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군함도>만큼 많은 관심과 비난을 동시에 받은 영화는 드물 것이다. 개봉 첫날 99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국내 영화사상 개봉일 최다관객 신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역사왜곡 논란에 휘말리면서 일부 네티즌들에게서 ‘평점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류승완 감독은 영화 홍보를 본격 시작하기도 전에 뉴스에 출연해 여러 논란에 대한 해명부터 해야 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인터뷰를 위해 만난 류 감독은 ‘누가 봐도 그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서 “감독님 좀 괜찮으세요?”라고 슬며시 물었더니 “ 말을 하도 많이 해서 지치긴 했는데요. 그래도 재밌어요”라며 웃었다. 한여름 폭염이 절정에 이른  8월의 어느 날 오후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류 감독을 만나 그가 영화 <군함도>를 통해 전하고자 한 여러 가지 메시지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군함도> 흥행, 축하드립니다! 

아유, 살면서 이렇게 짧은 시간동안 많은 욕을 먹었을 때가 또 있었을까 싶어요. 실은 개봉 전부터 도 영화에 대한 많은 이견(異見)들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긍정으로든 부정으로든 작품에 대해 많은 분들의 관심이 모였다는 데 감사할 따름입니다.  <군함도>는 <베테랑>이나 <베를린> 등 이전에 제가 만든 영화에서 보여드리지 않은 많은 것들을 시도한 영화였고요. 역사상 민감한 소재를 다룬 만큼 많은 신경을 썼고요. 그래서 한동안 마음고생을 좀 했습니다.

<군함도>에서는 이전 영화들과 다른 어떤 새로운 시도들을 하신 건가요? 

우선 역사를 다루는 영화이기 때문에, 특히 고증에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남아있는 군함도 사료(史料)들을 찾기 위해 군함도와 군함도가 인접해 있는 일본 나가사키 현(長崎県)을 여러 차례 방문했습니다. 또 군함도의 강제노역을 직·간접으로 경험한 분들의 증언들을 통해 철저한 고증을 마쳤죠. 그리고 당시 강제 징용자들이 군함도에서 느꼈을 법한 공포스러운 위압감을 전달하기 위해 실제 군함도 크기의 약 3분의2 규모(6만6000㎡)의 세트도 따로 만들었습니다.

▲ 군함도 세트장. 출처= CJ엔터테인먼트

영화 장면의 구성에서도 이전과 다른 시도들이 있었죠. 가능하면 주연배우들과 더불어 다른 주변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표정과 감정들을 모두 담아내려고 노력했어요. 물론 영화 전반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것은 몇 명의 주인공들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억울하게 끌려와 피해를 입은 수많은 이들이 느끼는 감정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전작인 <베테랑>이 몇몇 주인공들의 강한 캐릭터와 카리스마가 이끌어가는 영화였다면, <군함도>는 주인공들의 어깨에서 힘을 뺐다고 할까요. 공포스러운 배경, 그를 마주한 수많은 조선인 강제노역자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 등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영화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조선인들이 군함도로 끌려오는 영화 초반의 비극적이고 슬픈 장면의 분위기와 대조되는 경쾌한 음악을 배치한 것도 나름 계산된 것이었습니다.

 

감독님이 의도하신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모르지만 <군함도>는 굉장히 ‘정치적’인 영화라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글쎄요. 주변의 몇몇 분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는 했습니다만 사실 ‘전혀’ 의도한 게 아니었습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 조선인들이 군함도 탈출을 도모할 때 촛불을 들고 뜻을 모으는 장면을 두고 그런 말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 출처= CJ엔터테인먼트

저도 영화 시사회 후 송중기씨의 인터뷰로 알게된 건데요. 흥미롭게도 그 장면을 촬영한 날이 광화문에서 촛불시위가 있었던 날이라고 하더군요. 물론, 우연의 일치였습니다. 영화에서 촛불이 등장하는 것은 역사적 고증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군함도의 조선인 거주 구역에는 전기가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밤이 되면 조선인들은 불을 밝히기 위해 촛불을 사용했고, 군함도의 탄광 지역에도 횃불이나 촛불이 흔하게 있었다고 합니다.  

