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한성숙 대표가 기자들과 만나는 상견례 자리를 28일 마련했습니다. 상견례. 솔직히 처음 그 소식을 듣고 살짝 흥분(?)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상견례는 '사람이 처음 만날 때 갖추는 예'라고 합니다. 뭔가 내밀한 느낌이 나지 않나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네이버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기자회견'이라는 명칭이 아닌 '상견례'로 표현했다면, 이번 행사에서는 한성숙 대표를 가까이서 보는 것이 아닐까! 기자회견이나 세미나가 아니라, 정말 식사를 함께 하면서 말이죠! 편안하게 막 물어 봐야지!

상견례 자리로 가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 했습니다. '출입기자도 엄청나게 많은데 어떻게 진행될까?' 부터 '무슨 말을 할까?'까지. 그래서 상견례 자리에 도착하자마자 현장의 네이버 직원에게 걱정스러운 말투로 "너무 일찍 왔네요"라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일찍 왔으니 가까운 자리에서 밥먹게 해주세요'라는 우회공격이었습니다.

뭐, 결론적으로 저 혼자 쇼했습니다. 그냥 기자회견이더군요. 연단이 있고 기자들 수 십명이 앉아 열심히 노트북 때리고 있는. 전 무엇을 상상한 것일까요. 시간이 되어 입장하던 한성숙 대표도 상견례라는 명칭을 두고 다소 겸연쩍어 했습니다. 물론 한성숙 대표가 취임 후 첫 기자들과의 만남을 가진 것이니 상견례는 맞습니다.

 

투명성과 공정성에 대하여
한성숙 대표의 발언이 시작됐습니다. 처음에는 목소리가 다소 떨렸으나 시간이 지나니 '역시 사업가'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빠르게 안정을 찾았습니다.

투명성과 공정성을 유독 강조한 지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네이버가 새로운 리더십을 투명하게 구현했다'에서 시작해 '이러한 투명함은 기술 기반 플랫폼 기업으로의 가치에도 적용이 된다'로 넘어가며 '공정한 플랫폼을 만드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결론으로 압축할 수 있어요. 간단하게 말하면 투명하고 공정하게, 네이버를 잘 운영하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실시간 검색어에 대한 변화를 예고한 것도 이러한 상황판단에 배경을 두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발 더 들어갈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일단 경영의 투명함과 플랫폼의 공정함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 것. 이는 재벌의 족벌경영이 판을 치는 국내 경제환경에서 당연히 칭찬받아야 마땅한 리더십 교체를 이룬 부분과, 플랫폼의 공정성을 무리하게 연결한 뉘앙스가 풍깁니다. 이 두 부분은 따로 분리되어야 한다고 봐요.

그렇다면 한성숙 대표는 왜 이 부분을 연결했을까요? 플랫폼 공정함을 강조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사실 당연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네이버는 현재 기술기반 플랫폼 기업을 표방하며 다양한 기술 경쟁력을 제고하고 있습니다. 파파고와 브라우저 웨일, 자율주행차까지 빠르게 진격하는 분위기에요. 기술을 매개로 포털 사업자의 플랫폼 본능을 연결하는 것이 네이버의 지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글로벌과 모바일, 스몰 비즈니스의 가치가 연결될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플랫폼의 공적인 가치. 한성숙 대표가 굳이 실시간 검색어 보완을 언급한 배경에는 기술기반 플랫폼 기업이라는 원초적인 전제를 '훼손당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니까 '믿을 수 있는 플랫폼이니, 모여라!'고 말한다는 뜻이에요. 가뜩이나 프로젝트 꽃의 강화재 성격인 분수펀드까지 공개된 상태입니다. 만약 실시간 검색어 조작이나 일삼는 플랫폼이라면 애초에 네이버가 원하는 '기술기반 플랫폼'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 한성숙 대표. 출처=네이버

진득하게 묻어나는 고민
기술기반 플랫폼 기업으로의 성과를 묻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한성숙 대표는 비교적 당차고 차분하게 설명했습니다. 다만 일각의 우려를 지울 수 없습니다.

차분하게 보겠습니다. 한성숙 대표는 기술기반 플랫폼 기업의 성과에 대해 "단기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것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여기에 지금까지 네이버랩스를 중심으로 전개된 기술 아이템을 나열했어요.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네이버가 기술기반 플랫폼 기업으로의 전환을 천명한 것은 고작 반년에 불과합니다. 물론 그 동안 키워온 기술력이 있으니 이를 바탕으로 서비스에 삽입하는 것은 간단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역시 시간이 부족합니다. 단기적인 성과물을 요구하기는 분명 무리가 있지요. 투입할 수 있는 자금의 단위가 다릅니다.

