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브로드밴드가 전화 및 초고속 인터넷, IPTV 설치의 유지보수 업무를 실시하는 위탁업체 직원 5200명을 자회사 직원으로 정규직 채용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위탁업체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 의미있는 이정표를 마련한 직후 SK브로드밴드도 비슷한 행보를 보여 눈길을 끌었으나, 의외의 논란이 발목을 잡는 분위기다.

SK브로드밴드 위탁업체 대표로 구성된 SK브로드밴드전국센터협의회는 22일 센터장 회의를 열어 SK브로드밴드의 정규직 채용을 인정할 수 없고, 이를 막기 위해 법원에 금지 가처분 신청 소송을 적극적으로 검토한다고 밝혔다.

SK브로드밴드가 1년 단위로 계약을 맺은 위탁업체와의 재계약을 거부하고 근로자들을 본사 정규직으로 빼간 것은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는 주장이다. 23일 SK브로드밴드가 이사회를 통해 5200명 직원의 정규직 채용을 결정할 것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일종의 무력시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 출처=SK브로드밴드

사실 이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지금까지 SK브로드밴드를 비롯한 중요 IPTV 업체, 케이블 사업자들은 위탁업체와 계약을 맺고 시설의 유지보수 업무를 실시한 바 있다. 그리고 실제 일하는 근로자의 신분은 개인 사업자에 불과한 도급기사와, 위탁업체에 직접 고용된 직원으로 나뉜다.

특히 도급기사의 경우 문제가 되어 왔다. 일종의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비판이 나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행 정보통신공사업법에 따르면 전신주 탭에서 가입자의 집까지 케이블을 연결하는 국선인입선로 공사를 하려면 일정한 자격요건이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개인 사업자인 도급기사가 업계 관행이라는 미명하에 업무를 보는 것은 위법이라는 주장까지 나온 바 있다. 이는 추후 미래창조과학부 행정해석을 받아 인정됐다.

이런 상황에서 SK브로드밴드가 나름의 자회사를 꾸려 5200명의 위탁업체 직원을 자사 정규직 직원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하자 업계 및 노동계는 환영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위탁업체로 이뤄진 SK브로드밴드전국센터협의회 입장에서 이는 인력 빼가기로 비춰질 수 있으며, 나아가 회사 존립을 걱정해야할 상황이다. 원청인 SK브로드밴드가 재계약을 거부하고 근로자만 데려가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3월 SK브로드밴드전국센터협의회는 도급기사를 자사 직원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종합하자면 도급기사에 대한 논란이 여전한 상태에서 위탁업체, 특히 SK브로드밴드 위탁업체는 도급기사를 자사 직원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실시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하던 상황에서 SK브로드밴드가 인력을 빼가는 상황과 직면하게 됐다.

당연히 SK브로드밴드전국센터협의회는 강경한 입장이다. SK브로드밴드의 정책은 근로자 빼 가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나아가 협의회는 "다양한 노력으로 고용 안전성을 높였으며, 근로자 입장에서 SK브로드밴드 자회사로 들어간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근로자들로 구성된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지부는 SK브로드밴드의 정책에 환영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노조지부는 "직접고용을 환영하며, 이를 바탕으로 열악한 노동조건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주장했다.

SK브로드밴드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SK브로드밴드는 "직접고용으로 당장 월급이 올라가는 등의 가시적인 성과는 천천히 나오겠지만, 직업환경보장으로 근로자의 안정적인 근무를 지원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며 "이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규직 전환을 준비했으며, 예정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SK브로드밴드가 문재인정부와 코드를 맞추기 위해 5200명 정규직 전환이라는 카드를 던졌다는 말도 나온다. 최근까지 논란이 되었던 SK테크엑스와 모 스타트업의 분쟁 당시에도 이러한 주장이 나온 바 있다. 하지만 SK브로드밴드는 "장기적 관점에서 모두가 윈윈하는 방식을 고민했고,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로드맵이 가능할 것인가라는 고민의 끝에 이번 정규직 전환을 결정했다"라며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