<군함도>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던 장면들이 있었는데요. 영화 중간 중간에는 군함도의 조선인들이 서로를 속이고, 괴롭히고, 더러는 일제에 적극 협력하는 모습들이 자주 나옵니다.

많은 분들의 해석이 갈린 부분이기도 한데요. 제가 전하고자 한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의견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과거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우리나라 영화들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습니다. 절대 악(惡)  일본, 그리고 그를 응징하는 절대 선(善)인 조선이라는 선악의 구도가 아주 명확했죠.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친일’에 앞장선 조선인들을 충분히 짚고 넘어가지 않고서는 일제 강점기를 현실에 가깝게 표현할 수 없다고 말이죠. 그들 중에는 자기나 가족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본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분들도 많았을 것이고요. 혹은 다른 조선인들을 괴롭혀가면서까지 적극 일본 제국주의의 앞잡이 노릇을 한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군함도>는 이러한 인물들이 뒤섞여 있는 공간이었구요. 영화에서는 절박한 상황에 내몰린 조선인들이 취할 수 있는 행동들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려고 애썼습니다. 물론, 인간의 존엄성마저 놓아버린 같은 민족을 괴롭힌  적극적 친일 행위에 대해서는 분명한 문제의식 제기와 청산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조금이라도 일본에 협력한 이들은 모두 비극적 최후를 맞는 설정으로 이를 표현했습니다.

▲ 영화 <군함도> 중 욱일기를 반으로 자르는 장면. 출처= CJ엔터테인먼트

극중에서 욱일기(旭日旗)를 반으로 가르는 장면,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몇몇 대사들은 일본에 전하는 어떤 메시지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름 의도한 것이 있었나요? 

제가 가장 경계하는 부분이 <군함도>가 하나의 프로파간다(Propaganda, 특정 사상적 노선(路線)을 대중의 사회적 태도에 주입시키는 선동)로 해석되는 것입니다. 이 영화가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만든 영화는 아니구요. 다만 자국의 이익을 위한다는 이유만으로 주변국의 많은 이들을 희생시킨 일본의 제국주의는 역사에서 다시 나타나서는 안 될 야만 행위라는 것은 꼭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제국주의 야욕의 중심에 있는  군함도의 이야기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알게 하고 싶었죠. 실제 군함도 사진자료를 보면 공장 시설에는 광산을 운영한 일본 철강회사의 깃발과 대형 욱일기가 있었습니다. 대규모 인원들이 탈출을 시도한다면 이것을 잘라서 긴 끈처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기자님이 이 장면의 연출을 맡았다고 하면, 둘 중 어떤 깃발을 찢으실 것 같은가요?

아마, 당연히 욱일기겠죠?      

연출을 맡은 제 생각도 기자님과 같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 사진= 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끝으로...<군함도>가 관객들에게 어떤 영화로 기억되길 원하시나요? 

방송이나 다른 자리에서도 여러 차례 말씀을 드렸지만, 저는 당장 <군함도>가 몇 백만 명의 관객들을 모았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화 이후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정부는 군함도에서 자행된 강제징용과 학대를 전면 부인하고 지난 2015년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추진했습니다. 현재 일본은 유네스코에 의해 군함도의 강제징용 등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알려야 한다는 권고를 받았고 이와 관련한 자료를 올해 12월까지 제출해야 합니다. 물론 일본은 이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죠. 저는 이 사실을 우리나라의 많은 젊은 세대들에게 알린 것만으로도 <군함도>를 만든 목표는 충분히 달성했다고 봅니다.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 중 한 사람으로서 감독님의 의도는 충분하게 전달됐다고 봅니다.

아이고, 그렇게 봐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감독님의 좋은 작품들 기대하겠습니다. 

날도 더운데 질문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