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올해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분기 사상 최대 매출, 영업이익, 순이익을 기록하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장기호황을 바탕으로 뻗어갈 일만 남았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다만 상황이 좋아도 항상 냉정한 스탠스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 분기 대비 각각 17%, 61% 증가했다.

▲ SK하이닉스 경영실적. 출처=SK하이닉스

화려한 트리플 크라운
SK하이닉스는 25일 올해 1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영업이익 2조4676억원, 매출 6조2895억원, 순이익 1조8987억원을 기록했다. 순이익률이 30%가 될 정도로 엄청난 성적이다. 특히 1분기의 경우 계절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약한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성적을 거둔 대목에 눈길이 간다. 작년 하반기 이후 계속된 우호적인 시장 환경으로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했기에 가능했다. 메모리 반도체 장기호황의 덕분이라는 뜻이다.

자세히 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주력인 D램이다. 1분기 D램 출하량은 연초 낮은 재고 수준과 제한적인 공급 증가로 인해 전 분기 대비 5% 감소했기 때문이다. 다만 평균판매가격은 전반적인 공급부족 상황이 지속되며 D램 전 제품의 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에 오히려 실적상승의 요인이 됐다.

PC와 서버 D램 가격도 큰 폭으로 상승해 전 분기 대비 24% 상승했다. 낸드플래시 역시 모바일 및 SSD 채용 확대로 수요가 증가했으나 낮은 재고 수준 등으로 공급은 제한적이었다. 이에 따라 출하량은 전 분기 대비 3% 줄어들었으며, 평균판매가격은 전 제품의 가격이 강세를 나타내 15% 상승했다. 물량 자체가 줄어들었지만 시장의 수요가 높아 가격 자체가 올라간 것이 주효했다는 뜻이다.

그런 이유로 올해 D램 시장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IT 기기의 판매량 증가보다는 D램 채용량 확대가 수요를 견인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모바일 듀얼 카메라와 AI 기능 향상으로 LPDDR4X와 같은 고성능 모바일 제품 채용이 늘어나고,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의 본격적인 확대와 고사양 게이밍 PC 판매 증가 등이 D램 탑재량 증가를 견인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금까지 나왔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장기호황 배경이다.

낸드플래시 역시 모바일과 클라우드 시장에서 수요 증가 추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3D 낸드플래시 제품은 엔터프라이즈 SSD, 고용량 클라이언트 SSD, 최신 스마트폰 등 고용량을 필요로 하는 제품 중심으로 채용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앞으로 SK하이닉스는 D램 20나노 초반급 제품 양산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차세대 10나노급 D램 제품은 하반기에 양산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낸드플래시는 지난해 연말 양산을 시작한 48단 3D 제품과 올해 1분기에 개발 완료해 하반기부터 양산할 계획인 72단 3D 제품을 중심으로 고용량 모바일과 SSD 시장에 공급할 방침이다.

▲ LPDDR4X(Low Power DDR4X) 모바일 D램. 출처=SK하이닉스

D램에 이어 낸드로
SK하이닉스는 D램을 주력으로 한다. 이 지점에서 기술 고도화에도 빠르게 나서고 있다. 지난 1월 등장한 세계 최대 용량인 8GB(기가바이트) LPDDR4X(Low Power DDR4X) 모바일 D램이 대표적이다. 16Gb(기가비트) 칩을 기반으로 구현됐으며, 두 개의 8Gb 단품을 연결한 듀얼채널(Dual Channel) 16Gb 칩을 4단으로 쌓았다는 설명이다.

LPDDR4X는 기존 LPDDR4 대비 전력효율을 20% 가량 개선한 최저전력 규격이며, 8GB는 LPDDR4X 규격 기준 세계 최대 용량이다. D램의 데이터입출력(I/O) 동작전압을 기존 LPDDR4의 1.1V 대비 0.6V로 낮춰 전체적인 전류 소모를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시장조사기관 IHS 마킷(IHS Markit)에 따르면, 하이엔드 스마트폰의 기기당 모바일 D램 평균 탑재용량은 올해 3.5GB에서 2020년 6.9GB로 연평균 25% 이상의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불어 하이엔드 스마트폰 시장에서 8GB 모바일 D램을 탑재하는 수요는 올해부터 발생해 2020년에는 63%로 최대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지점에서 D램에 집중하는 SK하이닉스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된다.글로벌 점유율 기준 SK하이닉스의 순위는 삼성전자에 이어 2위다.

