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 동력은 인공지능 기술의 진화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인공 지능기술은 디지털 빅데이터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의사결정으로 변환하는 기술이다. 즉, 인간의 오감으로는 측정하거나 체험하기 어려운 물리적 현상들을 디지털 데이터로 수집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지능적 통찰력으로 변환해주는 기술이다. 따라서 인공지능은 어떤 형태로든 인간의 판단력을 지원하고 향상시키는 수단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자율운전 차량, 무인 항공기, 가상 조수, 자동번역, 그리고 금융투자 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미 폭 넓게 활용되기 시작했다. 제4차 산업혁명이란 이름을 붙인 이유는 이런 인공지능기술이 점차 인류 문명생활 속 깊숙이 파고들면서 이전의 산업혁명들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인의 소득수준을 높이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만한 커다란 사회적 변혁을 일으킬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세계경제포럼 대표인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은 제4차 산업혁명은 이전의 산업혁명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오감으로 체험하는 현실 세계와 가상의 디지털 세계뿐만 아니라 생명의 세계가 함께 융합되는 경제와 산업사회가 될 것이라는 관점 때문이다. 그는 새롭게 형성될 물리‧가상‧생명의 융합문명사회에선 인간의 정체성이 바뀔 수도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새로운 정체성이란 두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디지털 장비, 예를 들면 외골격 로봇 장치나 임플란트 등 인체에 결합하거나 삽입해서 인체의 잠재력을 증강시키는 가능성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생명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장수명화 즉, 인간이 질병으로부터 해방되면서 생명활동의 주기가 지금까지는 상상할 수 없었던 무병장수의 시대가 찾아올 가능성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의료산업이 가장 큰 변화 예상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전 세계 622명의 비즈니스 경영진들을 대상으로 제4차 산업혁명에 의해 가장 혜택을 볼 산업분야를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의료산업이 45%로 가장 높았다. 지금까지 인류문명을 개척해온 산업생산 활동이나 서비스의 디지털화는 이미 구축된 산업영역을 좀 더 스마트하게 변환하는 데 그치지만 생명과학의 디지털화는 그 성과가 어디까지 미칠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커다란 변혁을 일으킬 것이라는 점에서 <이코노미스트>의 설문조사 결과는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인간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정체성이란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인식하는 삶과 객관적으로 타인이 인정하는 사회적 실체로 구분될 수 있다.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요소는 문화적 배경, 언어, 살고 있는 시대, 살고 있는 장소, 속해 있는 사회, 가족, 관심사와 취미, 정보를 입수하는 수단, 전문성 등이 될 수 있다. 반면 자신의 정신세계에서 스스로 인식하는 정체성이란 자아인식이며 자신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스스로 체험했거나 규정하는 모습이다. 한평생을 간단히 표현하면 태어나서, 성장하고, 서로 어울려 배우며, 가정을 이루고,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늙고 병들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다. 이를 일생의 주기로 구분하면 모방 학습기인 출생부터 11세까지의 ‘유년기’, 자아를 발견하는 12세부터 20세까지의 ‘청소년기’, 자기발전과 헌신의 ‘성년기’(초기 20~35세, 중기 35~50세, 후기 51~70세), 그리고 지혜와 베풂으로 봉사하는 ‘노년기’(71~사망, 말기 성년기)로 나뉜다. 이런 인간의 정체성이나 일생의 의미가 제4차 산업혁명기를 거치면서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 남·여의 평균 기대수명이 세계 1위

진료기술과 의료 서비스의 발달은 평균 수명을 꾸준히 증가시키고 있으며 이런 추세는 계속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 인구의 사망률과 기대수명 예측은 건강보험과 연금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 국가가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변화지표이다. 최근 영국 임피리얼 대학교 연구진이 세계 35개 선진 산업국가를 대상으로 2010년 대비 2030년에 기대수명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출생 시점과 65세 시점을 기준으로 조사 분석한 결과를 <란셋(Lancet)> 온라인 판에 발표했다. Lancet 2017; 389: 1323–35; http://dx.doi.org/10.1016/S0140-6736(16)32381-9

