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끄는 비전펀드가 지난 21일 공식 출범했다. 펀드 주도권을 두고 약간의 마찰이 생겨 예정보다 시작 일자가 늦어지는 한편, 출범 직전 불거진 소프트뱅크 전현직 임원의 비리사태로 다소 분위기가 가라앉았으나 업계의 관심은 상당한 편이다.

정식 명칭은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며 손정의 회장은 약 30개에 달하는 회사를 예의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아가 향후 6개월간 총 1000억달러의 자금을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비전펀드에 참여한 기업은 대략 10여개로 알려졌으나 구체적인 숫자와 출자액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현재까지 알려진 기업과 이들의 상황을 바탕으로 추후 비전펀드의 행보를 비록 흐릿하지만 나름 전망할 수 있다.

▲ 손정의 회장. 출처=위키디피아

누가, 왜?
먼저 소프트뱅크다. 확보한 영국의 암 지분을 비전펀드에 넘긴 상황에서 소프트뱅크는 4차 산업혁명의 생태계적 관점에서 비전펀드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손정의 회장은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열린 암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기자들과 만나 "PC와 모바일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단언한 바 있다. 이어 4차 산업혁명의 중심인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이 현존하는 모든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주장과 함께 "앞으로 제2의 캄브리아기(紀) 폭발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해 관심을 모았다.

이를 비전펀드로 어떻게 구현할까? 손정의 회장에 따르면 앞으로 냉장고 및 세탁기, 자동차 등 모든 기기는 하나로 연결되어 유기적인 생태계를 이룰 전망이다. 무려 1조 개가 넘는 기기가 창출하는 막대한 빅데이터는 IT를 넘어 현존하는 모든 산업을 재편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러한 현상은 모든 영역에서 벌어질 것이며, 우리가 절대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정신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결국 각각의 기기가 유기적으로 묶이는 사물인터넷 시대를 배경으로 빅데이터를 통해 의미있는 인사이트가 창출되고, 이를 인공지능이 핵심을 잡아 클라우드와 정보를 교환하는 4차 산업혁명으로 도출하는 방법론이다. 소프트뱅크는 이 지점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각각의 기술 및 플랫폼을 각개격파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지나치게 지엽적이며, 소프트뱅크가 꿈꾸는 미래와 거리가 멀다. 결국 큰 그림을 그리고 나름의 조각을 맞춰야 하는 상황에서 비전펀드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을 전망이다.

소프트뱅크벤처스와 네이버의 조합도 가볍게 살필 필요가 있다. 지난해 11월 소프트뱅크벤처스는 네이버 등과 함께 500억원 규모의 에스비넥스트미디어이노베이션펀드를 조성했다.

▲ 네이버=소프트뱅크벤처스 합작 펀드 출범. 출처=네이버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네이버는 서비스 중심의 기본적인 사업 모델을 여전히 추구하면서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판 짜기를 시도하는 한편, 나아가 글로벌 경영으로 다양한 역량을 묶어낼 수 있다. 당연히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이를 적절히 활용하며 글로벌 플랫폼 장악력을 강화할 수 있다.

비전펀드와 에스비넥스트미디어이노베이션펀드는 별개의 사안이지만, 각각의 상황에서 소프트뱅크가 취하는 스탠스를 보면 비전펀드를 중심으로 전개될 앞으로의 상황도 전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참고로 네이버는 최근 해당 펀드에 500억원을 추가로 출자했으며,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을 숨기지 않은 바 있다. 이 역시 소프트뱅크 입장에서는 환영할만한 일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펀드는 어떨까. 450억달러를 출자한 국부펀드는 오일머니 이상의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노력으로 봐야 한다. 최근 국제유가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미국 셰일가스 혁명의 공격도 멈추지 않는 상황이다. 결국 오일머니에 나라의 운명을 맡길 수 없는 상태에서 국부펀드는 초연결 인프라에 승부수를 던졌다.

실제로 비전펀드 출범 소식이 알려진 직후 사우디아라비아 왕위 계승 서열 2위이자 국방장관인 모하메드 빈 살만 부(副)왕세자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자국의 포스트 석유 시대를 명확하게 설명한 바 있다. 당시 그는 "포스트 오일의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국부펀드는 공유경제 온디맨드 기업 우버에게 35억달러의 투자를 단행하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국부펀드는 비전펀드에 참여해 오일머니 이상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타진할 전망이다.

