됩니다. 플랫폼에 접근해서 살아갈 수 있는 수단을 개발하라고 촉구해야 합니다. 우리 정치권도 빨리 이것을 알아차려야 하는데, 걱정이 많습니다.”

정치권에서 일해볼 생각은 없었습니까. 실제로 러브콜이 많았던 걸로 아는데요.

“이전투구에 끼어들기 싫었고, 창조경제와 같이 도입 목적과 달리 실행 차원에서 본질을 도외시한 슬로건들을 자꾸 만들어 내기 싫었습니다. 강의와 연구가 내 소관이라고 생각했던 측면도 있습니다. 정치권이 입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환경을 장악하는 데에 매우 유용한 인프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렇지만 한국 과학기술계의 문제, 4차산업혁명에 뒤쳐진 현실 등은 굳이 정치를 통해서만 풀어야 하는 현안은 아닙니다.”

‘창조경제’ 이야기가 나오니 궁금해 집니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실패한 원인이 뭘까요.

“제가 MB 정부 때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과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을 지내면서 창조경제 개념에 대해 많이 고민했고, 과학창의재단 발족에도 기여했습니다. 또 당시 정부가 ‘1인 창조 기업’ 등 창조경제 관련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교육 인프라도 만들었습니다. 미국에서는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 교육을 강조하는데 저는 예술(Art)까지 집어넣어 ‘STEAM’ 교육이라는 개념을 정책으로 입안했습니다. 그 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할 때 미래창조과학부의 구성에도 아이디어를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기획안을 실현하는 사람들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더군요. ICT에만 치중해서 ‘승자독식형 시스템’을 만들어 버렸어요. 창조경제는 원래 시골에서 작은 장사를 하더라도 독보적인 아이디어로 생존수단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이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바탕으로 17개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지원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었죠. 대기업이 자신들의 기반을 쓸어버릴 수도 있는 단초를 왜 제공하겠습니까.”

그럼에도 4차산업혁명 트렌드를 살펴 보면 창업은 중요해 보입니다. 학자로서 앞으로의 생태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일단 대기업들이 수 차례 흥망성쇠를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업(業)의 영역이 쪼개어 지는 ‘언번들링’(Unbundling) 현상이 일어날 겁니다. 그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국면에서 자연히 스타트업들이 살아갈 공간이 마련되겠죠. 대기업은 절대로 순수한 의도로 스타트업을 도와주지 않습니다. 기술 획득이 되었든, 새로운 고객 기반 확보가 되었든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협력 대상을 찾는 게 대기업입니다. 그런데 이런 대기업들도 점점 노후화되면서 혁신 인프라가 훼손됩니다. 그리고 성공의 단초를 놓았던 멤버들이 떠나면서 인적자원시스템이 변질됩니다. 이 과정에서 유능한 몇몇 사람들이 이끌어 가는 창업 생태계를 조망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보입니다. 한국이 플랫폼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분야들이 없는지 적극 살펴 보기도 해야 합니다. 국제적 경쟁력이 있는 한국 아이돌들이 그냥 나온 게 아닙니다. 10년 이상 기획사에서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훈련받고, 정제된 인물들이 아이돌로 등극한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고 보면 SM이나 JYP 같은 연예기획사들은 매우 훌륭한 플랫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한국 시장의 새로운 기회를 열어가는 데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김창경 교수는

1959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MIT 재료공학과에서 금속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7년 한국 귀국 후 한양대학교 신소재공학부 교수를 지내며 재료공학 분야의 연구과제 기획 및 제도 개혁 관련 자문을 해 왔다. 산업기술연구회 이사,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이사 등을 지냈고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을 지냈다.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창립에 기여하며 과학과 경영, 정책의 융합을 선도하고 있다.

약력

1997-현재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신소재공학부 교수, 과학기술정책학과 교수.

2010-2012 교육과학기술부 제2차관

2008-2009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 과학기술비서관

2009-2010 산업기술연구회 이사

1984-1991 미국 MIT 재료공학 박사

1978-1982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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