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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에게 길을 묻다] "해운·조선산업 위기 돌파, 대통령 직속 태스크포스 만들고 적극 관리를"

해운, 조선업계 1세대 원로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 인터뷰

천영준 농업ICT 전문위원 겸 에디터/공학박사 taisama@econovill.com

기사승인 2017.08.22  14: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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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 파산 이후 우리나라 해운, 조선업은 긴 수렁으로 빠져들어 헤어나올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진해운이 관장하던 유럽, 북미, 중동, 동남아 항로는 전부 외국 선사들에게 넘어갔다.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은 “버스 회사들이 종로와 동대문을 관통하는 인기 있는 노선을 장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그보다 훨씬 규모가 큰 시장을 포기해 버린 일”이라고 평했다.

한진해운이 해운동맹(얼라이언스)을 통해 유치하던 환적물량도 공중분해 됐다. 자연히 국내 제조기업들은 높은 물류비용을 감당할 수밖에 없게 됐고, 유럽, 남미 등으로 수출해야 하는 물건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매달 1억이 넘는 추가비용을 감당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정부의 해운, 조선산업 대책은 “피부에 와 닿는 묘수가 없다”고 평가되는 상황이다.

중소 조선사의 자금 조달을 지원하고 조선사가 위기에 닥쳤을 때 효과적으로 금융 지원을 하기 위한 ‘해양진흥공사’(선박금융공사)도 자칫하다가는 ‘뜬구름 잡기’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한국 조선업계 1세대 경영자인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을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가 50년대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린 조선업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치열한 경쟁 환경 속에서 한국 해운, 조선 산업이 개선해야 할 ‘적폐’들에 대해 들어 봤다.

   
 

한국 해운, 조선산업이 계속 표류하고 있다는 걱정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제조업 회사들은 비싼 돈을 들여 해외 선사를 이용해야 하는 불편함을 겪고 있습니다.

“한국 제조업이 해운에 의존하는 비중이 몇 퍼센트인 줄 압니까? 99.7%(2016년 기준)입니다. 70~80%도 아니고 99.7%씩이나 의존하고 있으면서 조그마한 건설업체 정리하듯이 한진해운을 파산 시켰습니다. 자연히 그 대가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 관계자들이 해운, 조선 산업을 깊이 있게 공부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한국 회사들이 얼마 전에 프랑스에서 발주된 초대형 컨테이너선 수주 경쟁에도 실패했는데요.

“삼성, 현대(중공업) 관계자들에게 꾸준히 대비하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할아버지가 그냥 노파심에 그러나 보다’하고 주의 깊게 듣지 않았어요. 두 회사는 세계에서 제일 큰 조선소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입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히 프랑스가 자기네 회사를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자만이 있었던 것이죠. 중국 회사들이 무섭게 커 온 배경에는 가격경쟁력과 중국 정부의 과감한 금융 정책이 있습니다. 프랑스 CMA-CGM 사가 이번에 발주한 컨테이너선은 최초로 이중연료 기술을 탑재한 선박입니다. 1조 대의 매출 기회라는 것 이상의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계약을 놓쳐버렸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나라 해운, 조선업계 관계자들은 반성을 해야 합니다.”

한국 해운, 조선 산업이 이렇게 어려워진 원인이 뭘까요. 정부의 책임일까요?

“선사들에도 책임이 큽니다. 일본에서는 2018년 닛폰유센(NYK)과 미츠이 OSK 라인스(MOL), 가와사키 기선(K-라인)이라는 3대 해운사들의 합병으로 새 판도가 짜여집니다(이미 올 7월 통합 법인이 탄생했다). 이 회사들이 3000억엔(한화 3조 3천억 원) 규모의 공동 출자로 내년 4월부터 컨테이너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면 세계 5위의 업체가 됩니다. 이 회사 이름이 뭔 줄 아십니까? ‘원’(ONE : Ocean Network Express의 약자)입니다. 우리 말로 ‘하나’라는 뜻입니다. 한국 해운, 조선회사들 서로 만나게 하는 게 우리 정상(頂上)이 김정은 만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그게 가능했단 말입니다. 그리고 강한 목표 의식이 있다 보니 회사까지 합병할 정도란 말입니다. 한국 해운, 조선산업에는 함께 시장의 파이를 키워 나가기 위한 노력이 부족합니다. 서로 물어뜯기에도 바쁜데요.”