1960년 이래로 변해온 평균수명 데이터를 기준으로 베이지안(Bayesian) 모델 평균법으로 예측한 이 결과에 따르면 2030년이 되면 한국 남성과 여성 모두 세계에서 가장 기대수명이 높은 국가로 바뀐다는 평가이다. 특히 2030년에 태어날 한국 여성의 평균 기대수명은 약 91세로 이는 평균 기대수명이 90세 장벽을 깬 첫 번째 연구사례이다. 2030년 탄생할 남성의 평균수명은 84세이다. 또한 2030년에 65세가 되는 남·여의 여명은 각기 24년과 19년이었는데 이는 1965년생 여성이 89세까지 그리고 남성은 84세까지 살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결과이다.지금 이 통계치가 전망하는 대로만 믿어도 대한민국 성인들은 후기성년기인 5,60대에 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일자리 전략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그런데 제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올 생명공학 기술발달은 설상가상으로 70대 이후의 말기 성년기의 경제활동까지도 대비해야 한다는 경종을 울리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의하면 OECD국가의 사망 원인은 88%가 후천성 질병 즉, 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폐렴, 당뇨, 간 질환, 고혈압성 질환 등에 있다. 즉 생활환경이나 생활습관으로 인해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발생하는 질병이다. 예를 들면 암 발생의 원인 중에서 70~80%는 환경 및 생활양식 등 산발적인 요인에 의하고, 5~15%는 유전적 증거가 없는 가족력 그리고 10~15%만이 개인적 유전적 요인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유전성 암은 2~3세대에 걸쳐 반복적인 암 패턴을 보이기 때문에 주목해야 하고 가족암은 밝혀지지 않은 유전적 규성요인에 근거한다고 보고 있다. 산발성 암은 사람의 생명에 축적되는 자발적인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하는 암을 말하는데 산발성 암 발병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들은 노화, 생활 습관 또는 환경 노출 등이다. 유전자의 산발성 돌연변이는 DNA 염기순서의 변화를 기반으로 하는 유전학과는 달리 후성유전을 일으키며 세포 표현 또는 유전자 발현의 변화에 의한다. DNA, RNA, 단백질로 구성된 거대분자복합체인 클로마틴(염색질)이 후성유전학적 화학변화 즉 히스톤의 메틸화와 아세틸화를 일으켜 국소적으로 염색질 구조가 바뀌게 된다. 염색질의 구조변화는 효소와 상호작용해 단백질을 발현하는 DNA 절편인 엑손과 그 사이를 가르고 단백질을 발현하지 않는 인트론의 구조를 바꾸어 주어 소위 후성유전 특성을 나타낸다.

 

 

유전자 분석에 의한 맞춤질병 예방이 대중화되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신생기업인 컬러(Color)는 최근 30종 유전자를 대상으로 암 발생 가능성을 유전적으로 평가해주는 시험을 건강보험으로 접수하기로 했다. 대형 보험사인 유나이티드 헬스캐어(United Healthcare)와 캘리포니아 블루 실드(Blue Shield)가 공동으로 1억2000만명이 넘는 보험가입자들을 대상으로 의료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칼라는 자기부담금으로 249달러만 내면 BRCA1과 BRCA2를 포함한 가장 흔한 유형의 30개의 유전자를 분석해 여성과 남성이 유방, 난소, 결장암 및 췌장암과 같은 가장 흔한 유전성 암 위험을 미리 점검해준다. 암 발병 위험을 증가시키는 돌연변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담당의사와 협의해서 조기 치료가 가능한 단계에서 암을 예방하거나 탐지하도록 고안된 개인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암 검사를 하는 이유는 암 유발 돌연변이가 존재할 경우 암 발생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BRCA1 돌연변이는 80세까지 여성의 유방암 발생 확률을 81%까지 높일 수 있다고 보고되어 있다. 또 APC 유전자 돌연변이는 80세까지 대장암 발생 확률을 70~100%까지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암 발병 위험을 증가시키는 돌연변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담당의사와 선별 검사 계획을 작성해 맞춤 치료가 가능해진다. ‘칼러’가 보험회사와 협력해 유전자 암검사 비용을 크게 낮춰줌으로써 이젠 누구나 유전자 검사로 질병을 사전에 예방하는 시대에 돌입했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유전자 분석에 의한 질병 맞춤예방은 시작에 불과하다. 알파벳의 생명공학 자회사인 칼리코(Calico)의 수석 컴퓨터 과학자인 다프네 콜러(Daphne Koller)는 최근에 구글 I/O행사에 나와서 노화를 방지하는 기술을 수년 내에 발견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녀는 노화가 죽음에 이르는 가장 위험한 요소라 전제하고 이런 질병들이 왜 40대부터 움트기 시작해 매년 위험수위가 지수 함수적으로 증가하는지 밝히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런 노화 현상을 분자 수준에서부터 전체 생명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학습하면 노화가 발생하는 원인을 분자 수준에서 이해하고 제어하는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녀는 또 현재 생명 관련 데이터는 매 7개월마다 두 배씩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빅데이터를 잘 해석할 수 있는 데이터 과학자와 생명의 본질을 잘 이해하는 생명과학자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만약 그렇다면 인류는 100세가 넘어도 젊음을 유지하고 150세 이상도 살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인류가 다루기 시작한 빅데이터 해석을 위한 인공지능 기술은 생명현상의 본질을 이해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며 노화를 억제하는 생명기술의 대변혁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제4차 산업혁명은 단순히 제조업의 혁명이 아니고 생명현상의 혁명이 될 수 있다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