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화 ‘장산범’이 개봉했다. 부산 해운대 장산마을에 전해져 내려오는 괴담이 모티브다.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귀신이 집집마다 출몰하며 죽었던 가족이나 친구의 목소리를 내 유혹한다. 그 길을 따라가면 죽음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익숙함, 동정심, 따뜻함과 같은 순간의 이득 때문에 쉽게 요괴에게 미혹된다. 이 귀신은 다른 요괴와 달리 자기 목소리가 없다. 오로지 상대방에게 맞춤화된 유혹 방식을 통해 영혼을 빼앗아 나락으로 끌고 간다는 게 주된 특징이다. ‘거울’을 신체(神體)로 하여 가가호호 출몰하는 장면은 일본 신도(神道) 설화의 요괴들을 닮았다. 이 귀신은 80년 전 스스로를 신체로 하여 장산범이라는 요괴를 받아내려 했던 무속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당장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매우 익숙하고 따뜻한 친지의 목소리다.

얼핏 보면 공포영화 같지만 가장 근원적인 저변에는 익숙함을 바탕으로 한 ‘사기’라는 요소가 깔려 있다. 사람의 인지적 약점을 건드려 잘못된 행동을 이끌어 내고야 마는 사기 말이다. 성경에도 '속이는 자'와 '속는 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우리가 생활 현장에서 직면하는 ‘친환경 인증’이 그렇다. 무항생제, 유기축산 인증이 존재하지만 수의사 처방만 받으면 약품 사용이 가능한 환경이다. ‘살충제 계란’ 사태도 결국에는 무더기로 발급한 친환경 인증이 문제의 원인이었다. 어려운 농민들 입장에서는 ‘친환경 직불금’과 ‘밀집사육을 통한 수익화’라는 양 손의 떡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나라에서는 겉으로는 적정 기준을 넘으면 친환경 인증이 해제된다고 말하지만, 뒤에 가서는 “걸리지만 마세요”라며 조선시대부터 우리네 정서에 익숙한 말들을 내뱉는다. 관(官)이 농민들에게 장산범 역할을 하는 꼴이다.

▲ 영화 '장산범'의 극중 주인공 희연(염정아 분)은 아들 준서를 잃어버린 후 우울증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장산범은 그녀의 아들에 대한 부채감을 노린다(출처=네이버 영화)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무해하다고 판정난 친환경 계란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지난 18일 농림축산식품부가 ‘살충제 계란 농장’ 조사 결과를 밝혔지만, 먹거리에 대한 공포는 사그러들지 않았다. 닭고기, 햄버거, 전 등 계란을 응용한 식품 전반으로 거부감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약 3일간 진행된 전수조사 이후로 계란 매출은 40% 가량 급감했다. 강남 아줌마들은 ‘친환경 인증’ 공부에 나섰고, 차라리 하림이나 SPC 같은 대기업에서 사 먹는 게 안전하다는 이야기도 돈다고 한다. 여러 모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은 공공이라는 ‘장산범’이 여기저기 출몰하며 농민들을 미혹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낙연 총리의 긴급 대책 회의에서 ‘농피아’라는 또 다른 ‘장산범’이 지목됐다. 수십 년 전부터 농업계에 카르텔이 있다는 이야기는 파다했지만, 공공기관 퇴직자들이 친환경 인증 남발의 주범이라는 사실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퇴직자들이 민간 인증 업체에 재취직해 친환경 인증을 무더기로 내 준 사실이 적발됐다. 가뜩이나 삶이 불안하고 척박한데 먹는 것까지 염려해야 하는 현실, 그런데 그 먹거리의 질서를 공공 파트의 사람들이 교란시켰다는 사실이 분노를 일게 한 것이다. 그러나 장산범을 어떻게 때려잡을 것인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하기사 친환경이라는 단어가 기만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은 2014년 경기도 급식비리를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복수의 장산범이 등장하는 이야기다. 경기도의 최저가 입찰제 방침으로 인해 친환경 농산물 조합들이 서로 다른 업체와 담합하여 급식을 낙찰 받으려 애쓰거나, 약속보다 훨씬 못한 품질의 농산물이 학교에 유입된 것으로 드러났다. 몇몇 학교급식 제조업체가 3천여 개 학교 영양 교사에게 16억 상당의 상품권을 향응으로 제공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도저히 박멸해도 없어지지 않는 요괴들이다.

사기 피해자는 트라우마 속에 살아 간다. 치유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린다. 지금 ‘친환경’을 둘러싼 우리 농축식품업계의 상황이 그렇다. 소비자들은 내가 좀더 비싸게 돈 주고 사 먹는 먹거리가 발암물질로 가득 찬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벌벌 떨어야 한다. 친환경 게이트로 죄를 저지른 사람이 사회적으로 단죄되고 뉘우쳤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소비자들은 언제 내가 또 속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가슴을 졸여야 한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그나마 처벌을 받아 자정이 된다. 그러나 걸리지 않은 사람들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구악으로 진화하며 천년 묵은 장산범이 된다. 또 다른 친환경 게이트가 예비되어 있다는 말이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비리와 부조리 말고도 친환경을 기만적인 단어로 바꾼 원인은 정말 많다고 한다. 싼 값에 축산물을 사 먹으려는 소비자들의 심리, 축산 농가들의 영세한 상황, 규정의 모호함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모두가 안심하고 신뢰해야 할 제도를 편의껏 밥벌이로 삼은 이들을 처벌하는 것이다. ‘친환경의 배신’은 먹거리에 대한 공포로 끝나서는 안 된다. 우리 주변에서 용껏 도사리고 있는 장산범들을 처단해야 하는 모멘텀이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