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기자님, 우리나라에도 독립시계제작자가 있습니다’란 제목의 이메일이 한 통 왔다. 열어 보니 정중한 인사와 함께 한 독립시계제작자를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첨부된 파일에는 직접 만든 GMT-다이버라는 제법 근사한 다이버워치의 사진과 설명도 함께 있었다. 호기심을 느껴 남겨 놓은 휴대폰 전화로 연락을 했고 일산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만나 시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 김태영 독립시계제작자이자 볼트워치 대표.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독립시계제작자라는 생소한 직업을 갖고 있다
독립시계제작자는 어디에 속하지 않고 시계를 만드는 사람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만의 디자인 설계가 있어야 한다. 특정 시계를 카피하거나 그런 것이 아닌 시계를 만드는 일을 하는 직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계의 부품부터 케이스, 스트랩 등 50% 이상을 자체 제작해야 독립시계제작자라고 생각한다.

한국 시계 산업의 산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한국 시계산업은 어땠나?
호황이란 말이 제격이다. 당시 현대, 대우, 삼성 등 대기업들도 시계에 모두 붙었다. 정말 어마어마했다. 쿼츠 파동과 중국시장 개방으로 주도권이 국내에서 넘어갔다. 특히 중국에 밀리며 점점 시계산업이 힘들어졌다. 당시 제대로 대응했다면 현재 이렇게까지 암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점이 아쉽다.

2000년대 이후 수입시계 러시를 비롯해 국내 시계 산업이 더 어려워지고 있는데 볼트워치만의 돌파구는 있는가?
과거 우리나라에서 시계를 만드는 곳은 종로 아니면 남대문이었다. 당시 내가 시장에 볼 일이 있어 나가면 상인들이 미친놈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탕진하는 놈이라며 시계 제작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계다운 시계를 만드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고 이것을 알아봐 주는 사람에게 판매한다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시계다운 시계를 강조하는 이유는 가격적인 면에서는 중국 시계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끔 볼트워치를 갖고 시계 동호회나 커뮤니티 같은 곳에 가 칭찬을 받으면 스트레스가 해소된다.(웃음)

시계를 직접 만든다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무엇보다 장비 구입에 꽤 애를 먹었을 것 같다.
에피소드야 수도 없이 많다. 우선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장비가 전혀 없었다. 시간이 흘러 중국에서 만든 장비들이 수입되곤 있지만 아무래도 기술적으로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러그와 케이스 등을 직접 만드는 만큼 정밀한 장비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가의 장비를 스위스 등지에서 직접 수입해 마련했다. 그런데 장비에 결함이 생기면 골치가 아프다. 현지로 장비를 보내야하기 때문에 며칠간 일을 쉰 적도 있다.

 

▲ 볼트워치 GMT-다이버.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산전수전 겪으면서 만든 볼트워치 GMT-다이버를 소개해달라
공정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 이해해달라.(웃음) 첫 번째로 시장에 나와있는 어떤 시계보다 튼튼하다고 자부한다. 자체적으로 방수, 충격 등 다양한 테스트를 했고 여러 상황을 고려해 만든 만큼 내구성은 보장한다. 두 번째는 다이버들이 사용하기 편한 시계다. 방수는 물론 인덱스의 야광 처리까지 마무리해 바닷속에서 존재감을 발휘한다. 세 번째는 마감이다. 앞서 언급한 장비로 손수 꼼꼼히 마감해 럭셔리 워치 못지않은 피니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GMT-다이버의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
장점이 있는 만큼 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최대한 완벽하게 만들려고 했지만 데이트창이 작아 시인성이 낮아진 것이다. 탑재된 ETA 2836을 수정하면서 생긴 것이다. 사실 데이트창이 작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렇게 내려갈 줄 몰랐다. GMT 컴플리케이션을 6시 방향에 마련하면서 데이트창이 내려간 것인데 수정 가능하다. 다음번 시계에는 수정보완해 보다 완벽한 시계를 선보일 것이다.

탑재된 무브먼트에 눈이 간다. 보통 중소 무브먼트 또는 중국산 무브먼트가 탑재되는데 ETA의 무브먼트를 수정보완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중국산과 ETA의 큰 차이점은 내구성과 정확도다. 중국산은 볼트워치만의 기준을 충족하기 못하기 때문에 ETA를 탑재했다. 뜬금없을 수도 있겠지만 논어에 보면 군군신신부부자자란 말이 있다. 이 말에 대입하자면 시계는 시계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격을 생각하면 중국산을 사용하는 것이 맞지만 그렇게 저렴한 시계는 만들고 싶지 않다. 시계다운 시계로 합리적인 가격을 받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이 시계인데 저렴한 부품을 사용해 만들고 싶진 않다. 최소한 200~300년은 차야 되지 않겠어요?(웃음)

다이버워치라면 국내에도 찾는 이가 제법 있을 거 같은데, 굳이 판매를 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다른 시계는 판매한 적이 있긴 하다. 파는 시계들은 아쉽게도 다이버 워치는 아니었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데일리 워치가 많다. 주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대부분이고 다이버워치는 제 머릿속에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다이버워치는 기술력과 디자인 모두 신경 써야한다. 조만간 근사한 다이버워치를 만들어 볼 계획이다.

 

▲ 김태영 독립시계제작자의 작업실.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근사한 다이버워치가 궁금하다. 후속작은 어떤 시계인지 설명해달라
저한테 기밀을 말씀해 달라는 이야기다.(웃음) 아직 확신이 선 시계는 없다. 현재 GMT를 좀 더 실용화해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가격을 낮춘 엔트리 시계를 생각하고 있다. 예를 들면 기능을 간소화하고 세공을 좀 심플하게 하는 방법 등을 생각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고객은 누구였나?
어떤 부부가 찾아온 적이 있다. 43살에 첫 아기가 태어나 너무 좋아 부인 선물을 위해 시계 제작을 의뢰했다. 디자인과 기술 등 이것저것 상의해 시계를 만들었는데 기분 좋게 만든 기억이 있다. 이 분 외에도 다양한 이유로 시계를 만들어 달라고 한 사람들이 많다. 서바이벌 동호회에서 20개 정도 시계를 만들어 준 적이 있고 자기들 개성을 표현하는 고객이 많다. 이렇게 만드는 시계의 가격은 저가들은 60~80만원, 골드가 들어가면 200~300만원 정도 한다.

김형국 이사와 친구 사이로 알고 있다. 운영하면서 의견 충돌은 없었나?
친구랑도 자주 티격태격한다. 특히 품질에 관한 이야기로 자주 토론한다. 가격과 타협하면 안된다가 철칙이다. 이 세상에 싸고 좋은 것은 없다. 가격과 타협하는 순간 품질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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