서로 협력하면서 경쟁하는 ‘코퍼티션’(Coopetition)이 부족하다는 지적으로 들립니다. 해운, 조선 산업의 적폐가 심각하다고 보아야 할까요?

“요즘 SBS 드라마 ‘조작’이라는 미니시리즈를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그걸 보면서 우리 사회에 정말 숨겨진 부패와 과제들이 많구나 하는 것을 이 나이에 다시금 실감하게 됩니다. 그런데 개혁은 그런 젊은 저널리스트나 식견 있는 정치가만 하는 게 아닙니다. 일본 해운사들은 서로 합병하면서 ‘원’(ONE)의 수장으로 2012년부터 최근까지 가와사키 기선 여객선부문 대표를 역임했고 머스크(Maersk), 피엔오로이드(P&O Nedlloyd)의 임원 경력을 갖고  있는 글로벌 경영자인 영국인 제레미 닉슨(Jeremy Nixon) 을 임명했습니다. 일본 해운, 조선산업은 에도 막부 또는 도쿠가와 막부(1603~1867) 때부터 시작하여 매우 보수적인 풍토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외국인을 수장 자리에 앉히는 개혁적인 마인드가 놀랍습니다. 우리 해운계가 꼭 가져야 할 개혁적 사고방식입니다.”

요즘 대형 해운, 조선사를 갖고 있는 오너(Owner) 일가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병철, 정주영이 그랬던 것과 같은 혁신 정신이 부족한 것 같기도 합니다.

“유력 조선사를 보유한 대기업 오너 가족이 자기네 회사 현안과 관련해 인터뷰를 한 적을 본 일이 없습니다. 그 분들이 과연 조선소에 가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이나 해봤을까요?  할아버지나 아버지 때 이룩한 중후장대형 산업의 결과를 그냥 이어받고 수익성만 점검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우조선해양도 마찬가집니다. 산업은행이 주인이지만 정부는 이 회사에 들어간 공적 자금을 회수할 생각만 하고, 건전하게 다음 주인을 찾기 위한 고민을 별로 하지 않는 듯 합니다. 우리 나라 해운, 조선 산업 위기를 돌파하려면 ‘주인 의식’이 필요합니다.”

경제학에서는 주인-대리인(Principal-Agency Problem) 문제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주인들도 관심이 없다는 건 큰 문제네요.

“해운, 조선산업이야말로 철저한 전문 경영 제도가 필요한 분야입니다. 우리나라 해운, 조선 산업이 매우 빠른 속도로 커 왔지만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원천기술이 없다는 겁니다. 기술 개발을 하려면 장기적인 성장성을 보고 가야 하는데, 그런 투자가 가능 하려면 경영자의 힘이 막강해야 합니다. 전문 경영인에게 제대로 힘을 실어주지 않고 설렁설렁 단기적 숫자로만 평가하는 식으로 자리를 맡기면 절대로 제대로 운영 못합니다.” 

그만큼 조선업계의 기술 경쟁력이 취약한 듯 합니다.

“한국 조선업이 갖고 있는 원천기술은 생산기술인데, 사실 조선업에서는 가장 보편화된 기술입니다. 조선업에서 가장 어려운 선박이 LNG 운송선입니다. 액화천연가스가 주된 화물로 열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보관도 어렵고, 운항이 늦어지거나 화물창이 잘못 지어지면 그냥 재고 손실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액화천연가스 컨테이너 기술(LNG Container System) 특허가 많이 없어요. 그래서 프랑스의 GTT같은 회사에서 회당 1000만불 씩이나 사용료를 지불하고 들여 와야 합니다. 전세계적으로 LNG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기술 개발이 매우 중요해 질 겁니다.”

   
▲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이 60년대 당시 만든 '해사행정일원화'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촬영=이코노믹리뷰)


지금 해운, 조선 관련 부처가 두 군데(산업통상자원부와 해양수산부)로 쪼개어져 있지 않습니까(산업통상자원부는 조선해양플랜트과, 해운은 해양수산부 해운물류국으로 구분되어 있다). 과거에도 불편함이 있었을 듯 한데,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요?

