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은 1946년에 미국에서 비즈니스 모델이 만들어졌고 일본은 1962년, 국철 철도역에 1호점을 개점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우리나라에는 1989년 올림픽 선수촌에 첫 편의점이 개점하면서 편의점 시대의 막이 올랐다. 글로벌 편의점 시장의 흐름으로 보면 일본이 티핑포인트라면 만개한 곳은 우리나라다. 일본의 편의점 수는 2017년 현재 5만5000개로 우리나라의 3만2000개보다 많지만 인구비례로 보면 우리나라가 훨씬 많은 숫자다. 게다가 우리는 편의점의 대부분이 도시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 洞당 12개 정도 있다고 보면 된다.

불과 30㎡(이상)의 작은 공간에서 영업하지만 굉장히 과학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대표적인 소매업종 편의점. 이제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편의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편의점에 의해서 필요가 생기는 현상이 만들어지고, 나아가 우리를 ‘소비하는 인간(Homo Consumus)’으로 길들이고 있다는 느낌마저 주고 있다.

혹자는 “편의점 문을 열고 한 바퀴 돌면서 원하는 물건을 고르고,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고 나오는 모습이 마치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위를 도는 제품과도 같다”고 표현할 정도로 성장 이면에는 도시의 삭막함을 대변하는 업종이기도 하다. 반면에 도시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고, 여러 측면에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흥미로운 업종이다.

그래서 이번 칼럼에서는 편의점을 단순히 하나의 업종으로 보는 수준을 넘어서 편의점이 해야 할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일본의 사례를 중심으로 중요한 제안을 해보려고 한다. 하고많은 업종 중에 편의점에 사회적 역할을 요구하는 핀셋 제안을 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다른 업종과 달리 대자본이 자영업종에 진입해서 여러 주변 업종과 충돌하는 문제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초기에 편의점은 단순히 일용품, 가공식품, 과자류 등 비교적 단순한 소매업종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여러 다양한 상품에다 PB상품까지 만들어서 시장을 잠식해 가고 있다. 예를 들면 편의점 매출의 35%가량이 담배인데 이전에는 동네슈퍼에서 팔았지만 지금은 편의점이 거의 독차지하고 있어서 동네슈퍼의 매출이 그만큼 줄었다. 최근에는 즉석 간편식에다 신선식품도 팔게 됨으로써 분식집, 야채상에도 영향을 주고 있고, 배달 대행 같은 서비스업종, 심지어는 응급의약품까지 팔게 됨으로써 약국까지도 일부 시장이 충돌하는 문제가 생기고 있다. 국민편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일정 부분 묵인되고는 있지만 이렇게 가다가는 상당수 자영업종의 입지를 축소시킬 수 있다. 게다가 가맹점도 유사업종과 상생할 만한 수준까지만 출점시키는 것이 대자본의 기본자세일 텐데 한 동당 12개까지 만들고도 앞으로도 계속 늘리려는 계획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수익에 집중하는 우리나라 편의점들과는 다르게 해외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지역사회 공헌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재난안전센터 역할, 지역방범 역할, 공공복지 네트워크 역할, 주민 소통공간 제공, 로컬푸드 개발과 유통편익 제공 등 지역사회를 위해 다양한 상생노력을 하고 있다.

 

 

재난안전센터 역할로는 구마모토지진이나 동일본 대지진 때 편의점이 수행한 역할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편의점들은 주변에 불을 훤히 밝히고 피해 주민들에게 우유와 빵, 주먹밥 등을 제공하거나, 정부나 적십자사가 보내온 식량이나 의류, 응급용품 등을 배포해주는 거점 역할을 했다.

호우나 태풍 피해 지역에서도 편의점은 뛰어난 기동력을 발휘했다. 자전거, 오토바이 등을 공유할 수 있도록 했고, 피해 지역에는 본사직원을 파견해서 일손을 돕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필요할 때마다 가맹점주에게만 미루지 않고 본사가 직원을 파견해서 봉사한다는 점이 돋보인다. 그러나 올해 충북 지역 호우로 지역 교통사정이 어려웠지만 편의점이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뉴스는 없다.

지역사회의 방범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편의점은 전략상 길과 맞닿은 벽은 모두 유리로 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변 방범효과가 있다. 하지만 더 나아가 SS(Safety Station) 활동 즉, 안전스테이션 활동을 하고 있는데 어린이나 여성이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편의점에 피신하게 하고 편의점이 곧바로 신고하도록 되어 있다. 그 결과 2016년에 2만5000명이 혜택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재생에도 편의점이 한몫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가맹점을 내주는 편이지만 일본은 허름한 동네상권에 들어가 상권을 회생시키는 역할도 한다. 일본도 우리처럼 파출소가 감소추세여서 이런 편의점의 활동이 지역사회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편의점이 지역사회에 공공서비스 이용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지역의 대표적인 편의점을 지정해 은행, 우체국, 행정기관 서비스의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 많다. ATM기나 우체통을 설치해 놓는다거나 우리는 동사무소나 대형 유통센터에나 가야 가능한 주민등록등본도 편의점에서 뗄 수 있다. 지역주민의 편익활동도 전개하고 있다. 아파트 지역은 택배를 받아서 전달해주거나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인화할 수 있는 프린트 서비스도 하고 있다.

편의점이 지역관광 활성화에 일조하는 사례도 있다. 얼마 전, 히로시마에 갔다가 그 지역 관광 안내 자료가 편의점에 비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 투자가 필요하거나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모델로 손색이 없어서다. 종업원은 브로셔를 펼쳐놓고 보다 상세한 설명을 해주면서 “편의점에서 ‘투어 에이드 스테이션(Tour Aid Station)’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상생효과는 편의점의 매출상승으로 이어졌다. 일본 관광청 자료에 의하면 2015년 방일 외국인 여행자 2000만명 가운데 무려 64%가 편의점에서 기념품을 구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면세점이나 백화점보다 높은 수치다. 관광 상담에 대한 보은구매 효과라 생각된다.

지역농민과 함께 로컬푸드 개발과 유통의 전진기지 역할도 편의점이 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지자체와 포괄협정을 맺고 지역의 식재료만을 사용한 로컬푸드를 만들어 편의점을 통해 판매해준다. 우리나라로 보면 제주도 오메기떡, 보성 녹차, 순창의 고추장 같이 그 지역 특산품을 팔아주거나 상품기획과 개발을 함께 해서 전국으로 확산하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의 다른 자영업종과 상생하려는 사례도 많다. 그 동네 빵집에서 개발한 ‘숟가락으로 떠먹는 롤 케이크’를 편의점이 같이 팔아주거나 그 동네 청년들이 만든 크래프트 맥주를 상품화해주는 등의 협력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지역 의류 수선점과 협력해서 수선할 옷을 접수해주기도 한다. 반면에 우리나라 편의점은 지역 특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전국 어디나 본사가 제공한 제품만 팔도록 되어 있다는 점에서 아쉬운 대목이다.

이처럼 편의점이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이면에는 24시간 영업장이라는 장점과 전국 각지에 고루 퍼져 있는 구조적 자원, 즉 네트워크가 잘 갖춰져 있다는 점 외에도 프랜차이즈 본사가 사회적 책임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 있다. 최근 연이어 불거진 프랜차이즈 업체의 도덕적 해이와 오직 오너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갑질’ 행태와 크게 비교되는 대목이다.

정부도 맞춤형 지역사회 지원이나 복지 등을 수행할 때마다 큰 예산을 들여 새로운 조직을 구축하기보다 민간자원의 사회적 자본화를 통해 거버넌스형 사업을 전개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