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가 법이고 뭐고 필요 없어, 다 죽여 버릴 거다. 이제 돈도 필요 없다. 다 죽여버릴거다. 기다려라...”

악을 쓰는 남자의 말에 여자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여자는 겁을 잔뜩 먹고 돈을 주겠다고 말했다. 남자는 이제 돈 대신 여자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협박하고 있었다. 

시민단체인 민생연대가 수집한 사채업자와 채무자와의 통화녹음내용이다. 다른 녹음파일도 있다. 여기에는 한 남자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일전에 칼 들고 갔던 건 미안하다. 나도 내 돈을 받아야 되는 입장이고 너는 안 준다고 하니 할 수 없지 않냐...” 이미 한 차례 칼을 들고 갔다는 말이 섬뜩하다.

기자가 민생연대 사무실을 찾아 녹음파일을 듣고 있을 무렵, 마침 조세원씨(36·가명)가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경찰서에서 먼저 민생연대를 찾아가 보라고 해서 왔다고 조씨는 말했다.

그는 인터넷으로 ‘급전’을 검색해 나온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사채업자와의 거래는 그렇게 시작됐다.

“30만원 빌려줄테니, 일주일 후에 50만원 갚아라”

“나는 지금 100만원이 필요하다” 조씨는 만삭인 아내의 입원비 때문에 다급했다. 조씨는 30만원을 빌리고 왜 50만원을 갚아야 되는지 먼저 묻지 않았다. 사채업자는 조씨의 다급함을 아는 듯했다.

“나도 말야. 회사에 뭔가 얘기할 것이 있어야 되는데, 당신을 어떻게 믿고 냉큼 100만원을 빌려주나? 이번에 우선 30만원만 거래해 봅시다”

조씨는 30만원을 빌리고 다음주 50만원을 송금하면서 100만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사채업자는 다시 거절했다. “한 번 더 거래를 하지 않으면 회사에서 100만원을 빌려 줄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이번에는 40만원을 빌려 줄테니 일주일 후에 60만원을 갚으라고 담당자는 말했다.

일주일 후 조씨는 60만원을 갚지 못했다. 당시 1일 연체금액은 5만원. 조씨는 4일을 연체하고 80만원을 갚았다. 사채업자는 그 때서야 100만원을 빌려주면서, 30만원으로 선이자로 떼어갔다고 한다.

조씨는 이 같은 방법으로 총 7곳의 사채업자에 돈을 빌렸다. 그렇게 쉽게 마수에 빠질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지만, 그는 "당시엔 만삭인 아내 때문에 다급했다"고만 연신 말할 뿐이었다. 직장을 다니고 있는 건장한 청년이 연 1000%가 넘는 이자를 주고 돈을 빌려야 되는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불행의 시작, 사기대출

조씨가 처음부터 이런 불법사금융을 이용한 것은 아니었다. 모든 일이 사기대출 때문에 시작됐다.

조씨는 26살 무렵 카드사의 모집인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위촉직이고 계약직이었다. 4대보험은 되지 않았다. 급여수준에 비해 카드사용을 많이 해, 카드대금을 제 때 납부하기가 버거웠다.

당시 조씨가 결제해야 될 카드대금은 약 1000만원이었다. 그는 1금융권 은행에 대출이 가능한지 문의했다. 은행은 조씨가 사회초년생인데다가 카드사용실적이 많지 않아 대출신청을 거절했다.

조씨가 다음으로 대출을 알아 본 곳은 저축은행. 저축은행도 같은 이유로 대출을 거부했다. 며칠후 한 저축은행으로부터 대출이 가능하다는 전화가 왔다. 조씨는 자신이 여러 곳의 저축은행을 알아봤으므로, 그 중 한 곳이라고 착각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조씨는 카드사 모집인이었다. 금융기관이라면 여신번호가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는 여신번호를 비롯해 여러 가지를 물었다.

