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실세 논란을 수사하고 있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법원에 의해 기각되며 삼성은 한 숨 돌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은 피해도 "이제 시작"이라는 말이 나온다. 삼성 입장에서는 풀어야 할 숙제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먼저 반삼성 기류가 퍼지는 부분이다. 현재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며 정계는 물론 일반 시민사회단체의 반감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정계에서는 야권 대선주자를 중심으로 맹공이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은 민심과 동떨어진 결정"이라고 직격탄을 날렸으며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법원이 힘 있는 자, 가진 자의 편에서 봐주기에 나서면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법이 정의를 외면했다"고 비판했으며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 부회장 영장기각 사유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다만 안희정 충남지사의 경우 법원의 판단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아 묘한 대비를 이룬다. 사법부의 판단에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순간 사법질서를 부정하는 것으로 인식,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상황판단이 있어 보인다.

시민사회단체는 격앙된 분위기다. 촛불집회를 주도하고 있는 박근혜정권퇴진운동본부는 각 지역별 성명을 발표하며 일제히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악습을 버려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도 논평을 통해 법원의 판단을 지적하는 한편 특검에 대해 재수사를 통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라고 주장했다. 온라인은 분위기가 더 심각하다. 많은 네티즌들은 이재용 부회장 불구속에 반감을 드러내며 '불매운동'을 다짐하는 등 소위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은 광범위하게 퍼진 반삼성 기류를 수습하는 한편, 책임있는 기업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비선실세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엄청난 가운데 어려운 숙제를 받아든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각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유고가 삼성의 위기, 나아가 한국경제의 위기라는 설득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와 눈길을 끈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그룹 총수의 유고 여부와 기업의 시가총액 및 가치가 큰 상관이 없다는 것은 국내외 사례를 통해 일반 대중도 충분히 학습했다"며 "협박성 레토릭이 아닌, 진심을 보여주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삼성의 기본적인 입장"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일부 언론에서 확인되지 않은 수치로 '특검의 삼성에 대한 수사'를 폄하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도 있다.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과 상관없이 특검의 수사가 계속 진행되는 부분도 부담이다. 지금까지 삼성의 대응은 재단 출연금에 대한 성격을 '어쩔 수 없이 출현한 금액'으로 규정하는 한편 '대가성이 없었다'의 방향으로 끌고가는 중이다. 일단 법원의 일차적 판단에는 '먹히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향후 특검이 삼성에 대한 수사를 유지한다고 천명한 부분은 앞으로 지리한 법적 공방을 예상하게 만든다는 전망이다. 최지성 미래전략실 부회장에 대한 기소가 이어지며 삼성 수사에 대한 특검의 의지가 여전한 만큼, 이를 둘러싼 수 싸움도 치열하게 벌어질 전망이다.

다만 특검이 최종 목표를 박근혜 대통령으로 좁히는 상황에서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 변수다. 나아가 재계 일반에 대한 특검의 수사가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삼성에 대한 집중도가 희석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만약 특검이 블랙리스트 논란을 매개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겨냥하는데 성공한다면 수사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감지된다. 삼성 입장에서는 적극적인 소명과 함께 차분한 대응이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경영 정상화라는 숙제가 있다. 최근 현지 주주들의 반발로 하만 인수에 경고등이 커지는 등 경영과 관련된 이슈들이 불거지고 있다. 아직 임원인사 및 사장인사도 실시하지 못한 삼성은 특검 수사에 대응하는 한편 경영 정상화에 빠르게 나서야 한다는 숙제가 남았다. '뉴 삼성'을 추구하는 이재용 부회장이 당장 전면에 나서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존의 사장단 중심으로 빠르게 로드맵을 짤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대규모 국내 투자 계획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