애플도 비전펀드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10억달러 출자를 단행한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다만 애플의 경우 비전펀드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먼저 전통적으로 애플과 소프트뱅크는 아이폰 일본 출시 당시부터 긴밀하게 협력하던 사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시간을 돌려 2001년, 손정의 회장은 큰 시련을 맞이하게 된다. 1999년 나스닥재팬을 설립하고 2000년 소프트뱅크코리아를 통해 보안 전문 업체 시큐어소프트, 알리바바코리아, 헤이아니타코리아, 소프트뱅크 웹인스티튜트 등 한국의 4개 인터넷 업체에 109억원을 투자하며 존재감을 알리는 한편 일본은행 사상 처음으로 IT 업종이 은행업에 진출하는 첫 사례를 남기기도 했으나, 2000년대 초반 글로벌 닷컴버블 파동으로 추락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은 2001년 약 9000억원의 평가손실을 기록하며 흔들렸으며 야심차게 설립했던 나스닥재팬도 2002년 말 문을 닫았다. 심지어 2003년에는 소프트뱅크 주가가 94% 폭락하며 손정의는 '포브스'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많은 재산을 잃은 부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당시 손정의 회장의 추락을 막아주었던 일등공신이 애플이다. 손정의 회장은 어려움 속에서도 재팬텔레콤과 함께 당시 일본 꼴찌 통신사던 보다폰 일본법인을 인수하며 통신계로 보폭을 넓혔으며 그 과정에서 현지 시장을 노리던 스티브 잡스의 애플과 협력했기 때문이다. 애플 입장에서는 일본 진출을 준비하며 1위 통신사가 아닌, '아쉬울 것이 많은 손정의 회장'을 파트너로 낙점했고 그 과정에서 양 사는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이러한 연결은 스티브 잡스 시대가 저물고 팀 쿡의 시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물론 이러한 인연만으로 애플이 비전펀드에 출자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정식으로 알려진 내용은 없지만 애플은 현재 포스트 아이폰을 모색하는 중이며, 이를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다양한 방법론을 모색하는 중이다. 애플카를 비롯해 증강현실까지 진출하는 애플 입장에서 막대한 사내 유보금을 통해 비전펀드에 다리를 걸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폭스콘의 경우, 세계의 하청업체라는 별명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사업을 펼치는 한편 일본의 도시바까지 넘보는 상황이다. 이 지점에서 폭스콘은 소프트뱅크의 암과 공동으로 중국 남부 선전에 반도체 설계 거점을 만들기로 합의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즉 연결고리도 확실하고, 폭스콘의 미래전략에도 비전펀드는 명확한 방향설정을 제공한다. 지난해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폭스콘이 알리바바와 함께 소프트뱅크 계열사인 소프트뱅크로봇홀딩스(SBRH)에 각각 145억엔(약 13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본의 샤프는 폭스콘의 전략과 함께 이해할 수 있을 전망이다.

어떻게 흘러갈까?
손정의 회장은 투자의 귀재로 불린다. 그가 손을 댄 곳은 대부분 성공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승부사적 기질도 충분하다. 2000년대 초 어려움에 직면했을 당시, 그는 계열사를 정리하며 내실을 다지는 한편 야후재팬을 다시 일본 도쿄 증시 1부에 상장시키며 기회를 노렸다. 시가총액이 1/100로 줄어들자 거칠게 항의하는 주주들을 대상으로 장장 6시간 동안 설득한 것은 이제 전설로 남았다.

2004년 자신을 찾아온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에게 6분의 면담을 끝으로 2000만 달러를 투자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이러한 그의 기질은 비전펀드의 방식에도 잘 녹여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그림을 짜는 능력. 비전펀드의 핵심이기도 한 퍼즐 맞추기도 사실 손정의 회장의 특기다. 그는 리프트, 디디추싱, 그랩택시 등에 전방위적 투자를 단행하며 일종의 온디맨드 블록화를 설정해 반 우대 진영의 막후 실력자로 활동하는 중이다. 이러한 방식은 새로운 영역에 진출해 판을 흔드는 그의 후각을 잘 보여준다는 평가다. 비전펀드에서 '좋아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투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손정의 회장은 판을 짤 당시 필요한 조합을 큰 그림 아래에서 그리며, 일종의 진영을 구축하는 것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전펀드의 방향성에도 일부 드러날 여지가 있다.

이러한 전망은 '활용의 가치가 있으면 함께 서며, 그렇지 않으면 철저하게 대립하거나 이용하는 대상'으로 세상을 보는 손정의 회장의 전략과도 덧대어진다. 반도체 시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인텔이 파운드리는 물론 메모리 반도체, 나아가 뉴메모리 반도체 시장까지 거침없이 진격하는 상황에서 손정의 회장이 인수한 암이 삼성전자와 반 인텔 전선을 강화하고 있다. 모바일 AP 영역에서 긴밀하게 협조했던 암과 삼성전자는 반도체 거인 인텔의 공습에 대비해 더욱 돈독한 협력을 추구할 방침이다. 지난해 손정의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전격적 만남의 배경에도 이러한 복선이 깔려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 관건은 암이 보유한 비휘발성 메모리(Non-volatile memory: NV램) 기술과 인텔의 3D 크로스포인트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가운데, 생산성을 가진 삼성전자가 암과 어떻게 진영을 짜느냐였다. 하지만 손정의 회장이 이재용 부회장과 만났다고 마냥 삼성만의 친구는 아니었다. 노골적인 삼성타도를 외치는 폭스콘과 협력해 반도체 인프라 공동전선을 꾸렸기 때문이다.

결국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비전펀드는 여백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 아닌, 일종의 블록화 그림을 그리며 합종연횡을 거듭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주의깊게 봐야 할 지점은 미국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에 방문할 당시 비전펀드 출범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손정의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그를 만나 미국 내 일자리 창출에 힘 쓰겠다는 공언을 한 바 있다. 이러한 방향성이 초창기 비전펀드의 목적지를 미국으로 둔다는 말도 나온다.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