“컴퓨터 앞이면 한 번 검색해 보세요. 00저축은행이요” 그의 말대로 검색해 보았다. 홈페이지가 있었고 어느 건물 2층이라는 위치도 표시되었다. “그리고 저의 저축은행 여신번호는요....” 너무 당당하게 말하는 통에 그는 여신번호를 확인해 보지 않았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대출은 가능하지만 여러 곳에서 받아야 돼요. 대출신청 하시겠어요?” 대출이 가능하다는 말에 여러 말 하지 않고 요청한 서류를 보내줬다. 서류안에는 인감증명서와 인감도장이 있었다.

며칠후 네 군데 저축은행으로부터 약 1200만원을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대출알선을 해 준 업체는 수수료명목으로 돈을 요구했다. 조씨는 수수료를 송금해 주고 얼굴도 모르는 담당직원에게 고맙다는 인사까지 했다.

두 달 뒤 문제가 터졌다. 어머니가 대부업체에서 보낸 독촉장에 놀라 조씨에게 전화를 했다. 집에 가보니 00머니, 00앤캐싱, 0캐싱의 이름이 적힌 독촉장과 통신회사가 보낸 고지서가 있었다.

조씨가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대출중개업자들이 조씨의 인감증명서를 가지고 대부업체에 돈을 추가로 대출받은 후 잠적해 버렸다.

이들은 먼저 조씨의 명의로 휴대폰을 개설했다. 또 조씨의 인감증명서로 대부업체 무방문 전화 대출을 신청했다. 대부업체가 본인 확인을 위해 전화를 걸면 이들이 전화를 받아 조씨 행세를 했다.

조씨가 수사 의뢰를 했지만, 이들은 이미 잠적하고 찾을 수 없었다. 남겨진 대부업체의 빚은 고스란히 조씨의 몫이 됐다. 당시 총 채무는 3600만원.

“제가 이때 개인회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후회돼요. 그때는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조씨의 표정은 당혹함 그 자체였다.

조씨는 수년 동안 이 빚을 갚아나갔다. 여자친구가 임신하면서 조씨는 더욱 빚에 대한 압박이 컸다. 아내가 만삭이 되었을 때 조씨는 여기저기 병원비를 빌리러 다녔다. 그가 필요한 돈은 100만원이었다. 이 때 불법 사금융에 손을 댄 것이었다.

돈 100만원을 융통할 수 없을 만큼 조씨의 신용은 바닥이었다. 홀어머니도 사고만 치는 아들을 외면했다.

조씨는 지난 달에 아빠가 됐다. 매주 20만원이 넘는 현금을 사채업자들에게 갚는 일은 힘들어졌다. 그들은 어떻게든지 찾아와서 빼앗아갔다.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하게 되자, 한 사채업자는 조씨의 누나가 일하는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교장 선생님이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교장 선생님에게 누나의 이름을 말하며 "그 년이 내 돈을 빌려서 갚지 않는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조씨의 누나가 학교에서 쫒겨날 위기에 처하자, 누나는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려고 동부서주했다. 조씨가 민생연대를 찾아온 것은 이 무렵이었다.

▲경제 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 사무실

조씨는 개인회생을 신청했으나 현행 법률에 의하면 이것은 반쪽짜리 신청에 불과하다.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만 채권자로 추려서 신청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병 확보가 안되는 사채업자들은 끝내 채권자목록에 넣지 못했다고 한다. 이들은 개인회생 절차의 효력인 추심금지명령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는 만큼 여전히 맘대로 추심을 할 수 있다.

민생연대, 원금과 이자부터 발라낸다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은 "불법사금융업자들은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극히 꺼려요. 빌려준 돈이 이들이 돈이 아니라, 조직폭력배의 돈을 운영하는 경우도 많아요. 돈을 빌려준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야 형사든, 민사든 제기하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답답합니다"고 말했다.

민생연대는 불법 개인사채업자들의 고리 문제만을 다룬다. 국내에서 유일하다.