하지만 네이버가 최근 보여주는 기술은 냉정하게 말해 현재 글로벌 기업들도 다 하고 있는 겁니다.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로봇? 마찬가지에요. 네이버는 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따라가고 있다는 일각의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래도, 그래도 여기까지 나름 이해의 여지가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네이버가 구글 및 페이스북이 개척하지 못한 일을 단숨에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도 어불성설이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는 IT업계 '형님'이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다르죠. 이해진 전 의장이 지난해 기자회견에서 "페이스북과 구글은 고질라"라고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한성숙 대표도 이러한 고민을 토로했습니다. 한성숙 대표는 "지금까지 우리가 원하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전제에서 "내부에서 엔지니어를 확보하고 기술을 개발하는 등 나름의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쉽지 않은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아가 "구글과 페이스북과 비교해 네이버의 역량을 질타하는 분위기에 경영진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기술기반 플랫폼 기업으로의 변신이 매우 중요하지만, 이를 위한 방향성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뜻이지요.

맞습니다. 기술기반 플랫폼 기업을 표방하면서 글로벌 기업에게 도전하는 입장에서 당장 눈부신 성과를 내라는 요구는 너무 잔인해요. 지금은 네이버를 응원해야할 순간이지요. 게다가 네이버는 '어쨋든' 강력한 플랫폼을 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브이 서비스와 같은 글로벌 향 콘텐츠 실험을 거듭하고 4차 산업혁명의 가치를 충실하게 따라가는 한편, 플랫폼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스몰 비즈니스 방법론이 덧대어지면 또 다른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습니다.

진짜 위험한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지나치게 넓은 전선. 기술기반 플랫폼의 가치라는 방향성을 정한 상태에서 현실적인 어려움 충분히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후발주자로 따라가고 투자의 사이즈가 작아도 '변화무쌍한 신의 한 수로' 일발역전을 노리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전선이 너무 넓어요.

한성숙 대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의 화두는 인공지능, 그리고 자율주행차가 있다"면서 "지금은 빅데이터를 다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네이버는 현재 브라우저 웨일, 인공지능 및 번역, 로봇, 사물인터넷 기기 연결 인프라, 자율주행차 등 지나치게 넓은 전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여기에 빅데이터까지. 물론 모두 중요한 요소이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면 일정정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 보입니다. 지금 당장 플랫폼의 가치를 최대한 잘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어떨까요?

이 질문을 하려고 했으나 저에게는 질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음부터는 코끼리 춤을 추면서 휘파람을 불고 불꽃을 터트리며 손을 드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 명함 교환.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한성숙 대표의 공격력, 관전 포인트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성숙 대표는 기자 출신입니다. 그리고 엠파스의 검색사업본부장을 역임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2005년 한성숙 당시 본부장은 네이버와 진검승부를 벌인 바 있습니다. 엠파스가 열린 검색을 바탕으로 다른 포털 사이트의 검색 결과를 '긁어오는 실험'을 하자 네이버가 발끈했기 때문입니다. 항구의 포털이 아닌, 워터파크의 포털을 지향하던 네이버의 가두리 콘텐츠 전략을 연상하면 당시의 분노가 여기까지 느껴집니다.

그랬던 한성숙 본부장이 이제는 네이버의 수장이 되었습니다. 사실 이 외에도 특이한 점이 많아요. 유리천장을 뚫은 여성 CEO라는 찬사와 투명한 경영 리더십 변화의 주인공, 비(非) 공학계열 전문가.

한성숙 대표는 글로벌 및 모바일, 네이버 브이의 성공과 스몰 비즈니스의 패러다임을 구축하며 지금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 과정을 천천히 살펴보면 어쩌면 지금 IT기업이 품어야 하는 융합형 인재라는 생각도 듭니다. 기술을 개발해 플랫폼을 깔아 일종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 한성숙 대표가 직접 기술을 창조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플랫폼의 미묘한 인문학적 바람을 조정하는 것에는 나름의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한성숙 대표의 공격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상견례였습니다. 다소 떨려하는 분위기가 연출됐지만 진솔한 접근으로 다가온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기자들을 일일히 찾아와 명함을 교환하며 인사를 건내는 장면도 훈훈했습니다. 그런데 명함에 휴대폰 번호는 없다는 것이 함정.

앞으로 변화될 한성숙 대표의 네이버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