하지만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D램에 이어 최근 각광을 받는 곳은 낸드플래시다. 시장조사기관 IHS테크놀로지에 따르면 2015년부터 823억 기가바이트(GB)이던 낸드플래시 시장은 2020년 5084억 GB까지 확대되는 등 연평균 성장율이 44%에 달하며 2015년 약 570억 기가비트(Gb) 였던 D램 시장 역시 2020년 1750억 Gb로 연평균 25.2%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해 12월 낸드플래시 수요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충청북도 청주에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8월 M14 준공식에서 선언했던 중장기 투자계획의 연장선이다. 당시 SK하이닉스는 무려 46조원을 투입해 경기도 이천과 충북 청주에 M14를 포함한 총 3개의 반도체 공장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힌바 있다.

현재 SK하이닉스는 청주와 이천, 중국 우시에 사업장을 가지고 있다. 2005년 가동된 이천의 M10은 D램을 생산하며 M14의 아래층은 D램, 윗층은 3D 낸드플래시를 맡고 있다. 여기에 청주 공장의 M11, M12는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있다. 2019년 청주의 신규 공장은 3D 낸드플래시 전용으로 쓰인다. 여기에 중국의 우시는 SK하이닉스 D램 물량의 절반을 생산해왔다.

현 상황에서 SK하이닉스는 우시에 D램을, 청주에 낸드플래시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2006년 준공된 우시공장은 향후 미세공정 전환에 필요한 공간이 추가 확보되지 않으면 여유공간이 부족해져 생산량 감소 등 효율 저하가 불가피하게 된다. 이에 SK하이닉스는 2017년 7월부터 2019년 4월까지 9천 500억 원을 투입해 클린룸 확장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실적 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SK하이닉스는 M14 2층 낸드플래시 장비가 입고되었으며 절반 정도 사용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 인수전에 나서는 대목도 주의깊게 봐야 한다.

▲ 출처=픽사베이

현재 도시바는 분식회계와 초유의 원전사업 손실로 메모리 반도체 매각을 시도하고 있다. 최초 두각을 보였던 곳은 대만의 홍하이다. 일본 디스플레이의 자존심 샤프를 품었던 홍하이는 필요하다면 SK하이닉스나 자국의 TSMC와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점까지 알리며 열정을 보였다.

다만 일본정부가 아시아보다 미국 기업의 인수를 원하며 방향 자체가 틀어지는 분위기다. 이미 도시바와 공동전선을 짜고있는 웨스턴디지털은 미국 기업이라는 메리트를 바탕으로 나름의 현지화 정책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SK하이닉스도 포기하지 않을 기세다. 최태원 SK회장이 24일 일본으로 출국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최 회장은 출국 직전 기자들과 만나 "도시바와 이해관계자들과 협업을 통해 여러 방안을 찾겠다"는 말로 각오를 다졌다. 그룹으로 보면 지난해 반도체용 특수가스 제조업체인 SK머티리얼즈를 인수하며 반도체 소재 사업에 진출했으며, 최근 반도체 칩의 핵심 기초소재인 반도체용 웨이퍼를 국내에서 유일하게 제조∙판매하는 전문기업인 LG실트론까지 품어낸 상태다. 낸드플래시에 대한 그룹 차원의 관심은 큰 그림의 연장선이다.

꽃길만 걸을까? 확률이 높지만..
SK하이닉스는 컨퍼런스 콜을 통해 3D 낸드플래시 양산 비중에 있어 올해 2D를 넘길 것이라고 전했다. 완벽한 체질개선을 목표로 하겠다는 뜻이다. 3D 낸드플래시의 경우 올해 M14에 신규 클린룸이 건설되면, 연말부터 2D 비중을 넘긴다는 각오다. D램은 여전하다. SK하이닉스는 스마트폰 고사양화로 D램의 수요가 올라갈 가능성이 높으며, 이를 바탕으로 기본적인 실적을 보장할 수 있다고 컨퍼런스 콜에서 밝혔다. 물론 서버 수요도 전체 D램의 수요를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하반기에도 이러한 기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하반기에도 D램과 낸드플래시의 공급 부족이 이어질 것"이라며 장기호황에 자신감을 보였다.

다만 일각의 우려도 있다. SK하이닉스의 호실적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장기호황에 기댄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보였던 중국 업체의 박리다매 전략에 따른 시장 교란 상황은 주의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또 낸드플래시 역량 강화에 있어 도시바 인수에 성공할 경우, 이를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 재무부담 등이다. 이를 두고 원종현 한국신용평가 연구위원은 지난 3월 SK하이닉스가 도시바 사업부를 인수할 경우 재무 부담은 즉시 확대되는 반면 투자 성과는 미래로 이연돼 영업적 불확실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금액적인 이유로 단독인수가 어려운 상태라면, 부분적인 영향력 행사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가치를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역시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어려운 길이 될 수 있다.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