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이후, 지도의 강자 구글이 우리나라 지도데이터의 반출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두 가지 여론이 팽팽하게 맞선다. 한편에서는 우리가 해외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출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주장과 다른 한편에서는 안보를 위협받을 수 있어서 응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본 칼럼에서는 두 가지 이유, 즉 지도는 왜 안보를 위협하는가와 지도가 미래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점에서 접근해 보려고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지도반출은 잘못 사용할 경우, 분명 안보를 일부 위협할 여지는 있지만 미래동력인 제4차산업혁명의 완성도를 높여가기 위해서는 일부의 우려를 감안하고라도 산업고도화를 위해 반출을 허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선 첫 번째 이유인 ‘안보’에 대한 문제를 지도의 역사적 관점에서 해석해 보고자 한다. 지도의 역사는 침략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개방한, 그래서 선진화를 먼저 이룩한 일본을 중심으로 그 이유를 되짚어 보자.

1571년, 일본의 ‘나가사키’항에 정체불명의 외국 선박이 표착을 시도한다. 포르투갈 선박이다. 마카오를 점령하고 나아가 일본으로 영역을 확장하기 위함이었다. 나가사키항에 입항하려는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선교활동과 교역, 그리고 바로 영토 확장이다. 이들은 포교활동을 하다가 1581년 추방되고 급기야 크리스찬 26명을 처형하기에 이른다. 당시 일본은 쇄국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개방을 요구한 나라는 네덜란드인데 그때가 1641년이다. 이들 역시 영토 확장을 위해 탐험하다 이곳 나가사키항에 표착한다. 일본은 포르투갈의 포교활동에서 얻은 교훈으로 이들을 인공섬 ‘데지마섬’에 제한적으로 거주하도록 허락한다. 네덜란드가 이곳까지 오게 된 도구는 당시로서는 서쪽 지역을 그려넣은 ‘지도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에 이어 나가사키항에 들어온 나라는 영국이며 1854년의 일이다. 이들은 일영(日英)화친조약(Anglo-Japanese Friendship Treaty)을 체결했다. 이후 일러화친조약, 일미수호통상조약 등이 연이어 체결된다. 이들 나라의 개항요구 목적은 명목상 화친, 혹은 무역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영토 확장에 있었다.

일본은 이렇게 외세의 개항요구에 굴복해서 반강제적으로 개항했지만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에 개항을 요구해 결국 강화도조약을 이끌어낸다. 그때가 1876년이다. 당시 일본이 조선에 요구한 조건이 바로 해변 측량이다. 즉, 침략을 위한 지도 만들기의 일환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은 어떤 나라인가? 포르투갈은 15~16세기에 세계 최대의 영토를 가진 나라다. 이후 18세기 중반 나폴레옹의 침략과 브라질의 독립 이후 국력이 쇠퇴했지만 이전까지는 해양왕국의 지위를 가진 나라다. 정확한 해상지도를 먼저 가진 덕분이다. 네덜란드가 포르투갈에 스파이를 보내 브라질 해안을 지나 희망봉까지 가는 항로지도를 훔쳐온 것만 봐도 당시 포르투갈이 지도 선진국임을 가늠하게 한다.

네덜란드도 측각기(測角器)를 사용해서 처음으로 삼각측량을 해 과학적인 측량에 의한 지도작성법을 고안해냈으며 나중에 방위판과 직선을 이용해 만든 ‘메르카토르’ 지도(1569년)로 발전한다. 이러한 고도화된 지도 덕분에 무역을 통해 대표상품인 청어를 수출할 수 있었고 더불어 선박건조기술과 항해술이 발달하는 계기가 됐다.

영국은 어떤가? 당시 영국은 양을 쳐서 생활을 이어가던 유럽의 변방에 불과한 나라였다. 그런데 어떻게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됐을까? 유럽 강대국들이 아시아로 진출할 때, 영국은 인도로 진출해 교두보를 만들었다. 영국이 인도 땅을 밟아보니 그곳 인도에는 목화재배가 주 산업이었는데 양모보다 자원이 풍부한 데다 목화솜이 더 따뜻해서 이를 자국으로 들여다 면직물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이 면직물을 대량생산하기 위해 직조기계를 발명했고 컨베이어 벨트가 도입되면서 생산성이 크게 향상됐다. 유통을 신속하게 하기 위해 증기기관차를 만든 것은 산업혁명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바로 2차산업혁명 시대를 연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면직물은 유럽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감으로써 동방무역의 최강자로 떠오르게 되고, 그때 인도의 면직물을 효과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만든 지도가 바로 ‘힌두스탄 지도’다.

즉, 해양지도 개발▶인도 진출▶ 대규모 목화밭 발견▶ 면직물 수입 생산▶직조기계 개발로 대량생산 체계구축 ▶신속‧대량 유통을 위한 증기기관차 발명▶제2차산업혁명 견인▶유럽 변방에서 최강국으로 급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1935년, 인류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나일론의 발명 후로 면직물 수요가 줄어서 영향력이 점점 쇠퇴하기 전까지는 결과적으로 지도가 세계를 호령하는 대국으로 이끈 것이다.

1차산업혁명에서 2차산업혁명을 이끈 것은 이렇듯 지도로부터 출발했다. 정보혁명인 3차산업 역시 종이지도에서 디지털지도로 바뀌었을 뿐 지도가 그 역사를 새로 썼다. 인터넷의 출현이 그것이다. 인터넷이라는 지도 기반의 시스템은 국가적 무경계를 선도하며 다양한 정보를 얹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해냈다. 기존의 오프라인 기반에서 전에 없던 새로운 사이버시장을 개발해낸 것이다.