민생연대가 불법 사금융 피해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서 먼저 중요하게 판단하는 것은, 불법사채업자와 피해자간 돈 거래중 어디까지가 불법이고, 어디까지가 합법인지 구분해내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 불법이지만.

돈거래 내용에서 원금과 이자를 구분하고, 또 거래중 추가로 빌린 원금이 있으면 이 원금에 대한 이자를 별도로 구분한다. 대체로 피해자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왜 이 만큼의 이자를 줘야 하는지 명확하게 계산하지 못한다.

이 정리가 끝나면, 사채업자가 받아간 이자가 법률로 정해진 이율(법정이자)을 넘겼는지 확인한다. 현행 대부업의 법정이자는 27.9%다.

법정최고이자 27.9% 초과분은 무효  

대부계약을 맺었더라도 법정이자를 초과한 부분은 처음부터 무효다. 무효이기 때문에 채무자가 이를 돌려받을 수 있다.

돌려받기 위한 절차로, 먼저 피해자는 누가 채권자인지 모르기 때문에 형사고소를 먼저 해야 한다. 경찰이 이 사건을 맡아 대부업법 위반을 수사하고, 처벌해야할 관련자를 특정하게 되면, 누가 채권자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이때 피해자는 부당이득반환청구의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된다.

민생연대는 이런 절차를 밟기 전에 미리 만들어 작성한 고소장을 사진으로 찍어, 사채업자에게 보낸다. 또 앞으로 전개될 사태를 알려준다. 이 부분은 앞으로 있을 협상에서 피해자가 우위를 점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 포인트`다. 이 대목에서 압박을 느끼는 사채업자는  민형사 절차를 포기하고 합의에 나서기도 한다.

"사채업자가 불법 대부거래를 한 사실이 분명하면, 오히려 채무자가 협상에서 우월적 지위를 갖게 된다. 그런데 돈을 못 갚았다는 부채의식이 그 우월감을 잊게 만드는 거에요." 송 사무처장의 말이다. 민생연대는 이런 합의를 위해 채무자가 주도적으로 이끌고 갈 수 있도록 조언한다.

합의가 되지 않는 상황도 비일비재하다. 송 사무처장은 채무자가 "불법사채업자를 고소하는 경우, 일반 경찰보다 서울시청 산하 민생사법경찰에 고소하는 게 낫다"고 조언한다.

“일반 경찰서는 대부업법 위반 범죄에 관해서 경찰관의 직무평가점수가 낮아요. 그냥 사건을 묵히는 경우가 다반사죠. 그런데 민생사법경찰은 이걸 전담으로 하거든요. 채무자가 서울에 거주한다면 민생사법경찰서에 고소하는 것이 사건처리에 효율적입니다”

▲서울시민생사법경찰관들에게 강의하는 송태경 사무처장, 출처=송태경 블로그

서울시는 최근 불법신고포상제라는 제도를 도입, 피해를 신고할 경우 보상도 받을 수도 있도록 했다.

실제로 송 처장은 상담하러 온 조씨에게 합의해서 합의금을 받을 것인지, 신고포상제를 이용해서 신고포상금을 받을 것인지 선택하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신고포상제를 이용하는 경우 사실상 채무자가 피해보상을 받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불법 사금융 피해자들을 돕는 민생연대는 특별한 보수를 받지 않는다. 국가나 시로부터 지원도 없는 실정이다. 오로지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지만, 사람들이 도움을 받고 나면 그냥 잊기 일쑤다.

불법 사채업자로부터 고통을 당하는 채무자가 민생연대의 도움을 받으려면 민생연대 02-867-8020, 8022로 전화해 미리 상담일정을 잡아야 한다. 민생연대에 후원하려면,  우리은행 1006-101-284650 계좌로 입금하면 된다. 민생연대에 대한 후원금은 연말정산시 기부금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빚으로 고통을 겪고 계신 분은 제보나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함께 고민을 나누며 좋은 해결책을 찾는데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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