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말 같지도 않지만 정말 있었던 이야기 하나 해 보기로 한다.

어떤 마을에 아주 좋은 환경에 접해 있는 덕분에 입주만 하면 무엇이든지 풍요하여 살기 편안한 건물이 있었다. 그 건물에 입주해서 사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풍부하다 보니 아무런 욕심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웃 마을에 살던 사람이 자기가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러니 건물 앞에 노점을 하나 차리고 건물에 입주한 사람들과 자신이 살던 마을 사람들과 사이에서 서로 물건을 사고 팔게 하는 중재 역할도 하고,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욕심 없는 입주자들은 자신들의 마음만 믿고 허락하고 말았다.

노점상은 처음에는 자신이 말한 바와 같이 성실하게 잘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입주자들에게는 불리한 조건으로 상거래를 하더니, 급기야는 자신이 살던 마을 폭력배들을 데리고 쳐들어와서 입주자들을 폭행하고 죽이고, 심지어는 입주자 일가족을 죽여 그들 소유 지분을 강탈하는 등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참혹한 짓을 하고 만다.

결국 입주자들은 그 건물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노점상 마을 폭력배들은 건물 이름까지 바꿔서 자기들의 소유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입주자들의 이름까지 폭력배들의 성과 이름처럼 바꾸게 한 후, 그 건물에서 청소를 하거나 아니면 새로 주인이 된 폭력배들에게 구걸을 해서 먹고 사는 신세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원래 입주자들은 자신이 이 건물의 전 주인이라는 것을 밝히면 맞아 죽는 까닭에, 죽기 싫어서 신분을 숨긴 채 겨우 살아가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고 원래 그 건물에 입주해 있던 입주자들의 딱한 사정을 또 다른 이웃들이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들이 모르는 체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노점상 마을 폭력배들이 건물을 침탈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건물 일부를 차지하는 바람에 그 것을 내 놓기 싫어서 나 몰라라 하고 있는 부류가 있고, 또 다른 이유는 도와주고는 싶지만 힘이 없어 자기도 땅을 일부 빼앗기고도 해결하지 못한 처지라서 도와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사실 본래 입주자들이 권리를 되찾을 기회가 있기는 있었다. 노점상 마을 사람들이 너무 욕심을 부리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바람에 다른 이웃들이 단합해서 그들을 징벌할 때, 그 이웃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원래 입주자들이 착하기만한데다가 자신들만이 통용하던 언어는 있었지만 문자가 없던 바람에 자신들의 권리를 증명할 수 있는 그 무엇도 남겨놓지 못한 약점 못지않게, 노점상 일당을 징벌했던 다른 이웃들도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느라고 원래 입주자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나마 여러 이웃들이 약한 이웃들을 보호하자고 나서는 바람에, 자신들이 원래 주인이라고 말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자신들이 당했던 죽음의 고비를 넘기기 위해서 신분을 속이고 살던 시대에 젖어서 신분을 속이고 살고 있다. 물론 일부 입주자들은 어떻게든 자신들의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욕심 많다고 징벌을 당했던 노점상 마을 사람들이 어느새 다시 힘을 길러서 자신들을 도와주려던 사람들을 좌지우지 하는 바람에 멀리 사는 이웃은커녕 가까이 사는 이웃들까지 자신들을 도와주려고 하지 않고 노점상들의 폭력배 눈치만 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건물에 대한 권리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비록 일부 사람들이 추진하는 일이기도 하고, 자신들의 문자가 없어서 근거를 남기지 못하는 바람에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자신들의 건물을 되찾아야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지고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다.

이 이야기는 1869년 홋카이도가 일본 판적봉환 당시 일제에 병탄된 것을 그려본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