“제가 50년대에 유학하고 와서 한국에 들어 왔을 때에는 해무청(海務聽)이라고 있었습니다. 조선, 해운, 수산, 해상보안 등을 모두 담당했습니다. 당시 청장이 홍진기 씨(전 법무장관, 중앙일보 회장)였습니다. 그런데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홍 전 청장이 이승만 정부의 중역이라는 사실 때문에 사형 선고를 받았고, 그와 관련된 모든 부서가 정리되자 해무청도 자연스럽게 해체가 됐습니다. 그러다가 군사정부가 저를 61년에 경제기획원 장관 고문으로 영입했습니다. 66년에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이 되면서 건의한 게 ‘대통령 직속 해사행정특별심의위원회’라는 종합 컨트롤타워 형태로 기관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한국조선해양산업발전종합계획을 세웠고, 위원장인 제가 모든 권한을 위임받아 해운, 조선업 정책을 총괄했습니다. 고시 출신 관료들의 아성이 지금보다 훨씬 강했던 사회인데, 기술 전문가인 저를 장관급 특위 위원장에 임명했습니다. 사실 그런 종류의 컨트롤타워가 지금 절실한 시기입니다.”

   
▲ 신동식 회장이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 당시 만든 한국조선해양산업발전 종합계획(촬영=이코노믹리뷰)

자칫하면 해운, 조선업을 다시 국가가 통제한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을까요.

“해운, 물류산업과 에너지 산업은 어느 나라나 국가 안보와 관련이 있는 전략 방위산업으로 다룹니다. 과거 한국에서 MIT 조선공학과나 미시건대 조선공학과에 유학을 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미국 정부가 이들 대학 학과를 전략 방위산업 관련 교육기관으로 엄정하게 관리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조선 회사의 기술 보안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엄수 사항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물론 관(官) 주도형 경제로 가면 안됩니다. 그렇지만 대통령 관심사항으로 대두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이 있어야 하고, 업계 전문가와 학계 전문가, 공무원, 정치인들이 함께 토의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 져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관심을 가질 수도 있는 사항인 듯 합니다.

“지금 선박금융 때문에 해양진흥공사를 만든다고 하는데, 해사행정 일원화는 해양 정책 관련 관심이 높은 이 정권이 절호의 기회로 노릴 법한 현안입니다. 당장 부처들 간에 업무 조정을 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청와대에 대통령 직속 태스크포스(Task-force)를 만들고 각계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듣는 기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해운, 조선 산업은 기술 로드맵이나 전략 로드맵이 매우 중요한 산업입니다. 산업의 바닥에서부터 최상층부까지 고르게 경험해 본 사람이 필요합니다. ‘기술 리더십’과 ‘정책적 리더십’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 해사행정통합 태스크포스를 지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해운, 조선 산업의 개혁을 그렇게 해 나가야 합니다.’

◇ 신동식 회장은= 1932년 출생. 1955년 서울대 공과대학 조선해양공학과를 졸업하고 스웨덴 코쿰(KOCKUM) 조선소 기사, 하디 토빈(Hardy Tobin Co.) 사 소속 기사, 영국 로이드(LLOYD’s) 국제선급협회 검사관을 역임한 조선산업 1세대 엔지니어 출신이다. 1961년 군사정부 초청으로 귀국하여 경제기획원 장관(김유택 전 장관) 고문, 미국 ABS 국제선급협회 검사관, 대통령 정무비서관과 경제수석비서관을 역임했고, 대통령 직속 ‘해사행정특별심의위원회’ 위원장(장관급)을 역임했다. 1971년 한국해사기술을 창업하여 선박 설계 및 조선소 설계 전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 약력

1971 - 현재 한국해사기술 대표이사 회장

1970 -1971 경제과학심의위원회 위원 겸 사무총장(장관급)

1967- 1970 대통령 직속 해사행정특별심의위원회 위원장(장관급)

1966- 1967 대통령비서실 초대 경제수석비서관(차관급)

1965- 1966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1급)

1961- 1963 경제기획원 장관 고문(1급대우)

1968- 1961 영국 로이드 국제선급협회 검사관

1951- 1955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조선해양공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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