1969년, 미국 국방성이 4개 학교를 연결하는 ‘아르파넷’을 시작으로 한 인터넷의 개발로 미국은 전 세계의 사이버시장을 장악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제4차산업 역시 디지털 지도가 핵심기반이다. 제4차산업혁명을 선도할 ICBM 플랫폼은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Cloud), 빅데이터(BigData), 모바일(Mobile)을 통합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혁명적 플랫폼이다.

 

만일 사물인터넷에 디지털지도가 없다면? 만일 자율주행차에 지도가 없다면? 만일 휴대폰에 지도가 없다면? 당연히 상용화가 불가하거나 시장이 크게 축소될 수밖에 없다. 아니 혁명이 아니라 일반화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지도는 산업혁명기마다 오프라인 혹은 온라인 영토 확장과 교역에 절대적인 기반도구가 된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자. 제4차산업혁명을 앞다퉈 얘기하고 있지만 대자본만이 접근할 수 있는 사업들만 소개할 뿐 스타트업이 혹은 국민 누구나 접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디테일이 없다. 직업도 코딩이니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직업이 유망하다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깜깜하다. 그렇다면 지도도 하나의 소프트웨어이며 전문가가 해야 할 직무인데 왜 어떻게 일반 국민이 혹은 스타트업의 접근이 가능할까? 그것은 지도를 무료로 얻을 수 있고, 범용화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지도는 크게 지형도(일반도)와 주제도로 나뉜다. 지형도는 지표면의 형태와 그 위에 분포하는 사상(事象)을 공통으로 표현한 지도이며 각종 목적에 기본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다목적 지도다. 반면에 주제도는 특정 주제에 대해서 상세하게 표현한 지도를 말하며 지적도, 기후도, 관광도, 인구분포도처럼 쓰임새에 따라 만들어진 지도가 여기에 해당된다.

스타트업이 주목해야 할 지도는 바로 주제도다. 지형도에다 필요한 레이어(Layer)를 겹쳐 새로운 정보서비스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그 사용처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요즘 흔하게 접하는 사업모델인 공유공간 플랫폼, 배달서비스앱, 여행정보, 숙박정보 등의 비즈니스 모델이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에 지도가 없다면 정보제공업(IP)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만일 맛집정보를 제공하고 싶다면 지형도에 몇 가지 필요한 레이어를 입히고 주제에 맞는 맛집데이터를 얹으면 되고, 낚시정보를 제공하고 싶다면 지역에 따른 장소별 날씨, 숙박정보를 입히면 바로 새로운 낚시정보 플랫폼 모델이 되는 것과 같다.

사실 제4차산업혁명의 핵심가치는 사용자의 편안함과 국민의 복지로 요약된다. 이러한 가치에 부합하는 지도 기반 서비스 모델을 하나 생각해 보자. 말 많고 탈도 많은 대기업 민간자본인 편의점을 사회적 자산화해서 이를 맵핑(Mapping)한 다음 이 동선을 따라 사회복지사를 투입해 결식아동과 독거노인을 연결하면 복지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으며, 전국의 헬스클럽을 맵핑해서 건강정보를 얹고, 이들 장소를 바우처를 활용해 노인 운동센터로 활용한다면 이 역시 복지 비즈니스 모델로 손색이 없다. 돈 적게 들이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거버넌스(Governance)형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다.

이렇듯 제4차산업혁명의 핵심자원은 지도이며 비즈니스 모델은 무한하게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지도가 개인 누구라도 접근 가능한 인프라여야 한다는 점에 대해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과거에는 지형도 하나만 구하려 해도 정부가 수천만원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금은 국토지리정보원(www.ngii.go.kr)에서 국민이면 누구나 무료로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다.

필요한 레이어도 ‘국토지리정보원->국토정보 플랫폼->즐겨찾기->수치지도관련 자료모음’에 접속하면 다운받을 수 있다. 즉, 지형도와 필수 레이어는 무료로 확보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여기에 주제를 심으려면 관련 빅데이터를 구입해서 얹으면 되고, 기술이 필요하다면 협업을 통해 창업에 이를 수 있다.

잠시 네덜란드로 다시 돌아가 보자. 왜 네덜란드는 지도강국이 되었을까? 그것은 관용의 정신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 네덜란드에는 여러 인종이 섞여 살았다. 그들은 일본처럼 박해를 당하지 않고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여러 국가에서 다양한 인종이 더 몰려들었고, 이들은 자국의 정보를 제공하고 자국과 교역을 확대해 나갔다.

네덜란드의 이러한 관용정신은 국가 간, 문화 간 연결과 융합이 가능한 계기가 됐다. 제4차산업혁명 역시 핵심 키워드는 굴뚝산업과 ICT 간의 관용을 매개로 한 ‘연결과 융합’이다. 지도는 연결과 융합의 기초 인프라이자 축소판이다. 하나의 플랫폼이 만들어진다면 이로 인해 창출되는 고용효과는 예측을 불허한다. 마치 배달앱 하나가 수만명의 고용효과를 내고 에어비앤비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듯이 지도 기반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은 4차산업혁명을 선도할 것이며 일자리 창출의 핵심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