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하루를 마치고 돌아온 집, 눈이 그렁그렁한 하얀 털북숭이가 굴러온다. 하루의 피로가 씻기는 기분이다. 내 밥은 못 챙겨도 반려묘의 ‘프리미엄 사료’는 잊지 않는다. 반려동물 생활인구 1000만명 시대, 가족이 없는 텅 빈 집에서 반려동물들은 뭘 하고 있을까.

집 떠나면 눈에 밟히는 반려동물들을 위해 펫 IT 제품과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마치 커플링처럼 반려동물과 반려인을 이어줄 ‘활동 모니터링’ 목줄, 24시간 반려동물을 보며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보안 카메라, 1분 1초라도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는 펫택시까지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들이 등장하고 있다.

반려동물 관련 산업규모는 2020년 6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1인 가구와 고령화 사회 진입으로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는 평가다. 이제 반려동물은 단순히 집에서 키우는 동물이 아니라 가족이다. 다큐멘터리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를 보면 빈 집에 남겨진 반려견들의 모습을 몰래카메라로 찍은 장면이 나온다. 반려견들은 현관 주변에 앉아 하루 종일 반려인을 기다리고 불안 증세를 보인다. 작은 소리에도 쪼르르 달려 나오거나 짖곤 한다. 이제는 혼자 남겨져 심심할 반려동물들에게 목소리를 들려줄 수도 있고, 실시간으로 그들의 상태를 확인할 수도 있다. 각양각색의 매력을 가진 펫 IT 스타트업들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펫 IT 스타트업들이 펼쳐갈 새로운 세상을 미리 만나보자. 

 

택시 미터기에 40만원이 찍혔다. “밍키야 내려와.” 1인 가구 싱글족인 직장인 김 모 씨는 오랜만에 맡는 부산 공기가 신선하다. 한 손은 부모님께 드릴 과일바구니를, 다른 손은 반려견 밍키의 목줄을 잡았다. 밍키는 하얀 말티즈다.

한 해에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고향을 찾는다. 그때마다 고민스럽다. 밍키를 혼자 서울 집에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애견호텔이나 펫시터를 찾아봤지만 며칠 맡기는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게 ‘펫택시’. 반려견과 반려인 모두 편하게 탈 수 있는 펫택시를 타고 부산까지 안전하게 도착했다.

기차를 탈 때마다 밍키를 향한 일부 승객의 따가운 시선이 불편했다. 끊임없이 ‘멍멍이’를 외치는 아이들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문득 밍키가 먹을 사료를 챙기지 못한 게 떠올랐다. 택시 안에서 바로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해 고향집에 일주일치 사료와 간식을 배달시켰다. 40만원은 김 씨에게 적지 않은 금액이다. 다만 하나뿐인 반려견을 위해 투자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밍키와 그의 진정한 휴일은 펫택시에 탑승한 순간부터 시작됐다.

반려동물이 가족이 됐다. 먹다 남은 밥을 주며 키우던 바둑이는 옛말이다. 이제는 안방으로 들여 아랫목을 내어준다. ‘애완동물’이라는 명칭이 ‘반려동물’로 개칭된 것도 인식 변화의 사례다. 반려동물이라는 용어는 지난 198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국제 심포지엄에서 처음 쓰였다. 동물이 주는 여러 혜택을 존중하기 시작한 것. 인간의 장난감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친구라는 뜻에서 도입됐다.

반려동물 관련 시장 규모는 1조원을 돌파했다.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1인 가구 증가와 고령화 시대 도래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가구는 늘어날 전망이다. 농림축산부에 따르면 2012년 17.9%에 불과했던 반려동물 보유 가구는 2015년 21.8%로 3.9% 증가했다. 반려동물 사육 인구는 457만가구, 1000만명에 육박한다. 행정자치부 기준 국내 인구는 5100만명이다. 5명 중 1명이 반려동물을 기르는 셈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반려동물산업 시장 규모도 2012년 9000억원에서 2015년 1조8000억원으로 컸다. 농협경제연구소는 반려동물 관련 시장 규모가 2020년 5조81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른바 펫코노미(Pet+Economy)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펫 IT, 반려동물을 가장 가까이서 보살필 수 있는 기술

펫코노미 안에서 떠오르는 분야가 있다. 바로 PET IT(반려동물 정보통신기술)다. 인간이 누리고 있는 첨단 IT 기술이 동물 산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반려동물은 영어로 ‘컴패니언 애니멀’(Companion Animal)로 표기한다. 현재는 애완동물이라는 뜻의 펫(Pet)이 널리 쓰이기에 반려동물 관련 정보통신 기술도 펫 IT로 통칭한다.

