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ICT 를 결합해 신사업을 개발한 사례들이 늘어나면서, 디자인 관점으로 농업에 접근해 보자는 전문가들도 생겨나고 있다. 과거에는 생산자 위주의 시스템과 솔루션 개발 위주였지만, 최근 들어 수직농장, 컨테이너 팜 등 일반 사용자들도 농업에 입문할 수 있는 기술이 나오면서 사용자들이 쉽고 편안하게 기능을 인식하고 각종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시나리오 작성이 필요해 졌다.

'서비스 디자인'은 제품 뿐만 아니라 서비스들도 이용자 만족을 위해 다양한 기능과 정보를 구성하고 배열할 수 있다고 보는 새로운 디자인 패러다임이다. 따라서 도시민들이나 고령자층도 쉽게 농업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디자인 접근'이 앞으로 농업 융복합 서비스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반영환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교수와 조만수 겸임교수를 만났다. 반 교수(이하 반)는 삼성전자, 팬텍앤큐리텔 등에서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분야 책임자로 근무하면서 국내 HCI(Human-Computer Interaction)업계의 권위자다. 조 교수(이하 조)는 LG 전자에서 인터렉션 디자인(interaction design) 분야 전문가로 활약했고 ‘엘리스일렉트로닉스’라는 회사를 운영하며 농업용 온풍기 등을 개발했다.

 

농업에 ‘서비스 디자인’개념을 결합한다는 관점이 재미있다. 계기는 무엇인가?

▲ 반영환 국민대 테크노디자인대학원 교수(농업서비스디자인랩)

▲반영환 : 생산-유통-소비의 일원화를 통해 6차산업화하는 게 최근 첨단 농업화의 트렌드지만, 거기서 한 가지 빠진 점이 있다면 인간의 경험과 감성이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도시의 노인들도 농작물 재배를 통해 힐링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평범한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농업 개념을 고민하다 보니 ‘서비스 디자인’ 개념을 접목하게 됐다.

▲조만수 : 우리나라 농식품부가 ‘스마트 농업’을 주창한지 약 10여 년이 됐지만, 별다른 성공 사례가 보이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농민들의 거부감, 충분한 사용자층을 확보할 수 있는 시장 규모의 부족, 기업화 부진 등일 것으로 본다. 농업용 온풍기를 제작해 중구청 등에 설치도 해 보고, 40-50여 명 학생들을 지도해 보면서 농기계 디자인 등의 가능성을 봤다.

 

해외에서도 관심을 가졌다고 알고 있는데. ‘애그리텍쳐’(agritecture) 개념을 국내로 들여오려는 노력이 재미있어 보인다.

▲조 : 애그리텍쳐 닷컴(agritecture.com)이라는 관련 미디어에 우리 학생들의 농업 디자인 프로젝트 관련 영상을 보내줬다. 그 후에 미디어 쪽에서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적극적으로 협력해 볼 의사를 표명해 왔다. 아직까지 우리 농업계와 협업하지는 않았지만, 건축, 기자재, 농업 분야 등과 융복합해서 추진해 볼 수 있는 사업이 많을 것으로 기대한다.

▲반 : 중국에서도 ‘애그리테크’개념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 중국은 ‘디테일드 서비스’(사용자의 미세한 욕구에 관심을 기울여 세밀하게 개발된 서비스) 시장이 매우 활성화되어 있다. 그렇다 보니 농업 분야에 사용자 경험 개념이 개진된 상품들이 금방 사이즈를 키울 수 있다.

▲ 조만수 국민대 테크노디자인대학원 겸임교수

 

병원, 제약회사 등과 협업하여 ‘맞춤형 농작물’ 재배도 가능하다는 주장을 내놨는데.

▲반 : 이미 선진국에서는 환자 경험을 증진시키기 위한 병원 서비스 디자인 시장의 크기가 매우 크다. 병원에서 단순히 의무기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쾌적한 이용 경험을 통해 신체적/정신적 힐링을 받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는 중국의 모 벤처기업은 텐센트로부터 한화 기준 5000억 원 정도를 투자 받았는데, 아이디어가 매우 신선하다. 환자의 질병 데이터와 가족력 등을 의무기록으로 식별한 후 ‘이 환자에게 알맞은 식품’, ‘이 가족에게 맞는 과일과 채소’ 등을 추천해 줄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것이다. 농작물을 의료 서비스에 부가된 상품 개념으로 확장한 것이다.

▲조 : 일본에서는 환자 맞춤형 농작물 배송 서비스 등이 이미 나왔다. 한국의 제약회사나 병원 등에서 추진해 볼 법한 아이디어로, 요즘 어려운 제약 시장에서 예방 의학적 차원에서도 고민하고 있는 과제다. 적극적으로 사업화를 고민하고 있다.

 

기존 농업계에서 나오는 코멘트는 없는가?

▲조 : 아직까지는 ‘어렵다’는 반응이 있고, 디자인 개념을 농업에 접목한다는 것에 대해 이질적으로 느끼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영농 기업인들 몇몇이 서비스를 같이 기획해보자고 제의를 하기도 한다. 앞으로는 LG CNS나 KT 등에서 농업용 솔루션만 개발할 게 아니라 농기계 등을 디자인해서 판매하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장 규모가 크지만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브랜드 파워 등을 발휘할 필요도 있다.

▲반 : 조 교수의 지적에 공감하면서도 또 우리가 고민하는 부분은, 개별 농가들이 기업형 농장에 잠식당하거나 유통사업자들에게 예속되지 않고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려 한다. 그러려면 교육용 솔루션이나 농가 공동체 등에 대한 컨설팅 등도 필요할 것이다.

▲ 국민대 농업서비스디자인랩에서 실험하고 있는 인공 작물 재배 트리.

 

중국 등으로 반경을 넓히려는 노력도 인상적이다.

▲반 : 내일(6월 1일) 중국으로 출국해서 약 3주 간 지역 기업이나 연구소 들과 프로젝트 진행과 관련된 작업들을 수행할 예정이다(반 교수는 칭화대 방문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우리 시장에서는 많은 한계점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랩에서도 중국인 학생을 뽑고 있고, 같이 중국 시장 연구를 하고 있다.

▲조 : 아무래도 농업 서비스 디자인을 가장 잘 수행하려면 기업화된 접근도 필요한 게 사실이기 때문에, 좀 더 기업 차원의 농업이 수월한 해외로 관점을 돌리게 되는 듯 하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농업을 지원 대상으로 보는 시선도 강하기 때문에, 조금 더 개방적인 합의점 형성이 필요하지 않을까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