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대표하는 미래학자인 마티아스 호르크스 프랑크푸르트미래연구소 소장은 저서 <메가트렌드 2045>에서 미래의 메가트렌드 가운데 ‘타자이자 독립적 존재로서의 개인화’를 언급했다. 개인주의가 삶의 일상이라 할 수 있는 유럽에서 미래의 트렌드로 ‘개인주의’를 언급하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개인주의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선진 대륙에 비해 비교적 늦게 ‘개인주의’라는 단어가 통용되었지만 아주 급격하고도 각별한 사회적 이슈와 기술의 진보를 기반으로 십여년의 짧은 기간 동안 임팩트 있게 경험하면서 개인주의는 그 어떤 나라보다 빠르게 확산되었다. 예를 들면 독재정권, 민주항쟁, 그리고 IMF 등을 겪은 우리의 아버지 세대들은 국가나 회사가 내 삶을 보장해줄 수 없다는 것을 몸으로 겪어오면서 개인주의의 씨앗을 발아시켰고, 이를 바라보며 자라난 자식 세대들은 변화하는 사회적 인프라와 함께 기술문명, 정치 참여, 자유로운 의사교환 등을 바탕으로 남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또한 피부로 느끼며 자라왔다. 즉 개인주의를 받아들인 계기가 세대별로 다를지라도 궁극적으로는 남과 내가 다르고, 또한 공동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속의 ‘나’가 중요한 것이라는 깨우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전쟁과 가난, 새마을 운동 등을 겪은 지금의 노년층에게는 여전히 개인주의보다는 국가주의, 공동체주의가 스스로에게 더 납득되기에, 개인주의는 영 못마땅한 존재로 보일 수도 있다.

이처럼 개인주의를 받아들이게 된 계기, 그리고 바라보는 시각, 미치는 영향 등 개인주의와 연관된 많은 것들이 제각각이지만 단 하나, 부인할 수 없는 것은 개인주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우리 생활에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고 있으며 그리고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인주의를 말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일부 젊은 세대에만 속하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세대가 매우 넓어졌다. 세대뿐만 아니라 직책, 분야에서도 매우 넓어지고 있다. 즉 이제는 어느 조직에서도 개인주의를 용인할 수 있는 상황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개인주의적 문화가 우리의 삶과 조직에서 누구나 이야기하고 실천할 수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속한 조직이나 사회에서 성과가 어떻게 도출되는지에 대한 측면에서 사회를 바라보면 좀 더 명확하게 답을 찾아낼 수 있게 된다.

첫 번째, 지금의 사회는 성과를 내는 주체가 집단에서 개인으로 변화했다. 즉 예전에는 ‘으쌰으쌰’ 하면서 모두가 힘을 모아 집단을 위한 성과를 창출했다면 지금은 조직력보다 개인의 창의적인 노력이 조직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 보다 큰 작용과 기여를 하는 시대이다. 즉 성과를 달성하고 조직의 목표를 위해서는 각 개인마다의 차별화된 다양한 역량을 필요로 한다.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회가 전반적으로 개인의 전문성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더 높아지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젊은 층에서 더 많이 나타나는데 요즘 대학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과제가 바로 팀 과제라고 한다. 그만큼 요즘의 세대들은 무언가를 함께 해나가는 데 있어서 어색해하고, 힘겨워 한다는 것이다. 또한 결과물 역시 개인의 성과보다 하향평준화되기도 한다.

두 번째로는 삶의 방식이 다양해지고, 개개인이 지향하는 바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어떠한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과거에 비해 상당히 많은 솔루션이 도출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삶 자체가 정답이 없는 사회로 변화했다는 데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남과 다름을 개성, 창의성, 다양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이제는 개성, 창의성, 다양성은 이미 과거의 단어로 자리매김했다. 즉 새로움에 대해 매우 둔감해 하는 시대에서 더 이상 새로움은 특별한 것이 아니며 당연함이 된 것이다. 결국 성과의 메인프레임이 과거와 같이 속도, 점유율 등이 아닌 개개인의 다양성을 얼마나 충족시키는지 등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가 하나의 연결선상에 있다고 보았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표적인 성향은 그 사이 어느 지점엔가 존재할 것이다. 그 지점이 세대별로 다를 수는 있겠지만 결국 그것은 성향일 뿐 “나는 개인주의자야!”라고 선언할지라도 절대적으로 개별적이거나 완벽한 개인주의자가 될 수는 없다. 이는 그저 인간 개개인의 성향이 각자 다른 정도의 차이로만 나타날 뿐이다. 이처럼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이분법으로 나누어서 “넌 개인주의자야!” 또는 “넌 집단주의자야. 그래서 너랑은 대화가 안 돼!”라고 하는 말은 큰 의미가 없다. 나와 다른 사람이 다름을 인정하고, 사회의 구조와 현재의 상황에 따라 충분히 누구나 다르게 판단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개인주의자를 혹시라도 아직도 이기주의자라고 생각해 ‘개인주의는 나쁜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잘못된 시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하루빨리 자신의 인식을 바꾸기를 권한다. 여러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라 하더라도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동일시하는 이론적 오류로 인해 사회를 삐딱하게 본다면 그로 인한 여러 손해들이 자신에게 오롯이 올 수 있으니 말이다. 개인주의는 더 이상 부정적인 단어이거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를 지칭하는 단어가 절대 아니다.

누구든지 삶을 살아오면서 어떠한 이유로든 개인의 성향이나 성격, 정체성까지도 조금씩은 변화하게 된다.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태생적으로 기본적인 정체성이 개인주의가 된 세대는 변화의 방향이나 경계가 한정적일 것이며, 그 제약은 개인주의의 범위 내에서 이뤄질 확률이 높다. 결국 개인주의는 현재의 특정 시대만을 반영하는 산물로 전락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이며 향후 개인주의는 개인들의 삶에 태생적으로 내재된 필수적인 가치관으로 자리매김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마티아스 호르크스도 미래의 메가트렌드 중 ‘개인주의’를 언급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자, 미래의 세대들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답이 나왔다. 당신은 선택만 하면 된다. 과거의 향수에 갇혀 있을 것인지, 혹은 지금의 현실에 발맞춰 살 것인지, 아니면 미래의 변화를 미리 예측하고 미래지향적인 마인드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