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소비되는 식품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상식적으로 쌀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쌀을 넘어선 강자가 있으니 어느덧 한국인의 먹거리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돼지고기다. 농촌경제연구원이 ‘2017 농업전망대회’에서 밝힌 지표에 따르면 2016년도 돼지고기 생산액은 6조7700억원으로 6조4570억원의 쌀 생산액을 훌쩍 넘어섰다. 연구원 관계자에 따르면 쌀이 다시 1위 자리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쌀 경지면적도 줄어들고 쌀 가격도 하락하면서 이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식재료로 돼지고기는 한국인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먹는 방법과 요리 종류도 가장 대중적인 삼겹살 구이부터 시작해서 돼지 불고기, 두루치기, 돼지갈비, 돼지 껍데기 등 다양한 레시피가 우리 국민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비오는 날 돼지고기를 넣은 얼큰한 김치찌개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는가. 농촌진흥청이 지난 3월 3일 ‘삼겹살데이’를 맞아 최근 3개월 동안 돼지고기 구매 경험이 있는 737명을 대상으로 ‘돼지고기 소비 경향’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40%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먹는다고 답했다. 한국인의 주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좋아하는 부위는 당연히 삼겹살이 1위로 60% 넘는 사람들이 답했고 캠핑 가서 주로 먹는 목살이 그 뒤를 이었다. 원산지는 수입산보다 국내산이 맛있다는 응답이 78%를 넘어섰다. 국내산 돼지고기를 한돈이라고 한다. 우리 국민들의 한돈 사랑은 아주 특별해 보인다.

한돈자조금 이병규 위원장은 국민들의 꾸준한 사랑 덕분에 한돈의 성장 가능성은 앞으로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돈은 수입 돼지고기와 구별하는 국산 돼지고기의 총칭입니다. 한돈의 가장 큰 장점은 아주 오랫동안 소비자에게 꾸준히 사랑받으면서 국민 먹거리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입니다. 한돈은 농업 분야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분야로 농가들의 노력에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이 갖춰져 있습니다. 국내 소비도 두터운 소비 기반을 바탕으로 한돈의 소비는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은 언제부터 이렇게 돼지고기를 많이 먹게 되었을까? 고기 및 음식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1970~80년대 대일(對日) 수출이 원인이라는 의외의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우리나라의 수출 품목 중에 돼지고기도 있었는데 일본이 경제호황기를 맞으면서 고기 소비가 급속도로 증가해 한국에서 기른 돼지 등심과 안심 부위 수출이 급격하게 늘어났다고 한다. 돼지의 등심과 안심은 일본인들이 돈가스용으로 선호하는 부위다. 이 두 부위를 빼고 수입해 가지 않은 부위가 삼겹살을 포함해 족발, 머리, 뒷다리 등이다. 좋은 부위는 일본에 가고, 한국인은 남은 부위를 즐겼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다.

그 이후로 한국인들은 돼지고기 중에 삼겹살을 즐겨 먹었고 족발집, 순댓국집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시장에 가면 섬뜩한 돼지머리를 흔하게 볼 수 있었고 마포 공덕동에 가면 돼지 껍데기가 여성의 피부에 좋다며 한때 인기를 끌기도 했다. 돼지 뒷다리를 이용한 햄과 소시지 관련 육가공 산업도 이때부터 서서히 호황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학창시절 도시락 반찬에 들어간 계란 옷 입은 소시지 반찬은 얼마나 귀하고 맛있던지. 친구들에게 뺏기지 않으려고 애썼던 귀여운 기억도 생각난다.

삼겹살은 주로 구워서 먹었는데, 70,80년대 베이컨보다 저렴한 삼겹살을 주로 먹을 수밖에 없었다. 직장에서 퇴근 후 저렴하게 먹은 삼겹살과 소주 한 잔은 한국인을 지켜주는 힘이기도 했다. 삼겹살은 국어사전에서 살코기와 지방이 3단으로 층층이 겹쳐 있어 원래 이름은 ‘세겹살’이었다고 나온다. 개성 사람들이 유난히 즐겨 먹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개성 인삼의 ‘삼(蔘)’과 조화를 이뤄 삼겹살이 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도 하고 있다.

원래 한국 사람들은 삼겹살보다 돼지갈비를 주로 먹었다. 삼겹살은 주로 찌개나 수육용으로 팔렸는데 과거 돼지 사육방식이 지금과는 달라서 층층이 기름과 살코기가 엇갈려 쌓이는 삼겹살은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 때문에 삼겹살은 구이로 먹지 못하다가 197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서민들 사이에서 구워 먹는 방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한국인들은 돼지고기 중에서 먹지 않는 부위가 거의 없을 정도다. 다리는 족발과 껍데기, 머리는 머릿고기, 내장은 내장탕, 피는 순대 등 돼지 부속물들까지 알뜰하게(?) 먹었다. 한돈자조금 이병규 회장의 말을 빌리면 우리나라 돼지고기의 힘은 대단하다. “우리 땅에서 키워 우리의 입맛에 맞춘 우리 돼지 한돈은 맛과 신선함, 안전함에 있어 수입고기에 비해 월등히 우수합니다. 지방 조성 비율 등 육질 측면에서도 수입고기에 비해 우리 입맛에 맞습니다. 또, 대부분 냉장육으로 유통·판매되는 한돈은 냉동상태로 수입되는 수입고기보다 육즙이 살아 있습니다.”

단백질과 비타민 B1이 매우 풍부해서 우리의 근육과 호르몬 조성을 위한 공급원으로 큰 역할을 해주었던 돼지고기, 어쩌면 한국인의 저력은 우리 돼지고기가 준 선물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