반려동물을 위한 O2O 서비스, 웨어러블 기기, 각종 서비스 앱 등이 펫 IT에 속한다. 보다 편리하게 반려동물을 돌보고 훈련시킬 수 있는 IT기술 기반의 제품 및 서비스들이 시장을 차지해가고 있다. 해외 시장조사 업체 ID테크엑스에 따르면 동물 전용 웨어러블 기기와 같은 펫 사물인터넷(IoT) 시장은 2025년 26억달러(약 3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미국 조사기관 그랜드 뷰 리서치(Grand View Research)는 반려동물 웨어러블 시장이 2022년엔 23억6000만달러(약 2조73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국내 펫 IT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관련 제품으로는 반려동물 활동 모니터링을 위한 ‘펫 웨어러블’ 기기와 앱을 중심으로 확장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스마트폰과 각종 커넥티드 단말 활용도가 반려동물을 위한 스마트 서비스 수요 증가세와 맞물리며 급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과 스타트업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는 배경이다. 스마트폰 이용자들을 보유해 사물인터넷, 앱 등을 유통시키기 수월한 이동통신사들이 펫 IT 사업에 뛰어든 상태다.

▲ 맘카. 출처=LG 유플러스

LG유플러스는 지난 2015년 11월 ‘맘카’를 선보였다. 휴대전화와 연동되는 폐쇄회로(CC)TV를 통해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에도 유용한 서비스였다. 적외선 LED로 야간에도 또렷하게 모니터링할 수 있다. 스마트폰과 PC로 좌우 최대 345도, 상하 최대 110도까지 카메라를 돌려 사각지대 없이 모니터링할 수 있다. 외부에서 스마트폰으로 음성으로 맘카3과 통화가 가능하다.

KT는 반려동물과 반려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서비스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해 9월 자사 인터넷 IPTV 서비스 ‘올레 tv’는 국내 최초 펫 케어 포털 ‘왈하우스(Wal House)’를 출시했다. 왈하우스는 외출 후 집에 홀로 남겨진 반려동물에게 반려인의 사진과 목소리가 담긴 메시지를 TV로 전송해준다. 반려동물 전용 비디오·오디오 등 콘텐츠 약 5000편을 제공한다. 반려인은 집 밖에서도 TV를 켜고 끌 수 있다. 올레 tv는 개가 보는 실시간 채널 ‘도그티비’, ‘채널해피독’ 및 개가 듣는 오디오 채널 ‘도그 앤 맘’을 제공한다.

SK텔레콤은 지난 2015년 4월 UO 펫핏(Petfit)을 출시했다. 반려견 건강 관리 라이프웨어 제품이다. UO펫핏은 사물인터넷 기술을 바탕으로 반려견의 운동량과 칼로리 소모량을 체크하는 스마트 앱세서리(앱+액세서리)다. 스마트폰과 연동해 이용할 수 있다. 같은 해 5월 출시한 ‘T펫’(Tpet)은 반려동물 전용 웨어러블 기기다. GPS‧활동량 측정 센서 탑재 기기, 전용 요금제, 특화 서비스로 구성돼 있다. 반려동물 위치 확인, 활동량·휴식량 분석, 산책 도우미, 반려동물에게 음성메시지 발송 등 다양한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목줄에 부착하면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 고객의 스마트폰으로 전송한다. ‘분실모드’, ‘촬영 유도음’ 및 사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유 등 신규 기능을 추가했다. 다른 통신사 고객도 사용 가능하다.

다양한 펫 IT 스타트업들도 생겨나고 있다. 펫프렌즈는 반려동물 상점 앱으로 반려동물 용품 배달 서비스를 제공한다. 펫미업은 반려인과 반려동물이 함께 탑승할 수 있는 펫택시를 제공한다. 도그메이트는 ‘강아지 돌보미’를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여기서 위탁 돌보미와 방문 펫시터를 찾을 수 있다. 위팻은 반려견 동반 가능 장소를 찾아주는 IT 전문 플랫폼이다. 펫닥은 수의사 무료 상담 앱이다. 질문을 올리면 수의사가 직접 답을 해주고, 사진을 보내고 증상을 설명하며 소통할 수 있다. 볼레디는 반려견의 자동운동·급식기로 운동량을 늘려줘 심신적 안정과 스트레스 해소를 지원하는 스마트 펫케어 용품을 제작한다.

반려동물의 건강 증진과 질병 조기 발견 및 예방을 위한 펫 IT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시장과 보호자들의 수용도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반려동물을 위한 각종 보험을 비롯해 맞춤형 게임, 스마트홈 개발과 제공 등 새로운 시장의 파생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