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행동주의가 반(反)신자유주의 물결을 등에 업고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 변화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외국인지분율보다 최대주주지분율이 낮은 기업들은 우선 공격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5년 6월 4일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는 구 삼성물산의 지분 1112만5927주(7.12%)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아울러 경영참여를 선언하며 전형적인 ‘행동주의펀드’의 성격을 나타냈다.

엘리엇은 제일모직과 구 삼성물산의 합병비율(1:0.35)이 삼성물산에 불리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사건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개편과 연결됐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삼성그룹과의 공방에서 엘리엇은 패배했지만 향후에도 얼마든지 국내 재벌그룹들이 외국계 헤지펀드들의 공격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또 국민연금의 제일모직과 구 삼성물산의 합병 찬성을 놓고 불합리한 결정에 대한 의혹이 확산되면서 1년이 넘는 지금까지 이 사건은 화자가 되고 있다. 이에 부담을 느꼈는지 지난 19일 국민연금 의결권전문위원회 소속 위원 2명이 자진 사퇴했다.

▲ 행동주의 헤지펀드 현황 [출처:동부증권]

헤지펀드 행동주의는 지난 2000년대 이후 미국의 기업지배구조 논의에서 빠짐없이 등장했다. 본래 헤지펀드는 시장의 비효율성을 이용해 짧은 시간에 수익을 올리는 전략을 취했고 사모펀드는 중·장기적으로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인 후 되파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러나 헤지펀드로의 막대한 자금유입은 이들 간 경쟁강도를 높이고 이에 헤지펀드들은 사모펀드 투자전략을 구사하게 됐다. 즉, 차익거래는 물론 직접 경영에도 참여하는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등장한 것이다.

SNS, 행동주의 헤지펀드에 힘을 싣다

정보가 빠르게 전달될수록 특정 주체는 초과수익을 올리기 어려워진다. 그러나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달랐다. 오히려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여론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이른 것이다.

그 결과, 행동주의 투자자와 경영진 간 표 대결에서 행동주의 투자자가 승리하는 비율은 점차 늘어났고 이들은 주주이익의 대변자로 그 위상이 높아졌다. 이뿐만 아니라 배당확대 요구, 단순 지배구조개편을 넘어 미래사업전략 수립 등에 집중하며 투자전략은 정교해지고 활동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그만큼 많은 기업들은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영역에 노출된다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헤지펀드들의 행동을 ‘횡포’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행동주의’(Activism)·반(反)신자유주의의 흐름은 오히려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움직임에 부합한다.

SNS 덕분에 개인들의 힘이 강해지는 시대다. 이곳으로부터 지지를 받은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적극적인 활동은 투자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아시아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상황이다.

행동주의 투자, 그들이 만드는 문화

행동주의 투자가 확산될 경우, 과거 기관투자자·고액자산가 중심의 프레임은 약화된다. 반면, 일반 국민들의 힘은 강화된다. 실제로 1980년대 중반 미국은 연금적립액이 급증하면서 펀드자본주의에 입각한 여러 활동들이 나타났으며 최근 국민연금을 향한 질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반 국민들의 영향력은 과거 대비 상당하다.

이들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주로 SNS를 통해 활동하고 오프라인 모임 등을 통해 소규모의 세력을 조성한다. 한국에서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열리게 된 계기도 SNS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헤지펀드와 사모펀드의 영역이 불분명해지고 행동주의는 강화되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기업지배구조와 관련된 이슈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향후 사모펀드가 재간접으로 공모펀드에 편입되고, 개인까지도 사모펀드 가입이 가능해지면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증권사들이 헤지펀드 출시를 앞두고 있어 개인들의 투자에 대한 영향력은 더욱 강해진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은 여소야대 정국에 따른 지배구조개편안 발의, 사회적으로 재벌기업들의 대한 불만 확대 등이 이어지면서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지배구조가 취약한 일본의 가족 기업을 겨냥하고 있다. 이들이 노린 기업은 2015년 8개에서 2016년 2배 이상으로 늘었다. 특히 세븐 앤 아이홀딩스 스즈키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퇴진 사건은 한국에도 익히 알려져 있다.

한국은 여러 상황이 공교롭게 맞물리며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주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외국인 주주대비 지배주주 지분율 낮은 기업 [출처:동부증권]

남기윤 동부증권 연구원은 “해외 행동주의 투자자는 국내 대기업 집단을 리스트에 올릴 것”이라며 “우리나라 대기업 그룹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자본주의 원리에 노출되지 않았고, 외국인이 대기업 집단의 지분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데 반해 최대주주는 상대적으로 지분율이 낮은 편”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주요 타깃은 최대주주 지분율 대비 외국인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곳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대기업 계열사 중 최대주주 지분율이 외국인 지분율보다 낮은 기업은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바이오로직스, 현대차, 현대모비스, 기아차, SK하이닉스,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LG화학, LG생활건강, POSCO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